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사울 그 이후(1): 아나니아가 주목 받는 이유(행 9.10-22)

20230924(양무리교회)

  

 

 

사울 그 이후(1): 아나니아가 주목 받는 이유

Acts. 9.10-22

  

 

    본문 관찰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

    일어나 가서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형제 사울아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전도자 사울

    즉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사울행전 서곡: 부르심과 회개

 

    [사울, 다메섹 프로젝트](1-2) - 그대로 진행되었다면?

    ∙다메섹의 그리스도인을 결박(2,14)

    ∙아나니아는 예루살렘으로 잡혀왔을 것(2)

    ∙사울의 다메섹 교회와 그리스도인 박해-고난-환난-고통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한 핍박자인 사울(1)

       →

            [주의 찾아오심] - 그런데, 그 응답은?

            ∙사울(4-5) - 주여, 누구시나이까?

            ∙아나니아(10) -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주님은 사도행전을 사울과 함께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가신다.

바로 사울, 그가 핍박자일 때다. 그런데 핍박자 사울이 우리가 아는 바울되는 것을 시작하고 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다메섹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는 것이 사명이었던 핍박자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오늘은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20)이시며,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22)하는 전도자 사울이 되었다. 놀랍게도 그는 지금 주의 제자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고 있다(19b). 이 어찌된 일인가.

 

 

아나니아(10-19a): 형제 사울아!

 

    이중 계시(메시지)

    ∙사울(12) -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아나니아(15-16) -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 성취(17-19, 20-22)

 

, 그런데 이 일은 이렇게 시작된다. 사울은 핍박자로 다메섹으로 가고 있다. 이때 다메섹에 사는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를 주께서 찾아오신다. 그리고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신다(10-12). 그는 주(11) 곧 그리스도(15-16)의 음성을 들었고, -앞서 사울 역시 주의 음성을 들었다. 그러나 사울은 그분이 주님이신 줄을 알지 못했다(5).-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이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바로 알았다. 이처럼 주님은 지금 이 다메섹의 한 무명(無名)의 제자 아나니아를 통해 핍박자 사울이 사도 바울이 되는 일을 시작하신다. 하지만 사울의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다메섹의 아나니아는 사울에게 붙잡혀 예루살렘으로 끌려왔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나니아 역시 큰 고난을 받았거나 스데반처럼 죽었을 수도 있다(14).

 

한편 아나니아의 출발은 좋지 않았다. 자기에게 오셔서 말씀하시는 이가 주님인 줄 알았음에도 주의 말씀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13-14). 그럼에도 주님은 그런 아나니아에게 앞으로 사울에게 이루어질 사명을 밝히신다(15-16). 이처럼 하나님은 때때로 그가 주를 아느냐와 상관없이(바울이다!), 그가 주의 명령을 거부하느냐와 상관없이(아나니아이다!) 그런 사람들까지도 하시고자 하는 일을 위한 통로로 사용하시는 분이시다. 그렇게 해서라도 누군가에게는 사명을 주시고, 또한 그를 통해 주의 섭리를 이루어가신다. 이처럼 주님은 사람의 어떠함이 이처럼 함량미달인 사람을 통해서라도 당신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이루신다.

 

따라서 우리는 연약한 죄인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아야 한다. 사람을 바라보다가 주께서 하시는 일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무슨 말인가. 핍박자 사울, 의심하는 아나니아와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도 역사하시는 주님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비록 흔들리는 상황 속이라 하더라도 주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찾고, 발견하고, 깨닫고, 순종하고, 그리고 응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주님은 좀 부족해도 그런 아나니아를 쓰신다. 또한 사울의 어떠함, 곧 그가 핍박자라는 것과 상관없이, 마침내 또한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8)는 그런 사울을 치유하신다. 그리고 그를 성령충만하게 하시며, 또한 죄사함의 세례를 받게 하신다(17-18). 놀랍게도 이 핍박자 사울을 향해 형제라고 부르시기까지 하신다(17a). 여기서 중요하다 싶은 것 하나가 더 있는데 그것은 초대교회 역시 아나니아의 언행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역사하시는 일이라며, 그런 그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듯 아직도 사울이었을 때이지만 교회는 그런 사울과 아나니아의 사역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다메섹 교회가 보여주는 주님의 교회로서의 모습이다.

 

아나니아는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면서, 초기에 가졌던 13-14절이라는 자기 생각과 기준을 내려놓는다. 그리고서 묵묵히 사울 같은 사람과 그를 통해 일하시겠다 하시는 주님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한다. 교회에 필요한 일꾼은 아나니아처럼 주와 복음과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 그런 순종의 사람이다. 이 아나니아와 같은 마음을 가진 증인을 통하여 가 되면 바울이라는 또 하나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다메섹 전도(19b-22): 예수는 그리스도!

 

사울은 핍박자에서 전도자로 변화되었다. 먼저 주께서 부르신 바로 그 은혜 때문이다. 그리고 제자인 아나니아의 순종과 성숙한 일처리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이런 것들이 씨앗되어 핍박자 사울이 전도자 사울이 되는 일이 일어난다. 만약 그렇지 않고 핍박자 사울이 9장을 주도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사울에게 순교의 제물이 된 그런 다메섹 교회였을 것이다. 우리가 아나니아처럼 살아야 할 이유다. 이처럼 사울을 전도자 사울로 품어내는 그런 교회가 서야 할 이유다.

 

전도자 사울이 전한 복음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20).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은 그리스도 곧 메시야이시다(22). 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인가.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 그리고 교회를 잔멸하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 8.3, 9.1-2)하던 사울이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다. 주께 기도하는 사람으로(11), 성령충만을 받은 성령의 사람으로(17), 죄사함의 세례를 받고(18) 성도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만난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리스도라 증거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이러한 급반전은 사람들로 하여금 의아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21). 사실 우리가 다메섹 교회의 일원으로 살았어도 결코 사울을 성도로 받아들이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르지만, 그러나 용납하는 것이 성도의 실력이자 교회의 실력이기도 하다: 형제 사울아 (17a) 이 얼마나 아름답고 건강한 교회의 모습인가.

 

한편, 사울이 거듭난 이후 즉시로’(20a) 복음을 전하였다는 부분을 생각해 보자. 9장의 내용으로 하면 1주일 정도 지난 후에 곧바로 복음을 전한 것으로 보여진다(9,19b,23). 하지만 사울이 사도와 전도자 바울이 되기까지를 간단히 적고 있는 갈라디아서 111절 이하를 보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셨을 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 후 3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15일을 머무는 동안”(1.15b-18)

 

성경학자들은 이에 기초해서 사울이 회심한 후에 3년 간의 아라비아 연단 기간이 있었다고 본다. 이때 그는 자신을 돌아보고, 율법에서 복음으로 자신의 심성을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킨다. 또한 주의 말씀을 연구하고, 깊은 영적 사색과 묵상을 통해 일종의 신학수업이자 사도수업을 받았다. 이 준비 기간을 거치고서, 마침내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그 즉시로이처럼 자신을 부르신 부름의 상’(15-16)을 향하여 자신의 전부를 드리는 일에 헌신한다. 그는 단지 열정 하나만으로, 부르심을 받아 택한 그릇이 되었다는 소명만으로, 주님을 직접 만났다는 경험과 확신만으로, 이제 막 입문한 새신자의 수준으로 돌진하지 않았다.

 

최소한 3년 동안이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라는 승부를 인내로서 경주한 이후에 복음 전도자로 헌신하게 된다. 과일 가운데 배()3년생 가지에서 열린다. 뭔가를 진득하게 준비하며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축복이다. 성급하게 시작하면 열매라고 할 수 없는, 이름만 열매인 풋열매를 거둘 수 밖에 없다.

 

 

부스러기 묵상

 

다메섹 교회를 정리해 보자.

사울과 같은 핍박자를 품는다. 그리고 그런 자가 자라 꽃이 피게 하는 아나니아가 있다. 또한 아나니아와 같이 증인을 통하여 더 풍성하고 공적(公的)인 부르심인 사도로 나아가는 사울이 있다. 이렇듯 아나니아와 같은 성도를 통하여 사울이 변하여 새사람이 된다. 사울처럼 살았지만 아나니아와 같은 신실한 제자를 통해 새생명의 기쁨뿐만 아니라 새로운 소명의 삶으로 부르시는 소명 앞에 서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아나니아도 있어야 하고, 사울도 있어야 한다. 이처럼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다함께 볼 수 있는 영적 실력이 교회와 성도 모두에게 있어야 한다.

 

다메섹에 세워지는 교회는 이처럼 부족하고 흠 많은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다. 그럼에도 일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건강하게 읽어낸다. 이를 거역하지 않았고, 그러니까 사울과 아나니아를 통해 일하시는 주님의 역사하심에 그대로 순종하고 받아드린다. 그랬으니까 사울 같은 핍박자도 안수기도를 받고, 성령충만을 받고, 아무 것도 보지 못하던 눈이 정상으로 치유되고, 세례도 받는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은혜와 능력 안에 있는 건강한 교회, 행복한 공동체가 보여주는 모습이다. 우리가 사도행전 교회를 본받으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님은 이 아나니아를 통해 핍박자 사울을 전도자 바울이 되는 일을 이루신다. 사울은 혼자, 자신의 힘과 애씀으로 핍박자에서 전도자로 변화되는가. 그렇지 않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주님으로부터, 함께 부르심을 입은 성도인 누군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고, 세워지고, 그렇게 교회를 이루어간다. 이것이 우리 양무리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목적이다. 이것이 다메섹 교회를 섬기는 아나니아를 주목하는 이유다. 사울을 바울 되게 하는 일에 쓰이는 아나니아를 주목하는 이유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꾼은 아나니아와 같은 제자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아나니아처럼 쓰고 싶어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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