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너희도 구약처럼 실패하려느냐?(행 7.1-53)

20230730(양무리교회)

  

 

 

너희도 구약처럼 실패하려느냐?

Acts. 7.1-53

    

 

본문 관찰

 

아브라함(1-8)

요 셉(9-16)

모 세(17-44)

여호수아에서 다윗까지(45-50)

선지자 때부터 예수님까지(51-53): 결론

 

    [구조] 구약의 파노라마

    A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2)

        X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51b)

            35 - “그들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보내셨으니

            39 -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53 - “너희는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B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51a)

 

 

구약의 파노라마: 성령 거역사

 

스데반은 자신을 위해 변론할 기회를 얻었다(6.11-14 7.1).

그는 사도행전이 계승하고 있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따라, 우리 주님이 시작하신 예루살렘 교회를 섬기는 지도자다(6.8,10). 그런데 이 은혜와 복음의 불을 어떻게든 끄려는 유대 공회라는 종교권력, 그리고 이들에게 고용 되어서 교회의 부흥을 멈추게 하려는 소방수들인 거짓 증인들’(6.13-14)의 고소를 통해 공회에 피소되었다.

하지만 그는 공회에 모인 적대자들 앞에 서 있는 고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자신을 위한 변명의 기회와 시간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없다. 오직 복음(福音)을 증거하는 전도자요 설교자로 복음의 적대자들 앞에 서 있을 뿐이다.

, 중요한 것은 지금 복음의 적대자들인 공회와 고소자들 앞에서 스데반이 전하고 있는 메시지의 주제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51) 결론은, 구약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오늘 스데반의 설교를 듣는 너희까지가 결국은 다 51절에 해당한다고 선언한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믿음으로 시작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길을 버리고 왜 성령을 거역하는 너희 조상들처럼 너희들도 결국 패배와 심판과 사망의 길을 가려고 하느냐?’

 

 

아브라함에서 요셉까지(1-16)

 

[1] 지금 공회와 거짓 증인들인 너희의 언행이 그렇지 않느냐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까지 올라가 설교를 시작한다(1-8). 아브라함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순종하고 들어왔지만 발 붙일 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5a) 단지 약속뿐이었다. 그것도 400년이 지난 후의 것을 단지 언약으로 받았을 뿐이다(6-7). 여기서 스데반이 얘기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 역시 그의 생애 전체에서 단지 아들 이삭 하나 얻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삭을 통해 먼 미래에 이루어질 언약의 소망을 붙들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그러했던 것처럼 너희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의 소망 앞으로 나아오라고 초청한다. 무엇인가: ‘너희도 너희 조상 아브라함의 길을 갈 수 있다.’

또한 요셉 역시 그의 형제들에게 거부당한 후에 노예로 팔렸지만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셔서 후에는 요셉을 통해 온 가족을 구원한다(9-16).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야곱의 12 아들로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족장사(族長史)를 놓고 볼 때 하나님의 섭리와 일하심이 처음에는 모두에게 한결같이 다 희미하여 이를 분간하기조차 힘들었다. 그러나 후에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려졌고, 결국 하나님을 믿고 따랐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때문에 지금 설교를 듣고 있는 너희들’(유대 공회와 거짓 하수인들)도 너희 조상들처럼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지만(51),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메시야이심이 이미 온 천하에 밝히 드러났고 또 계속해서 드러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51절을 선포하고 있다. 그러니까 스데반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성령을 거역하지 말라! 예수는 그리스도, 곧 메시야인 것을 거부하지 말라.’는 말씀인 것이다.

 

 

모세에서 오늘날까지(17-53)

 

    [자유민들](6.9-14)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11)

 

    [스데반](7.2-53)

    “그들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보내셨으니”(35)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39a)

        →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51b)

            “너희는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53

 

    [예수님](5.46-47)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2] 계속해서, 51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모세에게서도 이어간다(17- ). 요셉이 형제들에게 거부당했다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버림받았다. 40년은 부모가 버렸다(20-22). 그리고 다음 40년은 이스라엘이 버렸다(23-29). 이것은 본문 가운데 35, 39절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들 거절하던 그 모세를 ”(35a)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항하여”(39)

그러나 마지막 40년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애굽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다(30-36): “그들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보내셨으니”(35) 여기서 스데반은 공회로 모인 적대자 너희에게 좀 더 초점을 분명하게 모아가기 시작한다:

51 - ‘지금 너희가 모세를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일하지 않느냐?’

53 - ‘너희는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다.’

그렇다면 결국 스데반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너희도 너희 조상 이스라엘처럼 실패하려고 하느냐?’ , 그러면 무슨 실패인가? 바로 51, 53절이다. 성령을 거스르는 불신앙이고, 하나님과 율법을 지키는 것을 거역하는 실패다.

이를 위해 스데반은 모세에 대해서 좀 더 시간을 할애한다(37-44). ‘광야교회’(38), 성막(44-45) 성전(46-50) 나와 같은 선지자(37, 예수님)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사사건건 거역하였고, 이것은 모세와 하나님의 율법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그것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것이다는 통찰이다.

 

[3] 더 나아가서, 51절의 메시지는 모세 이후 그러니까 구약의 후반부인 선지자 시대에도 불순종과 거역하는 일은 계속되었음을 이야기한다(52a). 결국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의 인간 역사는 율법이 예언(약속)한 약속의 성취로 메시야가 오셨음에도 그를 배신하고 죽였다(52b). 이것은 율법도 지키지 않은 불신앙이며(53), 그렇다면 지금 스데반을 고소한 너희들 역시 너희 조상들 같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후예들임이 분명하다(51).

이것은 51절에서 결론적으로 선언된다: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51b) 그렇다면 무엇인가. 그렇게도 높이 떠받드는 모세의 가르침도 순종하지 않은 너희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않고 그들을 계속 죽이던 너희가(52), 이처럼 여전히 성령을 거스르는 불신앙에 머물러 있다면, 그렇다면 예언의 성취로 오신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고, 순종하고, 그분을 통해 구원을 받는 일이 가능하겠느냐? 라고 말씀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돌이키라! 다시 말하지만, 예수를 믿는 것이 구원이다! 이것이 스데반의 설교에 녹아있는 신학이다.

 

 

스데반의 신학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51)

 

그렇다면 스데반을 고소한 무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대적한 언행은, 이를 거스러 올라가 보면 이미 이스라엘 역사에서 조상들이 습관적으로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51b)

이것에 대해 스데반이 전한 메시지는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너희들이 그리스도와 십자가와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향해 행한 모든 거역은 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51a)임을 스스로 드러낸 죄행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둘째, 이스라엘 역사가 그러했듯이 지금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있는 너희도 결국 너희 조상들처럼 되는 길을 진정 가려는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더 이상 성령과 율법을 거스르지 말라! 만약 그렇지 않고 계속해서 거역하면 구약의 조상들이 그것이 이루어진 이후에야 이것이 하나님을 거역한 것인 것을 알았던 것처럼, 그 결과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던 것처럼 너희들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구약교회의 특징은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으나 정작 그것을 믿지 못했고, 놀랍게도 지금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있는 청중들인 너희들도 앞선 조상들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함으로, 그래서 역시 조상들과 동일한 방법으로 살아가는 죄인들이다는 것이 스데반이 외치는 설교의 주제다.

스데반이 증거하는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에게까지 올라간다. 모세가 전한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에서부터 기독론(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시작한다. 이것은 이미 형식과 제도와 전통과 관습에 찌들대로 찌든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치욕적인 설교였다. 왜 그런가. 아브라함은 고사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듣지도, 알지도, 깨닫지도, 믿지도 않으면서 성전을 붙들고 있고, 제사장으로 살아가고 있고, 율법학자라는 칭함을 받으며, 그러면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역하고 있는 종교꾼(종교권력가)들에 불과한 불쌍한 인생들일 뿐이기 때문이다.

 

 

부스러기 묵상

 

    *구약, 모세의 설교 에발산 vs 그리심산

    *신약, 예수님의 설교 염소 vs

    *스데반의 설교 - 구약의 이스라엘 vs 공회와 거짓 증인들

 

결국 스데반의 설교는 청중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성령충만으로 설교를 해도 감동이 없고, 또한 설득되지도 않았다. 사실 설교가 좋고, 잘했다는 명설교의 기준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만약 듣기 좋고, 공감이 되고, 편안하고, 부담 주지 않고, 잘 이해된다는 것이 능력 있는 설교의 기준이 된다면 스데반의 설교는 실패다. 설령 그것이 목숨과 바꾼 것일지라도 의미가 없다. 하지만 설교란 청중을 감화시키고 감동시키는 것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代言)하는 선포다. 그리고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의 결과가 죽음이라면 설교자는 그 설교자의 자리에 설 수 있을까.

한편 스데반의 설교는 구약에서는 에발산과 그리심산에 선 백성들을 향한 모세의 설교를 생각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신약에서는 마지막에 염소와 양으로 나누어진 예수님의 심판 설교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스데반의 설교는 구약의 이스라엘과 지금 자신을 고발하여 복음과 교회를 대적하는 너희인 공회와 거짓 증인들 사이에서 말씀을 전하는 그림에 비유될 수 있다(51). 이를 요약하면 이렇다: 과연 너희는 스데반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너희 조상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거역하고 거스르다가 끝내 심판 받아 멸망할 것인가.

오늘 우리 역시 이 하나님의 법정에 언젠가 서게 될 것이다. 스데반은 영원히 사는 것을 위해 한 번 죽는 것을 가볍고 무가치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설교와 함께 결국 죽음에 처해지는 것마저도 영원히 사는 편에 선다. 그렇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너희도 구약처럼 실패하려느냐?’라고 물으신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기회의 문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주 예수를 믿는 것이고, 이것이 구원이다. 이것이 또한 설교의 영광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에 주어지는 이유이고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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