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율법 아래 있을 때 일어나는 일들!(행 10.9-23)

20231029(양무리교회)

 

  

 

율법 아래 있을 때 일어나는 일들!

Acts. 10.9-23

  

 

    본문 관찰

 

    그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9b)

    하늘이 열리며 보니 잡아 먹으라’(11-13)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14a)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15)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더니(17a)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19-20)

 

  

편견의 보자기를 벗어 버리라.

 

9절에서도 베드로는 기도하기를 시작한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다(3.1). 기도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룩한 것이다. 그는 고넬료(Cornelius)의 특사가 자신에게 오고 있는지, ? 무엇 때문에 지금, 하나님이 그들을 보내시는지 아직알고 있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지도 않다.- 그것과 상관없이 그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간다. 이렇게 이미하나님의 일은 베드로에게 시작되었다.

 

또한 고넬료의 특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베드로가 있는 욥바(Joppa)의 무두장이(피장, 가죽 가공업) 시몬의 집을 향하여 가까이 왔지만 그들도 이 일이 역시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있을지 아직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5-6절의 직무에 충실하다(17-18).

 

, 지금 10장에서 베드로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리고 고넬료는 그의 종들을 베드로에게 보낸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두 사람을 통한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하나님의 작정하심(, 섭리)은 비록 그것이 실행될 대상에게 아직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이미실행되어지고 있는 진행형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생들은 모르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때에 비로소 알려지게 된다.

  

 

    계 시(Revelation): 하늘이 열리며 보니 있더라.”(11-12)

 

    ∙하나님의 사자 고넬료(3-6):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 30-32

    ∙성령 베드로(19-20):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 28-29

 

섭리는 위로부터 주어지고 시작된다: “하늘이 열리며 보니 있더라.”(11-12) 계시는 이 땅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베드로도 아니고, 고넬료도 아니다. 이 땅의 소산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늘이 열리는 것이다(11a, 7.56). 또한 계시는 스스로 깨닫는 것이 아니다. 계시는 자각, 느낌, 학습, 경험, 연습, 환각, 최면, 엑스타시(Ecstacy), 뉴에이지(New-Age)가 아니다. 계시는 [인격의 주 하나님 vs 인격자인 사람] 사이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섭리이자 은총이다. 계시의 주체는 오직 하나님이다.

 

그런데 계시자인 하나님과 그것의 수납자인 베드로 사이에 얘기치 않은 문제가 일어난다. 무슨 문제인가. 하나님의 계시가 사람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놀랍게도 베드로가 계시대로 언행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지금 이방 선교는 그 시작에서부터 이와 같은 긴장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중대한 일이 예상치 않게 다름 아닌 베드로에게서 일어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격이다.

 

    [율법 아래 있을 때의 베드로](13-15)

    하나님: “일어나 잡아 먹으라.”(13)

    베드로: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14)

    베드로: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14)

    하나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15)

    *환 상: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16a)

 

베드로는 3번이나 하나님의 명령(계시, 말씀, 섭리, 역사)을 거부한다(16). 그 이유는 무엇일까. 베드로는 다분히 구약 율법이라는 시각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끝까지 이러한 선입관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것은 하늘이 열리며”(11a) 말씀하시는 하나님 보다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편견, 율법)을 더 중시하고 있는 베드로의 인간적이자, 여전히 율법의 지배 아래 있는, 그래서 한 걸음도 복음 쪽으로 내딛지 않겠다는 율법의 지배 아래 있는 연약한 모습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베드로에게서라니?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율법인가 싶다. 사도행전이자 성령행전의 중심부가 아닌가. 복음, 하나님의 나라, 성령님이 임하셔서 사도행전의 거대한 파노라마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율법대로 살겠다는 것인가 싶어 어안이 벙벙하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있는 능력의 사도임에도 아직도 이처럼 언행할 수 있다는 점이 당혹스럽다. 혹 저나 여러분 역시도 말씀은 거역하고, 전통과 관습을 사수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조용히 돌아보게 되는 말씀이다. 이를 위해 말씀 두 곳을 살펴보자.

 

     [율법 아래 있을 때에 일어나는 일들](1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22.29-3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7.10-11,13)

 

하나님이 사도행전에서 하시는 말씀보다 구약 모세의 율법이 기준이고 잣대다.

주께서 말씀하셔도 이를 역시 하나님의 말씀 곧 율법으로 거역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율법으로 더 확증하고 확신한다.

결국 율법의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하나님보다 앞에 있고, 더 중요하다.

  

 

정결법: 일어나 잡아 먹으라.”(13)

 

베드로의 율법주의적 대답(14)을 읽으면서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레위기 11장 정결규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레위기 11장과 지금 베드로가 보고 듣는 환상(13,15)과는 갈등 관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결한 짐승은 되새김질을 하며, 굽이 갈라진 네 발 가진 짐승이다. 특히 정결한 짐승일지라도 고기를 먹기 전에 반드시 해당 짐승에게 어떤 의식을 행하고 죽여야 했다. 구약의 율법은 이 부분에 대해서 매우 단호하다(14.3-20, 4.14). 하지만 신약의 복음,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과 초대교회의 입장은 이렇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15.11,17-20).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15.28-29)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로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8.8-9,13, 10.31)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이루어진 구원에 의해 유대인의 음식 규례는 동물제사를 통한 속죄법과 함께 사실상 폐지되었다. 초대교회의 입장도 마찬가지다(14.14-15,17,20,23, 딤전4.3b-5, 1.15). 그러나 사도행전과 성령의 시대에도 이처럼 율법이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가로막고 있고, 율법이 성령이 임하셔서 땅끝까지 전파되는 복음을 가로막고 있는 것 아닌가. 그 누구보다 이 율법을 넘어서야 할 베드로가 이미 폐기된 율법에 묶여있다.

 

그렇다. 베드로는 지금 이 두 사이에 끼어 있다. 초대교회가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파되는 것을 용납하는 일을 위해 베드로가 쓰임 받고 있고, 이것은 동시에 이방 선교의 문이 열리는 것과 그대로 만난다. 하나님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는 것을 여전히 가로막고 있는 놀랍게도 율법과 율법에 매여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것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것을 위해 베드로로 하여금 환상을 보게 하신 것이 주님의 목적이다. 이방인과 유대인을 가로막고 있는 율법이라는 장벽은 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2.14).

 

이를 위해 하나님이 베드로를 환상 가운데 찾아오셔서 먼저 그를 변화시키셔서 당신의 쓰임에 합당하게 만드셨다. 하나님은 지금도 쓰시려는 사람들을 찾아오셔서(3.20), 율법에 매여있는 불신앙과 교만을 깨뜨리신다. 이때 많은 사람들은 마치 베드로처럼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는다. 영적 무지요, 죄악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15)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부스러기 묵상

 

복음의 사람들은 베드로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을 배우고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당신을 알려주실 때 나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베드로는 자신의 지식과 종교적 배경을 앞세웠다. 베드로는 자기의 고정관념(固定觀念)을 깨지 못했다. 18절의 증인이요, 성령충만하며, 이방인 전도를 이미 시작했음에도 그랬다(9.32- ). 우리 역시 옛성품, 이성, 지성, 감성, 본성, 경험, 습관, 전통, 관습과 같은 것들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복종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늘 경험하는 바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살아도 14절처럼 응답하며 살 수 있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이것이 은혜 안에 있는 연약한 인생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처럼 율법과 복음 사이에서 계속해서 의심’(17)하고 있으니 더 답답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성령님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20) 격려하신다. 베드로의 못남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믿어야 한다.

 

마침내 베드로는 뭔가 균형을 잡는다(21- ). 그는 하늘에서 시작되어 지금 땅에서 진행되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서 저희와 함께고넬료를 심방하는 일을 시작한다. 하나님은 여기까지 기다리셨고, 베드로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베드로는 자신의 영적 무지가 하나님의 일하심을 방해하지 않도록 결국은 그렇게 응답함으로써 한 단계 영적 성숙과 성장을 이루어 낸다.

 

참 좋아 보인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이방 선교라는 거대한 그림을 그리시고, 거기에 베드로는 진심으로 아멘하며 따라간다. 이처럼 사도행전 교회가 건강한 증인으로 계속해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아름답기만 하다.

 

따라서 내가 율법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는 복음마저도 거역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끝까지 붙들고 따라야 할 것은 전통과 율법이 아니라 복음과 성령님이라는 것, 이것 역시 베드로를 통해서 깨닫게 하시는 말씀이다. 나를 더 복음의 증인으로 사는 것을 방해하는, 내게 있는 그런 율법이 어떤 것들인지, 이제는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진리가 주시는 자유함을 따라 살아가는 복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율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정한 자유를 주신다. 이것이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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