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제1차 선교행전 스타트(행 13.1-12)

20231203(양무리교회)

  

 

 

1차 선교행전 스타트

Acts. 13.1-12

  

 

    제1차 선교여행(13.1-14.28): 바울과 바나바, 안디옥교회

 

    준 비(13.1-3)

    구브로(13.4-12)

    비시디아 안디옥(13.13-52)

    이고니온(14.1-5)

    두스드라와 더베(14.6-20)

    복귀 여행 및 귀환(14.21-28)

 

 

베드로행전 바울행전

 

    [안디옥교회 지도자](1): 설교자와 교사들

    *바나바(2) 구브로 출신, 레위인, 요셉(4.36-37)

    *시므온(니게르) 흑인 추측, 아프리카 출신

    *루기오 구레네 출신, 북아프리카 사람

    *마나엔 헤롯 안티파스의 젖동생, 조언자(어릴 적 친구)

    *사울(바울, 2,9) 가말리엘 문하생, 바리새인, 박해자

 

이방에 세워진 안디옥교회를 주목한다(11.19-26).

유대 예루살렘교회를 통해 헬라 안디옥에 세워졌는데, 그러자 기근을 만난 예루살렘교회를 구제하는 일에 헌신하는 교회로 자랐다(11.22 11.29-30, 12.25). 그러더니 [이방선교]를 위한 센터로 쓰이게 된다(13.1-3). 하지만 더 생각해야 할 점은 이러한 계획과 실행이 안디옥교회가 먼저 이를 스스로 깨닫고 준비한 것이 아니다. ‘성령님께서 이 일을 앞서 주도하고 계시다(2). 성령님은 11장에서 안디옥교회의 설립에서부터, 그리고 마침내 13장에서 복음이 땅 끝으로까지 확장되는 이 모든 일을 이끄신다. 이처럼 사도행전은 베드로행전에서 바울행전으로, 예루살렘에서 땅 끝으로 출항을 시작한다. 여기에 안디옥교회가 서 있다. 그리고 이를 실행하는 지도자들이 소개된다(1).

 

 

준 비(1-3): 안디옥

 

    1 안디옥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성령님이 앞서서 이끌어가는 교회가 건강하다. 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로 돌아와 이방의 땅 헬라에 교회가 세워지고(11.19-21), 그러자 유대 예루살렘교회가 바나바를 파송하고(11.22), 마침내 바나바가 추천하여 사울이 이방에 세워진 이 안디옥교회에 합류하고(11.25), 그래서 바나바와 사울, 둘이 교회에 1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11.26a). 그 열매로 일까. 이어지는 13장에 교회의 지도자들인 설교자와 교사 다섯 사람이 소개되고 있다(1).

 

그런데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어도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앞서는 교회가 아니라 성령님이 앞서 행하시는 교회가 안디옥교회다: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2) 이처럼 성령님의 지도를 받는 교회, 성령님이 말씀하시는 교회, 성령님을 사람 장벽으로 가로막지 않는 교회, 그래서 성령님이 일하시는 것을 따라 살아가며 순종하는 바로 그 교회를 만나게 되는 13장이다. 성령님은 말씀하시고, 거기에 교회는 듣고 행하고 섬기는 것이 주님이 이 땅에 세우시기를 원하신 바로 그 교회다.

 

11장에서 안디옥교회가 세워지는 순간부터 이제 세계선교의 서막이 열리는 13장에까지 안디옥교회에는 사람 냄새가 없다. 먼저, 바나바가 예루살렘교회로부터 파송을 받기 이전에 이미 믿음을 가진 소위 초기 설립(개척, 11.19-21 22) 멤버들이 여기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안디옥을 주름잡지 않는다. 또한, 바나바나 사울을 통해 1년 동안 가르침을 받아 믿게 된 부흥기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11.23-30) 역시 교회를 장악하지 않았다. 특별히 소위 굴러온 돌이라 할 수 있는 바나바와 사울과 달리 박힌 돌에 비유할 수 있는 시므온과 루기오와 마나엔 같이 이제 막 떠오르는 리더십이라 할 수 있는 선지자들과 교사들(1)이 자신들만으로 안디옥을 주도하는 그런 인간적인 흐름이 전혀 없다는 얘기다(고전1.12 참조).

 

그러면 무엇인가. 오직 성령님이 말씀하시고 교회로서의 중심을 잡고, 거기에 기꺼이 순종하는 것 밖에 다른 색깔이 보이지 않는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2-3) 이처럼 주를 섬겨 금식하며 성령님의 소리에 민감한, 하지만 성령님이 앞서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뒤를 따라 실행하는 특권을 자신들이 받았다는 식으로 자만하지 않는, 그러니까 변함없이 금식과 기도로 주님이 시키는 일에 헌신하고 순종하는 종의 자리에서 묵묵히 헌신한다.

 

    안디옥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는 것은?

    ① 가르침과 신앙의 훈련이 있는 교회(11.26)

    ② 기도하는 교회(12.5,12)

    ③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교회(13.1-2)

    ④ 사역자를 성령(말씀)이 시키시는 대로 세우는 교회(11.25-6,30, 12.25, 13.1-2)

    ⑤ 받은 은혜를 다시 나누는 일에 헌신하는 교회(11.22-26 29-30, 12.25)

 

어떻게 이제 막 세워진 개척교회(새신자들)가 이럴 수 있을까. 안디옥교회가 이처럼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는 것은 가르침과 신앙의 훈련이 있는 교회(11.26), 기도하는 교회(12.5,12),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교회(13.1-2), 사역자(하나님의 사람)를 성령이 이르시고 시키시는 말씀대로 세우는 교회(11.25-6,30, 12.25, 13.1-2), 받은 은혜를 아는 만큼 이를 다시 주는 일에도 헌신하는 교회(11.22-26 29-30, 12.25)에서 그 비밀을 찾을 수 있다. 그러니 마침내 교회는 땅 끝까지 주와 복음을 섬기는 교회로서 헌신한다. 이렇듯 한 교회가 바르게 서면 세계가 복을 받는다. 하지만 전통, 관행, 규칙, 역사, 인습, 사람, 회의와 사람의 결정이 앞서는 화석화된 교회에서는 결코 이러한 영광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도 이와 같은 건강한 교회인가. 우리 역시 하나님이 쓰시기에 불편하지 않는 바른 교회인가. 안디옥교회를 통해 우리를 돌아보게 하시는 말씀이다.

 

 

안디옥교회 구브로(4-12): 증인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5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6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4a)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5) 결과는 전혀 다른 두 양상을 만난다. 하나는 거짓 선지자 그가 그들(바나바와 사울)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힘쓰는 악의 세력이다(6-8).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하는 총독 서기오 바울과 같은 사람이다(7). 똑같은 복음이요 동일한 전도자들이 전하여 듣는 말씀인데도 이처럼 극과 극으로 갈린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로 보건데 교회가 성령님께 순종하고 헌신한다고 해서 언제나 좋은 일, 순탄한 일,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일만 만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안디옥교회는 온 땅’(1.8)을 향한 선교를 시작하자마자 이처럼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무엇보다 성령이 이르시되’(2a)로 일을 해도 늘 이처럼일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교회는 결과주의, 업적주의, 성과주의라는 성공 이데올로기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교회는 선교 정책을 다시 결정하거나 보류하지 않는다. 또한 뒤에서 원격조정하지도 않는다. 이러쿵저러쿵 흔들지도 않는다. 모든 것을 맡겼고 위임한다. 오직 성령이 이 문제를 해결하시도록 그 어떤 사람의 소리나 언행을 앞세우지 않는다(9). 사람의 소리가 앞서면 성령님은 침묵하신다. 사람이 먼저 행동하면 성령님은 일하실 수 없게 된다. 그 와중에서도 소리 없이 바나바와 사울로 시작했으나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9a)로 분위가가 넘어가고 있을 뿐이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도 성령님은 마침내 바울행전파노라마를 시작하신다.

 

 

부스러기 묵상

 

바울의 소명은 교회를 통해, 성령님을 통해 이루어진다(9.15-16 13.2,4).

한 개인의 부르심이라는 소명이라 하더라도 이처럼 교회 공동체를 통해 성취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바울은 이 소명이 성취되기까지 여러 해를 기다렸다(9.30, 11.25). 성령께서 그를 다시 부르시기까지 그는 하나님보다 결코 앞서지 않았다(2-4). 그렇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11.25-26). 간혹 열정이 앞서거나,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다는 식으로 덤벼드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다메섹 이후 모든 것을 다 갖춘 사울이지만 하나님이 그의 첫 소명에 대한 후속조치를 하기 전까지 그는 조용히 스타트 라인에 서 있을 뿐, 스스로 출발을 하거나 결정하지 않았다(11.25). 그러더니 성령님이 그를 쓰시겠다 부르실 때 기꺼이(1-3), 그리고 즉시 응답한다(4).

 

한편 구브로의 총독은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열심을 보인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 엘루마는 이를 훼방함으로써 성령행전의 가는 길을 거역한다(8). 두 법이 첨예하게 싸우는 것을 목도한다(10). 영적 전투는 이렇듯 언제나 치열하기만 하다. 어디나 주의 일을 가로막는 악의 세력이 있다. 1차 전도여행의 첫 번 지역에서 역시 첫 대적을 만난다. 하지만 바울은 거짓 선지자 엘루마의 실체를 아는 일에 영적 탁월성을 앞세운다. 먼저 그를 대적한다(10). 그리고 정죄한다(11). 그 결과 총독이 믿게 되는 결과를 만난다(12). 복음이 가는 길을 가로막는 사탄의 세력을 대적하는 바울의 영적 싸움을 보면서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고, 또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를 생각한다.

 

바울은 준비된 사람이다. 그는 다메섹에서 부르심을 받고(9.1- ), ‘여러 날이 지나매로 시작되는 923절을 전후하여 복음행전의 무대에 등장하기까지 최소 3년의 시간을 보냈다(1.17-18). 그리고 다소에서 다시 안디옥으로 온 후에, 1년을 가르치는 사역을 한 후에(9.30, 11.25-26), 그후 예루살렘교회를 방문하고 돌아오기까지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이후에 -이미 그는 사역에 계속 헌신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성령님에 의해 부르심을 받는다(1-4). 이러기까지 최소 수 년 동안이라는 준비 기간을 거친 이후에 이방 선교의 그릇으로서의 사명에 헌신한다.

 

사실 바나바가 불러내었고(11.25-26), 안디옥교회가 파송했지만(13.3) 성령님의 주도하심이 그 무엇보다 우선한다(13.2,4). 이것이 소명이고 사명이다. 이처럼 위로부터의 부르심이 없이는 사역자로 세워질 수 없다. 때문에 지금도 부르심을 받았다고 할 때 이것이 중요하다. 먼저 바나바와 같은 동역자와, 그리고 교회를 통한 공적인(공동체적인) 부르심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령님께서 쓰시겠다는 위로부터의 개인적인 부르심이 선행되어야 한다. 소명과 그에 따른 사역은 사람으로부터 만들어지거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것만큼 위를 바라보게 되고, 성령님의 부르심으로부터 소명이 시작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따라 세워지고 일하는 곳이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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