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에베소는 지금 ‘영적전쟁’ 중이다(행 19.11-22).

20241103(양무리교회)

 

 

 

에베소는 지금 영적전쟁 중이다.

Acts. 19.11-22

 

 

    본문 관찰

 

    A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B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 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A' 에베소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바울이 이르되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모조품 vs 진품

 

    “내가 3년 동안을 밤낮으로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20.31a; 쉬운성경)

 

바울이 3년이라는 긴 시간들을 온 몸 다 해 헌신한 에베소다.

그럼에도 복음에 대한 에베소의 반응이다. 먼저,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비방한다(9a). 또 한편에서는 모두가 다 주의 말씀을 듣고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다(10,17-20). 뿐만 아니라 악귀가 물러가는 기적도 일어난다(11-12). 그러나 오늘 살펴볼 이어지는 말씀에는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13), 제사장의 아들들(14)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의 이름과 복음을 대적하고 도전한다.

특별히 에베소는 마술(13-16)이 가득한 도시다. 떠돌이 유대 점쟁이들 뿐만 아니라 유대 제사장의 일곱 아들들까지(13,14) 아우성이다. 무엇보다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불사른 책의 값이 무려 50,000 드라크마였다는 점에서 그렇다(19). 당시 한 드라크마는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다. 예를 들어 하루 품삯이 100,000원이라면 족히 50억이나 되는 마술책이 에베소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살라졌다.

그렇다면, 이것들이 3년에 걸친 바울의 에베소 사역과 맞물려 있다. 그만큼 오늘 읽고 있는 에베소의 형편이 치열했다는 뜻이다. 물론 복음의 능력이 역사하고 있음이 사실이다(11-12,17-20). 하지만 그 사이에도 유대인들 가운데서 <에베소 마술가협회>(13-16; 19절 참조)처럼 세력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공연하게 예수의 이름 조롱하며 복음의 능력을 시장터의 웃음꺼리로 만들어 가려는 분위기가 힘을 얻고 있는 곳이 에베소다.

에베소는 이렇듯 영적 전쟁 중이다. 분명한 것은 에베소의 영적 기류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쪽으로 이동 중이다. 그런데 떠돌이 마술 패거리들의 움직임 역시 공공연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분위기다.

 

 

예수 무당들(13-16): 그러나 악화(惡化)는 양화(良貨)를 구축한다.

 

    “내가 떠난 뒤에 어떤 사람들이 사나운 이리처럼 교회에 들어와서

      양 떼를 해치려 할 것을 나는 압니다.

      또한 여러분 가운데서도 진리를 왜곡되게 말하고,

      제자들을 유혹하여

      자기를 따르게 하는 사람들도 나타날 것입니다.”(20.29-30; 쉬운성경)

 

에베소는 요한의 세례를 받은 제자(성도)들마저도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2)라고 할 정도로 영적으로 죽어 있던 도시였다. 때문에 바울이 먼저 “3개월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8)였으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9a)였다. 그럼에도 2년 동안이나 2031절에는 3년이다.- 복음을 전했음에도 에베소는 여전히 두 얼굴의 사나이다. 그럼에도 에베소는 오히려 돌아다니며 마술을 행하는 떠돌이 유대인 마술가들(13)과 유대 제사장의 아들들(14)까지 이 마술을 행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바울은 바로 이 두 사이에 서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3년 동안이나(20.31) 전하였고, 그러자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10)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 결과 어둠의 세력은 하나 둘 물러가고 새날이 왔다. 하나님이 바울로 하여금 복음 전도와 함께 그의 손으로 놀라운 기적까지 행하게 하신 것이다(11-12).

이렇듯 말씀이 곧 하나님의 능력이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것이 말씀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적이다. 왜냐하면 복음과 이 복음이 역사하는 실상인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니까(17-20). 그리고 에베소 사람들도 모두가 다 기적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17), 또한 구체적으로 회개하는 변화에 이르게 된다(18).

그러나 가짜 모조품은 전혀 달랐다(13-16). 모양이 비슷하고, 언어가 유사하니까 동일한 것 같지만 이들은 유사 기독교’, 예수 무당에 불과하다. 속사람은 사탄의 노예이면서 겉모양만 슬쩍 기독교의 옷을 입고 있는 자들은 지금도 허다하다(13.24- ). 이런 자들은 세상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미 믿고 세례를 받은 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감스럽지만 교회 안에도 있었다. 성령의 역사를 돈으로 사려는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다(8.9- ). 바울도 이와 같은 가라지(가짜)인 엘루마라는 마술사를 예전에 만났었다(13.4-12). 그렇다면 예수님과 복음을 이용하여 결국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 하는 자는 결국 예수 무당과 같은 사람이다. 이런 악한 자들이 바울볻음의 현장에 공존하고 있다. 

정말 신앙공동체 안에서도 유사품(짝퉁)에 주의해야 한다.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한지 모른다(13-14).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짜가 가짜를 알아보고, 또 가짜가 진짜를 알아본 것이다(15-16). 진짜가 가짜를 알아보고, 진짜가 진짜를 알아보는 일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가짜를 통해서 가짜의 세력과 헛됨을 무너뜨리신다.

 

 

에베소, 다 이 일을 알고 (17- )

 

    “그러므로 깨어 있으십시오.

      내가 3년 동안을 밤낮으로,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쉬지 않고 교훈한 것을 기억하십시오.”(20.31; 쉬운성경)

 

하지만 가짜가 아무리 많아도 진짜의 가치와 위대함이 훼손되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의 찬란한 빛이 온 세상 앞에 밝히 드러나는 법이다(17-20). 흔히 이단이나, 거짓되고 그릇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기독교에 대해서 적대적인 사상과 언행을 앞세우는 사람들 때문에 기독교의 진리와 십자가의 복음이 도전을 받고 때로는 위기에 처하게 되기도 한다. 또한 믿는 사람들이 신문 사회면에 오르내리거나 하면 더욱 그럴 것 같다는 염려도 된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사실이다. 이것들은 복음이 가는 길을 가로막는 방해 세력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기독교의 역사를 돌아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복음이 확장되는 때는 형통하고, 평화스럽고, 모든 것이 잘 되기만 하는 그런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고난과 고통과 핍박과 순교의 위기들 앞에서 복음은 개인과 국가와 민족을 뚫고 들어갔다. 여러 모조품이 기승을 부리고, 그래서 여러 혼돈과 착각이 있을지라도, 그럼에도 진짜가 진짜로서의 가치와 능력을 잃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승리는 언제나 우리의 것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은 13-16절을 통해서도 17절 이하를 이루시는 분이시다

마침내 마귀가 가짜라는 점을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17a) 알게 되었다. 그리고 두려워한다. 참으로 역설적이다.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 10절의 역사가 있었듯이, 이번에는 그와 정반대로 예수 무당들은 진짜가 아니라 유사품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17절 이하의 역사가 이어진다.

그뿐 아니다. 에베소는 이제 주 예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소리로 외쳐지고(17), 많은 성도들 역시 자신들의 죄를 공개적으로 자백하였다(18). 이제까지 복음과 무당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필요를 따라 이쪽저쪽으로 쏠려 다니며 살았던 지난 날의 죄악을 고백한 것이다. 마침내 어둠의 세력과 성령의 능력 사이의 오랜 싸움은 끝이 났다. 마술의 노예생활을 청산하고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19-20).

급기야 바울의 꿈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I must also see Rome, 21b), 그야말로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됨을 소망하는 것으로까지 확장된다. 바울의 입에서 비로소 로마(ROME)가 언급되는 순간이다. 그는 소위 에베소의 성공에 자만하거나,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또한 에베소교회에 그대로 주저앉지 않는다. 그는 이제 좀 쉴만 할 때 에베소 이후를 선포한다(21-22). 바울은 조그마한 성공에 취해서 넘어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 3년을 뿌리내리고, 정 붙이고, 아낌없이 자신의 전부를 다 주었고, 그리하여 마침내 에베소 전체가 복음의 소식을 듣고 놀라는 위대한 승리 앞에서도 그는 눈썹 하나 끄덕하지 않는다.

 

 

부스러기 묵상

 

    “바울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20.17,19)

 

예수 무당들의 날뜀이 참으로 가관이 아니었다.

교회의 역사는, 특히나 바울 이래로 지금까지 유사품과 모조품과의 영적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어느 시내다, 어느 곳이나, 언제나 악화(惡化)는 양화(良貨)를 구축한다. 이런 의미에서 악에게 지지 않고 복음이 승리한 바울(에베소)의 승전보는 많은 통찰을 준다. 교회는 날마다 교회 본연의 사명과 자기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 이를 통해 교회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유지하고 더 발전시켜간다면 이것보다 더 큰 무기는 없다.

바울이 에베소에 오기 전부터, 그리고 3년 동안이나 복음을 증거하고 있을 바로 그 때에도 에베소는 변함없이 13-16절을 반복하며 살아오고 있었다. 이것을 다 알면서도 바울은 에베소 사람들에게 바울이 한 일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날마다’(9b),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님의 능력을 제자(성도)들을 향해 전파하고 가르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에베소교회와 바울은 날마다 말씀을 읽고, 듣고, 행하고, 말하고, 가르치고, 권면하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격려하며 증인의 삶을 살았다. 에베소의 영전 전쟁은 이렇게 3년을 하루같이 치러진 것이다. 에베소는 세상(욕망, 재물, 거짓 미혹)과 복음(교회, 믿음, 거룩) 사이에서 길을 찾아간다

바울이 옳았다.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9a)는 사람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서원에서 날마다 강론”(9b)한 것이 답이다. 이같이 2년 동안을”(10a) 오직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으로 영적 기초를 다시 새롭게 일구던 바울의 영적 통찰이 옳았던 것이다. 하나님은 눈물을 흘리며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은 바울의 수고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소수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저들과 함께 에베소교회를 위해 승부를 걸었던 것이 바울의 에베소 목회였다.

주님은 오늘 아침에 이 에베소교회를 보여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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