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지 않을 면류관을 위하여!(고전 9.24-27)

20200615a(묵상)

 

 

 

썩지 않을 면류관을 위하여!

1 Cor. 9.24-27

  

   본문 관찰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바울의 관심

 

달음질하기에서 상 얻는 자는 오직 하나다.

2등은 기억되지 않는다. 황영조 선수에 이어서 2등을 했던 선수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옛날 시골 초등학교 운동회 때 모든 게임이 끝나고 그날의 하이라이트로 운동장 10바퀴를 뛰는 마라톤이 열린다. 그런데 촌놈은 그만 양 손에 고무신을 들고 첫 바퀴부터 있는 힘을 다 해 죽어라 뛴다. 그런데 두 바퀴 째부터 서서히 뒤로 처지기 시작한다. 이것이 촌놈 마라톤이다.

또한 전쟁에서 2등은 없다. 대통령 선거에서 2등을 했다고 해서 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끝까지 달려야 하고 결국은 이겨야 한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 일찍 피는 꽃이 일찍 진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20대에 반짝 피다가 지는 꽃은 볼품없다. 사실 ’()이라고 할 때 그것은 주어지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인쇄해 도장 찍어서 나에게 수여하는 상()도 있는가. 상을 얻기 위해 열심으로 최선을 다 해야 하는 이유는 이를 누가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기기를 다투는 자의 삶이다.

 

 

천국상급(24-26)

 

바울은 목표가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의 목표는 천국 상급이다. 이를 위해 성도는 마땅히 상을 얻기 위해 달음질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상을 얻는다, 썩지 아니할 것’(면류관)을 얻고자 한다고 할 때 사용하고 있는 상급이라는 단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상급을 면류관이라고 말한다. 본문 역시 썩지 아니할 것’(면류관, 2)을 얻기 위해 이기기를 다투는 자(25), 그가 바로 상 얻는 자’(24)라고 말한다.

그럼 이 상급은 어떻게 얻는가. 엄격한 영적 훈련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한다(24). 구원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값없이 받지만 상급은 행위로 받는다. 이를 위해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한다(25). 썩을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도 절제해야 한다면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얻기 위해 경주하는 성도는 얼마나 절제해야 하겠는가.

이처럼 상급을 얻으려면 마땅히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절제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을 말한다. 절제는 가장 최고로 좋은 것을 얻기 위해 방해와 장애가 되는 것과, 덜 좋은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절제는 금욕주의와는 근본적으로 구별된다(2.18-23).

또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방향과 목표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26). 주님이 그러셨다(2.5-11). 땅의 것을 심으면 땅의 소산을 얻는다. 그러나 영원한 것을 심으면 썩어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것을 거두게 된다. 하나님의 축복은 이 세상에서도 받는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만 받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상급은 저 천국에서 받는다. 현재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그대로 천국 곡간에 쌓이는 상급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야겠다.

   

 

자신의 영혼(27)

 

그는 복음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동시에 그는 자기 영혼을 돌아보는 일에도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는 것은 자기를 돌아보는 것을 적당하게 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자신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해도 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이 둘은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

자신에 대한 관심은 무엇인가. 복음을 전한 뒤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그런 두려움이 아니다. ‘버리다는 단어는 당시 2년마다 고린도에서 열리는 고대 올림픽에서 사용되는 전문 용어다. 이 말은 자격이 없다”(disqualified)는 의미를 갖는데, 바울이 염려한 것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데 바빠 정작 자기 자신은 소홀히 함으로써 상()을 얻는 자격을 상실하는 자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바울은 자기 자신의 영혼이 메마르지 않도록, 영적 성장이 중지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본다. 자신의 영혼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은 영적 성장이 멈춘 것이다. 성장이 멈춘 사람들은 거룩한 것에 대한 부담, 자기 영혼의 외소함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 사람에게는 거룩한 두려움이 없다.

그러나 자격이 없는 자로 버림이 된다는 것은 이미 받은 구원이 취소된다는 뜻이 아니다. 선수 자격을 상실한 것은 단지 승리와 함께 얻게 되는 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자기 영혼을 돌아봄으로써 하늘의 상급을 잃어버리는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겠다는 점을 날마다 의식하며 살았다.

한편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경고성 메시지였다. 바울은 하나님의 버림의 가능성을 생각하도록 촉구한다. 만약 고린도 성도들이 산적한 문제들로부터 자유하지 못하면 세례와 성찬(10.1-3)에 참예한 구약의 백성들이 결코 안전지대에 있지 못했던 것처럼 그들 역시 버림이 될까두려워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그러니까 천국 상급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라는 메시지인 셈이다.

 

 

부스러기 묵상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126.5-6)

 

이기기를 다투는 나의 관심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것에 자족(만족)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미래에 받을 구원을 준비하며 살아야한다. 속된 표현 같지만 이왕이면 이 땅에서도 복되게 살고, 저 천국에서도 썩지 않는 면류관을 받아쓰고 살아야겠다. 앞서 썼지만 구원은 은혜로 받고 상급은 행위로 받는다.”는 말을 난 좋아한다.

어떤 분이 참 재미난 얘기를 만들었는데 두고두고 생각게 하는 이야기다. 대략 내용은 이렇다: 어떤 장로님이 천국에 갔더니 예수님께서 중국집으로 안내하셨다. 저쪽 테이블을 보니까 아는 집사님이 탕수육을 먹고 있었다. 그래 내심 나는 아마 정식(요리)을 주시겠지 했단다. 그런데 예수님이 주방을 향해 여기 짜장면 하나!’ 그러더란다. 그래 화가 나서 주님께 따졌다. 아니, 저 서리집사는 탕수육인데 나는 짜장면이냐고. 그랬더니 주님은 빙그레 웃으시기만 하시길래, 이때 장로님이 먼저 천국 온 자기 교회 목사님을 생각하고선 그럼 목사님은 뭘 드셨냐고 물었단다. 그 다음이 절정이다. 주님이 이렇게 대답하셨단다: “네 목사님은 지금 배달 나갔다!”

천국에서까지 배달 다니지 않으려면 지금 잘 해야겠다. 뭐 주님 시키시면 기쁨으로 해야겠지만 . 그래, 영원한 것을 심자. 저 땅에서도 죽지 않고 자랄 그런 것을 위해 살자. 이 세상에서 아무리 떵떵거리고 살아도 그거 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이다. 아침 안개와 같고, 풀의 꽃과 같으며, 더 헛되고 헛된 것들이다. 지금은 영원히 썩지 않을 천국의 것을 심으며 살 때다. 정신 바짝 차리자! 이러다가는 천국에서 남들은 다 면류관인데 나는 개털모자(?) 밖에 쓰지 못하면 큰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싸움인 자기와의 싸움에도 승자(勝者)의 법칙이 있다(25-27)는 말씀, 두고두고 마음의 창에 걸어놔야겠다. 모든 일에 절제(節制, 25), 승리에 대한 목표(target, 26), 동시에 실패한 전도자가 되지 않기 위해 저기 몸을 쳐 복종하게 해야 한다(27). 살아있기 때문에 상을 향해 달린다. 죽은 시체는 결코 일하지 않는 법이다. 나의 살아있음을 무엇으로 느낄 것인가. 오늘도 보이는 답()인 상()을 향해 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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