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이방인을 위한 복음(행 9.32-43)

20231019(묵상)

  

 

 

이방인을 위한 복음

Acts. 9.32-43

  

 

    본문 관찰

 

    베드로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애니아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8년이라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베드로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일어나 앉는지라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베드로행전

 

베드로는 핍박 중에도 예루살렘 교회에 남아 있었다(8.1).

하지만 수 년이 지난 후, 사울이 변하여 전도자가 되어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한 무렵, 앞서 31절처럼 교회가 흥왕하고 있을 때 이번에는 베드로가 여러 지방으로 두루 다니게 된다(32). 뭔가 심상치 않은 조짐이 예고되는 부분이다. 사도는 이 경험을 통해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이미 이방에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사도들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을 때에 복음은 이미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 끝을 향해 출렁이고 있었던 것이다. 베드로는 이를 룻다에서도, 욥바에서도 직접 보게 된다. , 이처럼 진행되고 있는 복음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룻다와 욥바, 에니아와 다비다

 

사울이 핍박자에서 전도자로 새생활을 시작(19b-23)하던 때를 전후하여 최소한 3년의 시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면서(1.17-18) 다음 몇 가지를 더 생각해 본다.

먼저,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를 떠나 룻다를 방문할 즈음에 성도들이 이미 이 이방 지역에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32). 빌립 집사의 전도에 의해 사마리아 교회가 세워졌지만, 하지만 이곳 룻다는 베드로가 복음의 씨를 뿌려서 믿는 성도들이 하나 둘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베드로는 룻다에, 그러니까 이방에 전파되어 있는 복음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느끼는 증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애니아는 8년이나 중풍병으로 누워지내고 있다(33). 불신자였을 때 병이 들어 도중에 믿게 되었는지, 아니면 믿는 자로 살다가 병에 걸려 지금까지 투병 중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성도가 병들어 누워있다는 점이다. 베드로는 8년이나 몸져 누워있지만 성도로 살아가는 애니아의 중심을 보았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34) 명한다. 베드로는 변함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치유의 주이심을 잊지 않고 있었다(3.6 9.34).

 

여기서 하나 잊지 않아야 할 것은, 베드로는 주의 영광을 자기 몫으로 사유화(私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좀 유명해지고, 좀 능력이 나타나고, 좀 크게 쓰인다 싶으면 교만병에 걸려 그만 자고(自高)해지는 인간 심성의 못남에 비해 3장에서부터 이렇게 지금까지 오랫동안 초발심(初發心)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베드로의 깊은 영성을 생각해 본다.

 

애니아는 베드로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즉시 일어났다.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했고 애니아는 믿음으로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이를 보고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주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구원이 이루어졌다(35). 기적은 종종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분 앞으로 나아오도록 하는 좋은 통로이다. 핍박과 고통 속에서도 이방의 땅에서 외롭게 믿음을 지키며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구원의 빛을 비추셨고, 그 빛을 따라 그곳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일로 열매를 맺는다. 한 사람이 은혜를 받고 깨어나면 그 주위 사람들이 복을 받는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나를 통해서도 또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수납하게 되는 기적이 시작되기를 원하고 바라고 기도한다.

 

한편 욥바에도 주님을 믿는 제자들이 베드로의 방문 이전에 이미 있었다는 점을 역시 주목한다(36,38). 그런데 그 가운데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던 여제자 다비다가 그만 병들어 죽는다(37). 이때 믿음의 사람들(‘제자들’, 38)이 베드로가 다락에 준비된 빈소(殯所)를 방문해 주기를 간청한다. 이에 베드로는 왔고, 그리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죽어 누워있는 다비다를 향하여 이렇게 말한다: “다비다야 일어나라!”(40) 앞서 애니아는 베드로의 말을 듣고 믿음으로 응답함으로써 기적을 맛보았다면, 이번에는 이미 죽은 자였기에 그녀가 애나아처럼 반응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건 또 무엇인가. 더 큰 은혜와 권능이 베드로를 사로잡은 것이다. 베드로는 지금 예수님이 행하신 능력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셈이다. 실로 엄청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이로써 많은 욥바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

 

 

부스러기 묵상

 

베드로는 매우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죽은 자도 살리는 신유의 능력을 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18절이 그대로 성취되는 것을 친히 목도하게 되었다. 복음은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지나 이번에는 이방의 땅까지, 그리하여 땅 끝까지 전파되는 현장에 그가 지금 서 있는 것이다(31 33,36). 그는 복음이 이미 이방의 빛으로 타오르고 있음을 보았다. 그는 성령께서 앞서 룻다와 욥바에까지 친히 앞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강물을 따라 가면서 하나님이 성취해 놓으신 구원의 역사를 목도하고 있다. 하나님이 이루셨다는 뜻이다. 교회와 성도들은 심고 물을 주었고, 주님은 이것이 자라 열매를 맺게 하신다. 베드로는 그 뒤를 따라 증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복음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땅 끝 이방을 향해 진군하고 있다. 베드로가 이 일의 증인이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다(11장에서 더 자세하게 살펴 보자). 베드로는 자신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섭리에 순리대로 따르며 산다. 결코 욕심을 부리거나 자기 계획과 생각을 따라 이곳저곳으로 순례의 길을 이어가지 않는다. 사방을 두루 행하다가, 그리고 욥바 성도들이 강청하기에 룻다와 욥바를 각각 방문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물 흐르듯이, 그러니까 성령의 파도타기를 할 뿐이다. 그 자신이 복음과 구원의 파도를 만든 것이 아니다. 그는 그러기 위한 그 어떤 시도(방법)도 앞세우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이 일으키신 구원의 파도를 준비된 자로서 타고 증인의 자리를 지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앞서시고 그 뒤를 묵묵히 순종함으로 따르는 베드로에게서 주의 뒤를 따르는 제자의 모델을 발견한다.

 

베드로는 아무 것도 계획하지 않지만 그러나 모든 것을 성취한다. 이처럼 살아야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하신다는 미명 아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열중쉬어 하는 것이 얼마나 불신앙인지, 또한 하나님보다 앞서서 자신이 뭔가를 해야 하나님의 영광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교만하고 어리석은 꼼수인지를 생각해 본다.

 

그는 지금 욥바에 여러 날 머물러 있다. 발 가는 곳에서는 그곳에서, 그리고 머물러 있는 곳에서는 또 그 자리에서 각각 하나님의 놀라운 일이 시작되고 진행된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 소중하다. 지금 베드로는 조용히 머물러 있다. 바로 이때 하나님은 열심히 움직이시며 구원의 역사를 성취하신다. 때로 쉼을 얻고 있을 때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시작하고 계심을 보면서 우리의 삶에서 버릴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 1차적으로 본문(9.32-43) 역시 묵상으로 설교를 대신한다. 후에 기회가 되면 양무리교회 강단에서 설교나 성경공부를 통해 본문을 만날 수도 있다.
    강해를 건너뛰는 것은 특별한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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