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바울은 심었고, 에베소는 자라고(행 20.13-38)

20241117(양무리교회)

 

 

 

바울은 심었고, 에베소는 자라고

Acts. 20.13-38

 

 

    본문 관찰

 

    드로아에서 밀레도까지(13-16)

    기억하라(17-38)

 

 

회고의 씨앗, 예고된 열매: ‘에베소 장로들에게 말하되

 

    “그러므로 내가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31)

    “나는 씨앗을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나,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고전3.6, 쉬운성경)

 

바울은 3년의 에베소 사역을 설교를 통해 돌아보는 중이다.

지금껏 1-3차 전도여행 가운데 이처럼 마무리하지는 않았다. 그는 주로 이방(헬라)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 그러니까 예수의 십자가 복음을 가르치고 설교했다.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거기에 자신의 이름이나 사역의 열매들을 자랑하듯 올려놓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그 대상과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좀 다르다. 지난 19장의 에베소 사역을 통해 세워진 교회들의 지도자들(4)과 에베소교회 장로들(17)이 모인 자리다. 그리고 이들에게 <목회적 간증설교>를 한다. 바울은 3년의 에베소 목회를 회고하면서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 이루신 일을 담담하게, 그러나 비장하기까지 한 심정으로 후배 사역자들 앞에 앞으로 맞게 될 에베소교회를 향한 예고(미래)를 전하는 설교자로 선다.

 

 

드로아에서 밀레도까지(13-16)

기억하라(17-38)

 

드로아(6) 앗소(14) 밀레도(6,13,15) 예루살렘(21.15-17)으로 이어지는 여정에, 밀레도에서 16절의 이유 때문에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그곳으로 청한다. 그리고 목숨을 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의 출발을 예언적으로 예고한다. 이 출발에 앞서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초대교회 지도자들(4,17)에게 마음으로 듣고 간직할 수 밖에 없는 <에베소교회 전후사>에 대한 감동적인 설교를 한다. 아마도 혼자 걸어서 앗소로 가는 길에 에베소 ‘3’(31) 사역을 돌아보며 이를 마무리하는 설교를 묵상하고 준비했던 것 같다(13). 그는 3년이라는 시간 속에 뿌려지고, 그래서 자라난 [에베소 이야기]를 회고하고, 이어서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로마 이야기](9.15-16 19.21 20.24)를 바라본 것이다.

주님께서도 새벽 오히려 미명에 한적한 곳을 홀로 찾으셨다(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하는 급한 때임을 알면서도(16) 홀로 조용히 하나님과 교제하며 지내는 것을 우선 순위에 두었다. 그만큼 그는 뭔가 임박한 하나님의 섭리와 그것에 순종해야 할 자신을 직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22).

그러고 보면, 바울은 9장에서 만난 회심 경험 하나만으로 이 험난한 바울행전의 오솔길들을 지나 온 게 아니다(9.1-30 11.25-26 13장 이후). 이어지는 설교 역시 그의 삶의 여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처럼 20장의 바울은 우연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게 아니다. 그의 사역 여정은 곧 그의 설교였다(18): “그들(에베소교회 장로들, 17)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라.” , 그러면 에베소 사역에 대한 바울의 설교를 들어보자.

 

 

에베소 회고(17-21): ‘바울은 심었고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19)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20)

    “회개와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21)

 

지금 이 설교를 듣는 청중은 누구인가. 바울와 함께 3년을 동거동락(同居同樂)했고 또 그에 의해서 세워진 에베소교회의 지도자들이다(18). 바울은 이들에게 자신의 입으로 자기의 겸손, 눈물, 시험을 참고 인내, 주를 섬김, 생명을 건 복음 전파의 여정을 살아왔음을 자전적 고백에 담아 말하고(19-20), 또한 회개와 믿음을 증거하였다고 말한다(21).

그런데 지금 이 설교는 서로 아무 것도 모르는 강사(설교자)와 회중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1일 부흥회>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처럼 말할 수 있는 바울, 그는 자신과 교회와 하나님께 너무나도 당당하다. 그러면 설교대로 살았다는 것 아닌가. 중요한 것은 이러한 씨앗의 기초 위에 에베소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그는 3년의 에베소 목회를 이처럼 회고하고 있다. 지난 에베소행전을 지나오면서 언제나 겸손과 눈물로 주님을 섬겨왔다는 바울, 하지만 이것은 유대인들의 음모와 시험을 당하면서도 그걸 이겨가면서 그리해 온 것이다(19). 어느 시대 어디에서나 교회는 이 시리고 아픈 날들이라는 고난과 눈물과 희생의 토양 위에 세워진다. 한 인생이 세워지는 것도 그렇고, 한 가정과 한 자녀가 성장하는 것도 그렇다. 이렇게 사람과 교회가 세워져가는 것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이 우리에게 주어지기까지 한 것을 생각한다면 그 의미는 더 놀랍고 경외스럽다.

 

 

예루살렘 예고(22-27): ‘예루살렘 Q & A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23b)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4)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25b)

 

지난 세월을 회고한 후, 그는 곧바로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미래로 간다(22). 그런데 성령님이 증거하시는 미래는 어떤가. 아무 것도 보장되거나 알 수도 없는 22절이다. 동시에 투옥과 환난이 기다리는 길이다(23). 바울은 여기서 설교 앞에 앉아있는 지도자들(4,17)에게 에베소에 이어지는 예루살렘에서의 사역 비전은 그야말로 더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다고 말한다.

지나온 에베소 회고에 이어지는 앞으로의 예루살렘 미래는 지난 3년의 에베소에서의 사역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야말로 일사각오다(24,25). 그러니 이걸 듣고 있는 지도자들에게 시사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너희들도 나처럼 이런 교회와 복음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살아달라는 것 아닌가.

바울 자신은 에베소에서처럼 예루살렘에서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며 살아갈 것이니까, 너희는 에베소에서, 무엇보다 예루살렘에서의 바울처럼 그렇게 살아달라는 메시지다. 이처럼 자신을 제물로 드리며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가 바로 지도자들이라는 얘기다. 지도자는 자신이 누구로부터, 그리고 무엇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는가를 놓치지 않을 때 건강한 사명자로 살아갈 수 있다.

 

 

에베소 예고(28-32): ‘에베소 Q & A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29)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는 사람들이 일어날”(30)

        → ①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31)

            ② 주와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32)

 

그렇지만 이것은 곧 시작될 예루살렘의 미래만이 아니다(23). 바울이 떠난 에베소의 미래 역시 그리 희망적이거나 순탄하지 않다. 왜 그런가? 외적으로는 사나운 이리’(29)와 같은 사탄의 방해를 통해 양떼들이 해를 입을 것이다. 또한 내적으로는 이 설교를 듣고 있는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30)나게 할 불행한 지도자들이 있을 것이다(30).

미래의 에베소교회는 이처럼 안팎으로 요동칠 것이다. 결코 평안하지 만은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 거짓되고 악한 지도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이에 바울은 이 교회를 이끌고 가야 할 지도자들에게 미래의 교회를 향한 전망과 진단을 하면서 바른 교회, 건강한 교회, 복음의 사명을 다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말한다. 무엇인가. 두 가지다.

먼저 31절이다. 3년이나 초발심(初發心)을 밤낮으로 잃지 않고 목양에 전념했던 자신을 기억할 것을, 그러니까 바울 자신처럼 교회를 돌아보라고 요구한다(31). 어떤 상황 속에서도 교회와 복음은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32절이다. 이처럼 사명에 충실하기 위해 주님과 주의 말씀이 지도자들의 믿음을 든든히 세우실 것이다(32a). 세워진 교회가 건강하게 자라는 키(key)는 주와 말씀 위에 서 있는 지도자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역자들 역시 하늘의 기업(유산, 축복)을 얻을 수 있는 길이다(32b). 결국 핵심은 무엇인가.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비록 교회의 앞날에 시련은 있지만 말씀을 따라가면 실패는 없다.

 

 

부스러기 묵상

 

    “나는 모든 일에서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였습니다.

      여러분은 저처럼 열심히 일해서 약한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또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35, 쉬운성경)

 

교회를 향한 대답: 바울의 에베소 예고가 그의 회고처럼 되어지려면(33-35)

마지막으로, 바울은 에베소교회의 지나온 3년이 유지되고, 뿐만 아니라 바울이 떠난 이후에도 변함없이 열매를 맺어가는 교회가 되어지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바울의 에베소 예고가 그의 회고처럼 되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하는가. 에베소교회의 미래는 33-35절 말씀이 그 답이다. 다시 간단히 말하면, 31-32절의 기초 위에 선 지도자들이 즉 그리스도인이요 성도인 사람들이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미래의 답이 있다고 말한다.

바울은 미래의 영광스러운 천국 기업을 소망하는 자는, 비록 교회의 미래가 29-30절이라는 위기를 만나게 될지라도 그럼에도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나그네처럼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33). 그가 가깝게는 에베소에 그냥 정착해 버리지 않고,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에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순례자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믿음 때문이다. 그러면 33절은? 먹고 살기 위해 교회와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교회를 세워가기 위해 먹고 사는 일을 감당한 것이다. 이것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이를 구하는 삶인 것이다.

그랬기에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며 살았다. 급기야 자신의 목숨까지를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교회를 위해 줄 것이다. 그의 목표는 주님처럼 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6.38): “너희 삶을 거저 주어라. 그러면 삶을 돌려받게 될 것이다. 돌려받을 정도가 아니라 축복까지 덤으로 받게 될 것이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낫다. 베풂은 베풂을 낳는다.”(The Message)

이것이 바울의 신앙이다. 그는 1-3차 전도여행을 통해서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웠고, 지금 이 사역을 함께 하고 있는 동역자들(4,17)에게 자신처럼 살아달라는 목회적인 설교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바울은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권리 주장과 어떤 형태로든 반대급부(反對給付)와 같은 어떤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주와 그 말씀에 부탁하고 있을 뿐이다(32).

그는 지금 이방에 세워진 모든 교회가 이처럼 복음 안에서 든든히 세워져가기를 소망한다. 오직 이것이 그의 비전이다.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29-30) 바울 자신이 어떻게 언행하며 살았는지를(31), 그리고 주님이 뭘 말씀하셨는가를(35) “기억하라!” 권면한다. 이것이 에베소교회가 건물(‘나 때는 말이야!’)만 남고 사라져 버리지 않는, 언제까지나 복음의 등불이 되어 바울의 3년 목회처럼 계속해서 유지되고 이어져서 천국에까지 이르게 되는 건강한 교회가 되는 길이다.

무엇보다 설교 이후가 감동적이다(36-38). 바울은 말씀을 증거한 후에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한다(36). 다같이 목을 안고 크게 울고 있다. 그 장엄한 분위기가 그려지고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맡겨진 미래는 아무런 댓가 없이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울의 회고 속에 들어있는 씨앗이고, 미래 속에 맺게 될 복음의 열매이다. 이처럼 지난 1년을 돌아보자. 에베소교회와 같은 미래가 있는 교회로 자라가도록 세워가자.

바울은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그곳에만 우뚝 선 큰 나무처럼 되기 위해 사역하지 않았다. 그는 안디옥에서부터 에베소까지(11.25-26, 13.1-3 20) 하나님이 보내시는 도시마다 교회를 세우고, 또한 지도자를 세우면서 1-3차 전도여행을 감당해 왔다(4). 그리고 지금도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로 가는 길을 재촉한다(16,22-24). 그리고 마침내 달려갈 길을 마치고 주님 품에 도착한다. 이것이 우리의 생애가 서야 할 부르심이다. 에베소교회는 이처럼 말을 걸어온다.

 

 

제목 날짜
61 바울의 간증, 나의 간증(행 21.37-22.29) 2024.12.07
60 흔들리면서도 배 안에 있다1(행 21.17-36) 2024.11.29
59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행 21.1-16) 2024.11.23
58 바울은 심었고, 에베소는 자라고(행 20.13-38) 2024.11.16
57 밤중까지 계속된 예배, 은혜로다!(행 20.1-12) 2024.11.09
56 ‘은장색(銀匠色)협회’라는 맹수(행 19.23-41) (1) 2024.11.09
55 에베소는 지금 ‘영적전쟁’ 중이다(행 19.11-22). 2024.11.02
54 에베소: 성령의 임하심, 그 이후(행 19.1-10[2]) 2024.10.19
53 에베소: 성령의 임하심, 그 이전(행 19.1-10[1]) 2024.10.13
52 브리스길라와 아굴라(행 18.18-28) 2024.10.05
51 복음, 고린도를 살리다!(행 18.1-17) (1) 2024.09.29
50 복음의 빛을 비출 때 드러나는 3가지 얼굴들(행 17.15-34) 2024.09.29
49 T-B-J type 교회와 사람들,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행 17.1-14) 2024.06.29
48 내가 빌립보교회 성도일 때 일어나는 일들(행 16.16-40[2]) 2024.06.22
47 빌립보교회, 그 개척이야기(행 16.16-40[1]) 2024.06.22
46 나의 길은 막히고, 주의 길은 열릴 때(행 16.6-15) 2024.06.11
45 복음이 할례라는 율법을 만났을 때(행 16.1-5) (1) 2024.06.11
44 예루살렘 총회, 그 이후가 더 아름답다(행 15.22-41). (1) 2024.06.11
43 율법은 정죄하고, 복음은 품고(행 15.12-21) 2024.02.04
42 은혜 안에 있는 해답(행 15.1-11) 2024.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