바울의 두 번째 기도(엡 3.14-21)

20220907(묵상) 초안 - 20020607

  

 

 

바울의 두 번째 기도

Ep. 3.14-21

  

 

    본문 관찰

 

    내가 아버지 앞에 비노니(14-15,20)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시오며(16)

    그리스도께서 하시기를 구하노라(17-19)

    아멘(21)

 

 

무릎을 꿇고 구하노라!

 

일꾼이 주인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 그것은 당연하다.

바울은 이를 기도로 품는다. 앞의 첫 번 기도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면(1.16-19) 이번에는 교회에 대한 성도들의 통찰이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 안에서 세워지기를 기도한다.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위해 기도한 목록들을 살펴보면서 교회가, 그리고 내가 하나님께 마땅히 품어야 할 기도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본다.

 

 

아버지 앞에 비노니(14-15,20)

 

기도는 대상의 싸움이다. 기도를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이걸 놓치면 자기 확신(최면)의 강도가 결과를 주도하는 쪽으로 가게 되면서 목소리 크고, 간절하고, 처절하게 자신을 설명하고, 얼마나 위대하게 설득하는가가 핵심인 것처럼 되어 버린다. 또한 자기 한풀이(카타르시스, catharsis)와 같은 자가발전(自家發電)으로 흐르게 된다. 이게 다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간과해 버릴 때 일어나는 일들이다.

기도는 내 쪽에서의 어떤 것들이 원인이 되어야만 결과가 만들어지는, 그러니까 그 주도권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그것을 받으시는 하나님 편에서 개입하시고, 풀어 가시고, 이루시는 작품이요 섭리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 안에 역사하시면서 그가 바라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베풀어 주시는 그런 분이시다(20). 하나님이 부족하고 어리석고 죄 많은 우리의 기도를 받으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도는 특권 중의 특권이다.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시오며(16)

 

성령님께서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기를 기도한다. 성령님을 의지하는 사람의 가장 큰 관심은 겉사람이 아니라 속사람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에 있다. 그것은 성령님께서 그 안에 내주(內住)하심으로서 그를 강건하게 하시는 일을 하시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이처럼 관심의 대상과 시각을 바꾸신다. 영혼을 보게 하시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를 품게 하신다. 나그네 인생길로 그 끝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길을 보게 함으로써 겉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 얼마나 무가치하고 볼품없는 일시적인 것인가를 깨달아 알게 하신다.

 

 

그리스도께서 하시기를 구하노라(17-19)

 

그리스도께서 성도(‘’) 안에 내주(內住)하시는 것은 성령님이 그러하시는 것과 같다(14.16-18, 8.9-11). 바울은 예수님이 성령님으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말하고, 또한 이를 아버지께 기도함으로써 삼위 하나님께서 유기적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를 기도한다. , 아버지에게 그리스도께서 그의 성령으로 더불어 성도들 마음 속에 계시게 하시기를 기도한다.

바울의 기도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또한 사랑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견고한 기초가 다져짐으로써 성장하는, 그리고 견고하게 건축된 교회로 지어져가기를 기도한다(17b). 이렇게 해서 비로소 모든 성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깨달아”(18-19a)지는 일이 이루어진다. 이를 원하는 바울의 심정이 세미하게 전해진다.

비록 주님이 인간의 안테나에 잡히거나 측량할 수 없다 하더라도(8),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아버지께서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한 주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게 하시기를 기도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닐까(18-19a).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 그분이 아무런 값없이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깨닫는 것, 거기까지 기도의 영성이 날마다 새로워지기를 소망해 본다.

 

 

부스러기 묵상

 

바울은 하나님께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기도한다(21).

정말 아멘!’이다. 특별히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 영광이 하나님께 있기를 축도 드린다(21). 어떤 영광인가. 하늘에서와 같이 교회를 통해서 이 기도가 성취되는 것을 통해서다(16-19 20). 그는 일꾼’(7)으로서 이 일에 생명을 걸었다. 사람으로 사는데 있어서 가장 행복한 것은 생명을 다 해 할 일이 있다는 것 아닐까. 이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내가 드리는 기도를 충분히 응답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20). 결국 이러한 기도의 성취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기도가 응답되어 나를 행복하게 하고, 그래서 기뻐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나를 바울의 기도 앞에 고발한다. 얼마나 이기적이고, 개인적이며, 나의 유익과 이익을 계산하기에 바쁜 나였는가를 생각할 때 부끄럽기 그지없다.

바울은 기도의 응답이 교회 안에서,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부르심을 입은 에베소교회(‘’)의 기도의 영성이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성령님이 내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시는 것만큼(16), 그리스도께서 나를 건강한 교회로 자라게 하시는 것만큼(17), 그리하여 이러한 일을 이루시는 삼위 하나님을 깨달아 아는 영성이 충만해지는 것만큼(18-19), 나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기대와 소망을 품고 아버지 앞에 기도하기 위해 무릎을 꿇은 바울의 마음은 아마도 감격과 감동으로 물결쳤을 것 같다. 죄수 아닌 죄수의 몸으로 자유롭지 못한 그였지만 아무도 기도의 날개를 타고 하늘을 향해 나르는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어떤 형편과 처지 속에서도 하나님의 희망을 붙드는 사람은 자신의 형편과 환경 때문에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가장 절망적인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다. 불가항력적(不可抗力的)인 어떤 일이나 사건이 문제가 아니라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문제다. 주님은 바울처럼 서 있기를, 바울처럼 생각하기를, 바울처럼 기도하기를 나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문제를 보지 않고, 그 문제 앞에 서 있는 나를 보신다.

하나님의 꿈이 에베소교회 안에 성취되기를 간구하는 바울에게서 목회적 힌트를 발견한다. 그것은 교회의 문제(상황)를 보지 말고, 바로 그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계획)을 보아야겠다. 주님의 꿈이 바울의 기도를 통해 나에게 전달되었다면, 그리고 이 기도가 허공을 치는 메아리가 아니라면, 기도하게 하신 이가 이 기도를 반드시 성취하시리라는 것을 믿는다면 희망은 있다.

이 시대와 교회를 통해서 열병을 앓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넘어서도록 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 그렇다면 바로 거기에 서서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것, 이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고, 사명이다. 내 기도의 화살이 하늘을 향해 이미 떠났음을, 그리고 새로운 화살이 방금 또 과녁을 향하고 있음을 인해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런 묵상을 할 때마다 더 초라한 나를 발견하지만, 그러나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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