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교회의 미래다(고전 16.13-24)

20200630(묵상)

  

 

 

사랑은 교회의 미래다.

1 Cor. 16.13-24

  

   본문 관찰

 

   목회적 코멘트(13-18)

   문안과 축도(19-24)

   

 

사랑일기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14)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22a)

   “나의 사랑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24)

 

문제도 많고 탈도 많은 교회가 바로 고린도교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단지 저들을 정죄하고 꾸짖는 분위기로 말하지 않았다. 끝까지 권면하고 격려하고 믿고 사랑에 따른 희망을 잃지 않은 순전한 마음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주님 다시 오시는 날’(22)까지 이 희망과 사랑일기를 써 갈 것이다. 이것이 분쟁과 실제적인 문제들로 얼룩진 고린도교회를 향한 클리닉의 기초다.

사랑이 대답이고 희망의 기초다. 사람은 믿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바울이 그랬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할 아무런 이유나 근거가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말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다. 바울에게서 사랑을 보고 느끼는 것은, 그러면서 그의 사랑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우리도 사랑으로 클리닉을 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목회적 코멘트(13-18)

 

   깨어 있으라!

   믿음에 굳게 서 있으라!

   남자다워라!

   강건하라!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바울과 교회가 기억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보라(15-18). 이들은 우리 주님이 기억하시는 바 된 성도들이다. 여전히 교회가 희망인 것은 이 척박하고 갈기갈기 찢긴, 그래서 흔들리는 공동체일지라고 그 안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붙들고 다시 십자가 사랑의 새 순이 돋게 하는 자들이 있음이다. 저들의 이름은 저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아시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늘의 신비한 책에 우리의 이름이 기록되기까지 바울의 심정으로 교회와 복음과 주님을 섬기는 자로 살아가기를 소망해 본다.

   

 

문안과 축도(19-24)

 

바울공동체(바울과 그 곁에 있는 사람들)와 고린도교회가 이처럼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 지체(12.12-27)로서 서로 문안을 나누는 모습, 퍽이나 아름다워 보인다. 아시아의 교회들(8, 지금의 터키. 바울은 지금 아시아의 수도인 에베소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다)과 고린도교회의 문안에서, 아굴라와 부리스가 부부(18.2,18,26, 16.3, 이들 부부는 고린도에서 현재 에베소에서까지 바울의 동역자로 살고 있다)는 물론이고 저희의 가정교회와 고린도교회의 문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인 교회의 한 모델을 본다(19). 에베소교회와 고린도교회의 교제 역시 마찬가지다(20a).

한편 바울은 지금 쓰고 있는 이 편지가 바울 자신이 보낸 편지인 것을 알리는 친필 문구를 직접 적어 넣는다(21). 이런 방식은 다른 여러 편지들에서도 발견되기는 하지만(6.11, 살후3.17), 가짜(유사) 편지들이 돌아다니면서 교회의 혼란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마지막 인사치고는 좀 강렬하다 싶은 문안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23a) 지금껏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대한 두 가지 클리닉, 즉 분쟁(1-4)과 각종 불거진 이슈들(5-16)에 대한 목회적이고 신학적인 코멘트를 해 왔다. 그런데 이 긴 목회적 순례를 마무리하면서 사랑이라는 깃발을 다시금 휘날리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1.11b)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3.3a)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11.18)

 

      →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12.31b)

          “사랑을 추구하라!”(14.1a)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16.14)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16.22a)  

   “나의 사랑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24)

 

분쟁 클리닉과 교회 클리닉은 엄밀히 따지면 본질은 하나다: 사랑은 고린도교회의 미래다. 그래서 바울은 제일 좋은 길로서의 사랑을 말하였고, 이처럼 복음의 새 길을 따라 사랑으로 교회를 다시 세워가게 되기를 고린도교회 클리닉의 결론처럼 제시한다. 결국 이 편지에 든 권면과 책망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나의 사랑’(24)이 고린도교회와 함께 한다는 축복은 그래서 긴 여운을 남긴다.

  

 

부스러기 묵상

 

   마라나타!(maranata, 22b) - 우리의 주님, 오소서!

 

마라나타는 헬라어가 아니라 아람어다.

아마도 초대교회는 공히 이 말을 예배 용어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는 온 교회가 주의 재림(다시 오심)을 그만큼 사모하며, 종말론적 사고를 따라 언행하며 살았음을 희미하게나마 보여주는 대목이다(15_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이 없다는 자들이 교회 안에 있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마라나타!’를 말하고, 이어 축도로 고린도전서를 끝맺는다.

우리가 복음 안에서 드리는 사랑의 삶과 수고는 헛되지 않다. 왜 그런가. 주님이 다시 오시기 때문이다. 현재는 비록 고통과 고난과 탄식으로 숨 쉬고 있을지라도 미래는 마라나타!’이다. 승리하신 그리스도는 세상 끝날까지 교회와 함께 하실 것이다. 그리고 다시 오신다. 그리므로 우리의 수고는 헛되지 않다. 부활과 재림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한다면 교회는 다시 부흥하며 세상의 빛으로 일어날 것이다. 교회는 희망이다. 복음은 희망이다. 그리스도가 소망의 주이시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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