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브리스길라와 아굴라(행 18.18-28)

20241006(양무리교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Acts. 18.18-28(2)

 

  

        본문 관찰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를 만나니”(1-2a)

 

         2 아굴라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16개월을 (고린도에) 머물며 ”(11a)

 

        18 바울은 (고린도를) 떠나 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18a)

 

            “에베소에 와서 ”(19a)

            “(에베소에)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20)

            “작별하여 에베소를 떠나”(21)

 

        24 아볼로 에베소에 이르니

        26 (아볼로)(에베소)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바울 곁의 사람들

 

바울과 그들(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과의 만남은 고린도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들의 만남은 매우 절묘하다. 놀라운 타이밍에 따라 이들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들 부부는 십자가 복음 때문에 로마로부터, 또한 바울 역시 아덴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약속이라도 한 듯 이들이 고린도에서 만난다. 물론 이들은 고린도에서 만나기 이전에 서로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었다.

 

 

바울과 만나기 이전(1-4): 로마에서 추방되다.

 

    “아굴라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2)

 

남편 아굴라는 지금의 터키 북부인 소아시아 본도 태생의 유대인이다(2). 그리고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브리스가; 16.3, 고전16.19, 딤후4.19)는 로마 태생이다. 아마도 아굴라가 로마에서 브리스길라를 만나 결혼을 한 것 같다. 이들 부부는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AD 41-54, 클라우리우스)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라는 유대인 추방령에 따라 로마에서 고린도로 이주한다(2). 아굴라가 로마에 들어갈 때는 혼자였다. 그런데 거기서 믿음의 사람 브리스길라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고난과 핍박을 피해 한 몸이 된 부부로서 로마를 떠난다.

그런데 유대인이 아닌 로마 태생의 브리스길라가 로마를 떠나 남편 아굴라와 동행했다는 점, 따라서 정황상으로 볼 때 이들은 믿음의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믿음으로 함께 로마를 떠났다는 점, 그렇다면 하나님을 섬기며 복음으로 살아가기 위해 다음 정착지를 구하고 찾고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해서 오게 된 도시가 고린도였을 것이다.

 

 

바울과 함께(5-11, 18-23): 바울의 동역자가 되다.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를 만나니”(1-2a)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2b-3)

    “거기서 옮겨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7)

    “(고린도에) 16개월을 머물며 ”(11a)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에베소에 와서”(18a-19a)

 

16개월이라는 이어지는 시간들에 기록되는 이야기를 보면(1-11), 그렇게 도착한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난다. 놀랍게도 직업이 같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어서다(3). 이때 바울 역시 아덴에서 고린도에 홀로 왔고, 선교비가 중단된 상태에서 생활까지를 해결해야 했음으로 아굴라와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3a)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때까지는 어찌 보면, 이들의 만남은 단지 직장 동료로서의 만남이었다. 하지만 이 만남이 고린도와 에베소로 이어지는 선교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만남이었다. 우리의 만남 또한 종종 이처럼 섭리의 씨앗인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 서 있는 우리의 자리가 그렇다. 그렇게 써가는 것이 우리가 이어가는 사도행전 29장이다.

 

    ∎천막 만드는 자 / 직장, 일터, 출근, 회사, 사업

    ∎그리스도인 / 복음의 빚진 자, 바울의 동역자

 

이처럼 먼저 고린도에 왔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어떻든 바울이 고린도에 정착하고, 생활을 이어가도록 돕고, 그렇게 해서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4)는 복음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었다. 이러한 전적인 헌신과 섬김은 마침내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5a) 전적으로, 그러니까 천막 만드는 일을 겸하지 않고, 이후로는 온전히(Full Time)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5b)는 일에 헌신하게 되기까지, 그러다가 바울이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7)기까지 바울의 모든 편의를 섬긴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동역자로서의 역할이자 섬김이다. 이렇게 해서 16개월 동안이나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마침내 고린도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헌신과 섬김과 충성과 봉사를 어찌 작은 것이라 할 수 있으랴.

 

 

바울이 부재 중일 때(24-28): 바울처럼 살 수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어서 바울은 고린도에서의 16개월의 사역을 마친 후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고린도 에베소로 간다(18-19). 이때 에베소 사람들이 바울에게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20), 그러나 바울은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21) 하고 에베소를 떠나(21), 가이사랴를 지나 안디옥으로 내려가는 것으로 제2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한다(22).

이처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바울을 따라 고린도에서 에베소로 이주한다. 한편 에베소로 가는 길은 앞서 로마에서 고린도에 오게 될 때와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인가. 앞서 로마에서는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추방되어 왔지만, 이번에 에베소로 가는 길은 바울 전도팀의 일원이 되어, 그리하여 바울과 함께 동행하여 에베소에 온 것이다.

이것은 좀 더 예를 들어서 생각해 보면, 그렇다면 지금 에베소로 가는 길은 로마에서 고린도로 올 때처럼(2), 또 다시 집과 회사와 직업을 포함한 삶의 모든 터전을 다 내려 놓고, 다시 나그네라는 순례자(전도자)의 여정에 자신과 가정을 후순위에 놓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현재와 미래를 하나님의 손에 또 다시 맡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아시아 본도에서 태어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로마까지 갔었고, 그곳에서 브리스길라를 만나 결혼을 하였다. 그러다가 로마에서 추방을 당할 때, 이때 브리스길라는 로마를 떠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녀는 유대인이 아니라 로마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여전히 부부로서, 이처럼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로마를 떠났고, 그 많고 많은 지역과 도시 가운데 고린도에 이르러 정착하였다(2). 그러던 중에 고생 끝에 이처럼 집과 회사도 있고, 직원을 쓸 수 있을 만큼 사업도 안정적이었다(3). 그런데 이번에도 이들 부부는 주와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이 모든 것을 포기하며 아낌없이 내려놓는다(18a).

 

    “(에베소에)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20)

    “작별하여 에베소를 떠나”(21)

 

그렇게 바울이 배를 타고 지나가는 곳이 에베소이고, 그런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곳에 남아 정착한 곳이 에베소다.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21) 2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그런데 26절을 보면 이 부부가 에베소에 머물러 있다: “(아볼로)(에베소)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아마도 바울이 에베소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맡긴 것이다.

이처럼 바울은 후일을 기약하고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에베소에 남게 한 것 같다: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21a) , 그러면 바울은 에베소를 떠났고, 이제 남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그곳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 놀랍게도 고린도에서처럼 그들이 직업을 통해 에베소에 정착하고 있다는 언급이 없다. 그러면 무엇인가.

 

1. 에베소교회가 시작되다.

 

이렇게 해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자기 집에 에베소교회가 세워진다(고전16.19). 바울은 고린도에서부터 동역을 시작한 아굴라와 브리스가(브리스길라) 부부에 대해 고린도에 보낸 편지에서 이들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처럼 안부를 전한다: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고전16.19)

그는 직업을 따라 천막을 만드는회사(: 에베소 텐트컴퍼니)를 세우고, 이 직업을 통해 살아야 하고, 그러다가 바울과 같은 선교사들을 위해 헌신하고 섬기며 살아가는 것으로도 훌륭하고 모범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바울과의 16개월이라는 고린도를 섬기는 동역의 시간들 속에서 마침내 이들 부부는 바울처럼 살아가는 자로 세워졌다. 그렇다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섬기기 위해 <에베소 텐트컴퍼니>를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우선순위가 바뀐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2. 아볼로를 복음으로 세우다(24- ).

 

이때 에베소에서 이들 부부를 통해 아볼로에게 일어난 일이 24절 이하다. , 무엇인가. 에베소에 온 세례 요한의 제자 아볼로는 성경에 능통한 자이지만(24), 그러나 그의 한계는 명확하다(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가르치니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이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보인 것이다. 이제 이들 부부에게는 진리를 알고, 듣고, 볼 수 있는 안목과 통찰력과 믿음의 눈이 있었던 것이다.

이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가 회당에서 전하는 것을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26b)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친다. 로마를 떠나, 다시 정처없이 발 길이 이어진 고린도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1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바울을 만나 그와 동역자가 되었다. 그리고 바울이 에베소를 거쳐 다시 안디옥으로 귀환하여 2차 바울 전도여행을 마무리할 때 즈음,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면서 부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에베소에 남겨둔다. 그랬더니 이들을 통해 에베소는 복음에 굳게 서서 건강하게 세워져 간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성숙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통해서다.

 

 

부스러기 묵상

 

사도행전이라는 복음 전선은 마치 물 흐르듯 섭리 안에서 이루어져 간다.

별다른 잡음이 없다. 사람의 소리도 없다. 이미 다 알고 만들어진 대본처럼 손발이 척척 맞아 돌아간다. 신기하고 놀랍다. 지금 읽고 있는 것처럼 사도행전에서 고린도의 시작은 아굴라 부부가 이달리야(로마)로부터 이주해 오는 것을 통해서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야기의 주도권과 흐름이 바울에게로 가 있다. 그래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는 아무런 문제(잡음, 갈등, 다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바울과의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오직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만이 하나 둘 진행되고 드러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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