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하기2 - 관 리(고후 8.16-24)

20201006(묵상)

   

 

 

헌금하기(2) - 관 리

2 Cor. 8.16-24

  

   본문 관찰

 

   재정위원회(20-21,24)

   재정위원들(16-19,22-23)

      디도(16-17,23a)

      한 형제(18-19,23b)

      우리의 한 형제(22,23b)

   

 

헌금관리의 투명성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 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21)

 

바울은 헌금하기 못지않게 관리하기에 만전을 기한다.

그것은 고린도교회와 마음까지 회복되어 기쁨의 관계가 된 일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뜻도 있지만(7.16) 고린도교회 안에 평지풍파(平地風波)를 일으킨 분파주의자들처럼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는 일이 없”(7.2b)음이 이번 일을 통해서도 그대로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하나님의 것을 맡은 자로서의 사명에 충실함으로써 교회가 하나님의 일을 맡은 신적(神的) 기관임을,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과 말씀의 권위가 늘 살아 역사하도록 함으로써 아직 유대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유대교와의 분명한 선을 긋는다.

   

 

재정위원회(20-21,24)

 

고린도교회가 드린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을 맡아 관리할 세 사람으로 구성된, 말하자면 [재정위원회]가 구성된다. 이를 위해 바울은 참으로 심혈을 기울이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20)조심함때문이다. 그는 불필요한 오해(7.2b) 때문에 고린도교회를 어지럽히는 성도들의 대명사인 어떤 사람’(3.1)들에게 빌미를 제공하거나, 아름다운 구제헌금의 목적과 헌신의 값어치가 반감되는 일을 사전에 차단한다. 이 또한 건강한 교회의 모습이다.

이어지는 바울의 마음이 소중하다: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 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21) 새가 두 날개로 날듯이 바울은 하나님의 일이 하나님께는 물론이고, 사람에게까지 투명하게 진행됨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건강한 생각을 하고 있다. 혹자들은 하나님께만 옳고 정당하고 정직하게 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바울의 목회에 비춰보면 이런 생각은 옳지 않아 보인다.

교회 재정이 투명하게 집행되고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그것을 맡아 관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바울이 그토록 사람을 세우는 일에 조심, 또 조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재정위원들로 세워지는 세 사람의 등장 배경이다. 종종 교회에서 문제가 되어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하기까지 치명상을 입는 것은 관리하기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뒤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헌금하기와 관리하기는 같이 간다. 이 둘의 조화와 균형, 이것이 바울이 세심하게 살피는 헌금에 대한 목회적 접근이다.

   

 

재정위원들(16-19,22-23)

 

재정위원들을 세 사람이나 세운 이유는 분명하다. ‘거액의 연보’(20)를 예루살렘교회까지 아무런 탈 없이 송금하려면 이 일에 참여한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믿고 공감할 수 있는, 그래서 바울은 헌금하기 관리하기 사용하기로 이어지는 투명한 헌금벨트를 염두에 둔 포석을 하였던 것이다. 다들 자신이 몸담고 헌신하는 곳에서 검증을 받았다는 것은 새로운 일을 맡기는데 있어 무엇이 중요한가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

디도는 이미 고린도교회와 깊은 신뢰 관계에 있고(7.6-7), 그리고 한 형제는 여러 교회들로부터 추천을 받았고(19), 또 다른 우리의 한 형제는 각종 시험(test)을 거쳐 모든 일에 열심이 대단한 것이 드러났다. 각각의 추천서들은 다음과 같다. 이는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쓰시는 사람들의 특징을 말해 준다.

 

디도(16-17,23a)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2.13)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7.6b)

   “그래서 우리는 디도가 이미 여러분 가운데서 시작한

    이 은혜로운 일을 계속하여 끝내도록 격려했습니다.”(6, 현대인의성경)

 

디도는 고린도교회를 위한 열심에 있어서 바울이 자신과 같다고 할 만큼 바울로부터 전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16). 그는 이 힘들고 막중한 일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만큼 헌신되어 있다. 이처럼 쓰이는 대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실 바울의 입장에서 보자면 믿고 신뢰하여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말하자면 디도는 바울의 목회를 위해 함께 일하는 일꾼이자, 특별히 고린도 교구를 맡은 동역자다(23a). 그는 있는 힘을 다 해 바울을 도와 고린도교회를 위해 헌신했고, 또 다른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바울로부터 파송 받는 일을 기쁨으로 자원한다. 어렵고 힘든 일, 다시금 도보와 배를 타고 긴 여행(빌립보/마게도냐 고린도 예루살렘)을 해야 하는 수고로운 일, 귀한만큼 맡은 바 사명에 대한 부담이 왜 없었을까. 하지만 뒤집어 보면 일 할 수 있다는, 하나님이 쓰시겠다는, 이것만큼 귀하고 축복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디도와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고, 또 디도와 같은 종으로 쓰이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기도가 된다.

 

그 형제(18-19,23b)

 

칭찬을 받는 자’(18)가 쓰임을 받는다. 그것도 모든 교회로부터다. 왜 그런가? 복음을 전하는 일 때문이다. 그는 복음의 빛 안에서 영혼을 볼 수 있고, 교회의 유익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두루두루 인정을 받고 있었던 것 같다. 더구나 그는 이 사랑의 구제헌금이 주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임을 정확하게 깨닫고 있다는 점, 이것은 단순히 예루살렘교회의 어려움을 돕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까지를 서로 공감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19).

이는 바울뿐 아니라 여러 교회가 함께 인식하고 있는 구제헌금에 대한 시각이기도 하다. , ‘거액의 연보’(20) 때문에 인간적으로 우쭐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참으로 놀라운 바울의 통찰이요 목회의 깊이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어쩌면 인본주의(人本主義)가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와 함께 가는 다른 형제들은 여러 교회가 뽑아서 보내는 대표들로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낼 사람들입니다.”(23b, 공동번역)

 

우리의 한 형제(22,23b)

 

재정을 맡을 청지기는 여러 번 시험(test)해 보아서 정말 그 일에 합당한가를 살펴볼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22a). 아마도 그가 처음에는 고린도교회가 과연 이 구제헌금에 참여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던 모양이다(22b). 하지만 그는 여러 교회의 추천을 받고, 또 바울을 통해서 이 일에 대해, 그리고 고린도교회에 알아가면서 신뢰가 깊어졌던 것 같다. 여기서 중요한 핵심은 자기 생각을 접고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화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이 사람 역시 사사로이 여행이나 하면서 지나가는 길에 교회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다. 고린도교회를 통해서 받으실 주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여러 교회의 대표로서 보냄을 받은 것이다(23b). 바울은 이 일을 보다 효과적으로 성취되기 위해서 고린도와 다른 타문화권에서 생활하던 이 형제로 하여금 이제 방문하게 될 고린도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도록 배려하였다. 이것은 중요한 만큼 주효하였고, 그 결과 고린도교회를 향해 더욱 열심을 내게 되었다. 한 사람을 건강하게 세워나가는 바울의 영적 영향력이 눈부시다.

   

 

부스러기 묵상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에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그들에게 보이라.”(24)

 

돈주머니가 회개해야 진짜 회개다.”는 말이 있다.

루터(M. Luther)가 한 말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없지만 돈과 관련하여 늘 의미를 두고 생각하는 말 가운데 하나다. 헌금에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반드시 경제적인 능력의 유무에 있는 것만은 아닌 듯싶다. 하나님도 돈의 많고 적음을 헌금하기의 바른 척도라고 하신 적이 없으시다. 결국 헌금의 핵심은 8장의 이곳저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바로 그 은혜. 헌금하기라는 결과는 이미 마음에서 시작된 은혜를 넘어설 수 없다. 은혜의 삶에 승리하면 헌금하기에도 성공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이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 가운데 하나를 헌금으로 제시하신다. 이스라엘이 광야교회’(7.38)에 있을 때 하나님은 만나를 통해서 직접 가난한 자와 넉넉한 자를 평균케 하셨었다(8.15, 16.18). 그런데 동일하신 하나님은 지금 이 일을 신약교회에게 부탁하신다. 공산주의(共産主義)도 실험하다가 실패한 이 일을 하나님은 하늘을 바라보는 성도들이 할 수 있다고 하신다.

놀라운 것은 이 복되고 아름다운 구제헌금을 드리는 일에 너희’(고린도교회)우리’(바울공동체)저희’(재정위원들)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이다(24).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동역자가 된다는 것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영광스러운 일이다. ()의 섬김이 너()를 돕고,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온 교회가 한 지체요 주의 영광을 드러낼 몸이라는 것, 이것이 헌금하기 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섭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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