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하기를 구하라!(고전 14.13-25)

20200623a(묵상)

 

 

 

예언하기를 구하라!

1 Cor. 14.13-25

 

   본문 관찰

 

    방언과 예언의 비교(1-25)

    예언이 방언보다 더 나은 이유(2-5)

    예증(6-12)

    예배와 관련하여(13-19)

    방언이 예언보다 열등하다(20-25)

    

 

비교론(방언 vs 예언)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12b)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26b)

 

방언과 예언에 대한 가르침(지침)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방언은 불신자에게 믿도록 자극을 준다는 면에서 그들을 위한 표적(표징)이 될 수 있다(22). 한편 예언은 회심이 일어난다(24-25). 이로써 공동체를 세우는 것과 관련하여(5), 또한 회심케 하는 것과 관련하여(24-25) 예언이 방언보다 더 우월하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은사론을 둘러싼 혼돈을 덕 세우기’(14.12b,26b)라는 필터에 걸러냄으로써 고린도교회가 은사를 둘러싼 예배의 혼란을 넉넉하게 극복해 주기를 기대한다.

  

 

예배와 관련하여(13-19)

 

방언하기는 통역하기와 짝을 이룰 때 온전해진다(5,13). 방언은 철저히 하나님과 관계에서 그분에게 하는 개인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공동체(예배) 안에서는 통역이 있을 때가 아니면 자제(절제,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 바울의 지침이다. 왜냐하면 방언으로 기도할 때 그것을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초신자, 16,23)믿지 아니하는 자들’(22,23)이 보거나 듣게 될 때 도대체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16b), 미쳤다”(23)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당사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겠지만(4a) 이런 영적인 은사에 무지한 자들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아멘할 수 없고(2,16b), 결과적으로 그에게는 덕 세움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셈이다.

방언을 통해 그 개인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덕을 세우는 것이야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4,17) 신앙이란 무릇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더더욱 그것이 영적 은사와 관련하여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에 주신 자의 의도를 따라 그것을 잘 관리하고 사용하는 것이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임을 방언하기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기를 기대하는 바울에게서 개인적 은사를 넘어서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 예배는 각 개인이 드리지만 동시에 공동체(교회)가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이다. 모두가 다 마치 오케스트라로 나아가는데 갑자기 혼자 솔로처럼 마음대로 방언하기를 한다면 전체의 하모니는 깨지고 만다. 때문에 바울은 방언하기를 금하는 것이 아니라(5a,18) 통역이 없이는 교회(공적인 예배)에서는 금할 것을 명하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얼마든지 권장된다(28).

  

 

방언이 예언보다 열등하다(20-25).

 

    방언 vs 예언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 원하노라.”(5a)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예언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6)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리라.”(15)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19)

 

[방언하기]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12.30)

방언도 그친다(13.8).

방언은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다(2).

방언은 아무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다(2).

방언은 성령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이다(2).

방언은 자신의 덕을 세우게 한다(4).

방언은 통역이 없으면 예언보다 못하다(5).

방언은 알아듣지 못하면(통역이 없으면) 허공에다 말하는 격이다(6).

방언을 서로 알아듣지 못하면 서로에게 야만(외국인)이 된다(11).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방언받기를 구하라(12).

방언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해야 한다(13).

내 영은 방언으로 기도하지만 마음에는 아무런 열매가 없다(14).

영으로도 마음으로도 기도하는 것이 최상이다(15).

영으로만 축복(찬미)하면 초신자에게 덕을 세우지 못하게 된다(16-17).

방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다(22).

온 교회가 방언을 한다면 혹 초신자를 배려하지 못한 일이 있을 수 있다(23).

 

[예언하기]

예언()은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밝히는 것이다(11.5).

다 선지자(예언자)이겠느냐(12.29)

예언()은 모든 비밀과 지식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이다(13.2).

예언도 없어진다(13.8).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1,5a).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우고 또 격려하고 위로한다(3-4).

예언은 믿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다(22).

예언은 예배 중에 모든 이에게 책망과 심판을 받게 한다(24).

예언은 사람들의 마음에 숨겨진 비밀을 드러낸다(25).

예언은 회심이 일어나게 한다(24-25).

 

 

부스러기 묵상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2)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14)

 

방언하기에 대한 보다 실제적인 부분을 좀 더 생각해 본다.

영으로 비밀을 기도하는 방언은 자신도 기도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알지 못한다(물론 대략 무엇을 기도하는지는 알지만...). 때문에 통역이 없으면 자신도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깊은 기도는 되지만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된다.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뭘 말씀하시며, 내가 그 기도를 통해서 무엇 안에 있는가를 알지 못하기에 방언하기가 열매맺기와는 단절되어 있다.

그래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해야 한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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