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내가 빌립보교회 성도일 때 일어나는 일들(행 16.16-40[2])

20240623(양무리교회)

 

  

 

내가 빌립보교회 성도일 때 일어나는 일들

Acts. 16.16-40[2]

  

 

    본문 관찰

  

    ∎세상의 도전: 귀신, 방해, 거부

        vs

    ∎교회의 응답: 대답, 복음, 예수, 구원

 

 

 세상의 도전 vs 교회의 응답

 

빌립보라는 이름의 도시에 교회가 세워지는 중이다.

이를 향한 세상의 도전이 예사롭지 않다.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는 귀신 들린 점쟁이(16)와 이 점쟁이를 통해 돈벌이를 하는 주인들(19)이 판을 치는 도시였다. 그런데 어느 날 바울과 실라를 중심으로 한 복음전도가 시작되고, 조용하던 도시가 발칵 뒤집혔다. 귀신에게 사로잡힌 여종을 이용해서 살아가는 것이 통용되는 사람들의 실상이 아프기만 하다. 이때 복음은 이 귀신 들린 여종을 관통하면서 죄와 사탄의 어두운 권세로부터 그녀를 해방한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런 빌립보로 하나님은 바울을 보내신 것이다.

 

세상의 도전(16-24)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19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1] 도전1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비웃고 조롱하며 선동한다(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17)

 

 

[2] 도전2 무엇보다 이익이냐가 우선이지 손해가 되면 가만 있지 않겠다(19).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19)

 

 

[3] 도전3 로마를 어지럽히는 위험한 자들이다(20-21).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20-21)

 

 

[4] 도전4 감옥에 가두어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게 한다(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23)

 

하지만 이런 일들은 아무에게나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아무나에게 맡겨지지 않는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참된 교회로 세상 앞에 등대처럼 서 있을 때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렇다면 이제 막 세워지고 있는 빌립보교회가 어떤 교회인가를 알게 된다. 주님은 빌립보교회를 통해 우리가 빌립보교회와 같은 성도일 때 우리에게도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

 

 

교회의 응답(25-34)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그 때’)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 -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 -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29 간수 -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31 바울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1] 응답1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한다(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25)

 

놀라운 것은 바울과 실라가 세상의 거짓 프레임에 넘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미 빌립보 광장(장터; 19)으로 끌려가서, 빌립보 법정에서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22-23)어진채, 결국 죄수 아닌 죄수의 몸과 신분으로 수감중인 상태다. 이렇게 해서 빌립보에서는 여인 몇 사람과 루디아과 그녀의 집에 있는 사람들로, 거기에서 그만 멈추고 마는 것인가.

한편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바울은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37)는 선언에서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무엇인가. 37절로 뜻 밖에 만난 방해와 위기를 넘어설 수 있었다. 그것은 세상이 옭아맨 거짓되고 악한 프레임에 저들처럼 대응하는 방법도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비난하고, 선동하고, 고발하고, 급기야 감옥에 넣어도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겼다. 복음의 사람들과 교회는 세상과 같은 방식으로 언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어떻게 했는가. 놀라운 일이 밤중에 일어났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25)

생각해 보면, 오늘 구금되어, 그러니까 구치소에서 빌립보 감옥으로 들어온 게 오늘 하루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을까? 이 상황에 대한 이해를 빌립보서 1장을 읽어보면 빌립보 감옥에서의 수감이 1-2일 정도의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가, 어떤 사람이 16-23절의 상황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상태에서, 그러니까 시퍼렇게 멍이 들 만큼 공개 태형을 당한 극도의 고통과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사람이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을까.

다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9)라고 바다 건너에서 들려오는 환상과 연결된다. 이 꿈이 바울의 갈 길을 정해 주었고, 그렇게 온 빌립보에서 만난 일들이다. 무슨 말인가. 이곳 빌립보에서 하나님이 하시려는 복음 전도는 세상이 좁혀오는 프레임에 묶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슨 기도였을까. 어떤 기도를 드렸을까. 저들의 찬양은 하나님을 향한 어떤 찬송이었을까. 기도와 찬양을 하는 바울과 실라의 상태와 감옥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감옥의 죄수들과 간수가 여러 날 동안 들었던 기도와 찬송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옥에서 하루 빨리 나갈 수 있게 해 주세요?

    *태장에 그만 멍들고 터진 엉덩이와 다리를 치료해 주세요?

    *복음과 교회를 위해 달려온 길에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아직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다면 깨닫게 하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옵소서?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이 볼 때 죄수의 몸이 덕이 되지 않다는 걸 아시지요?

    *내가 감옥에 있는 시간 만큼이나 하나님은 손해입니다.

    *하나님, 이러자고 빌립보로 가라 하셨습니까?

 

하지만 극심한 고통과 공포와 아픔과 절망의 감옥에서도, 무엇보다 37절에 의하면 이처럼 감옥에 들어오지 않아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과 실라는, 그렇다면 감옥에 들어오는 것을 왜 막아서지 않았을까. 그리고 결국 이 감옥에서,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기도와 찬송이라는 예배의 제사를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게 했을까.

그렇다. 이들은 이 일련의 모든 일들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음을 알았고, 믿었기 때문이다. , 그러면 다시... 그렇다면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서 무엇을 기도하고 찬송했을까. 이 신비스런 일의 놀라운 실마리는 바로 29-30절에 등장하는 간수의 언행이다: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29-30)

, 그러면 왜 30절이 중요한 고백일까. 놀랍게도 여러 날 동안 한밤중에 빌립보 감옥을 울리는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양은 빌립보와 빌립보 사람들을 향한 구원, 그러니까 죄 용서와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기를 바라는 복음의 외침이자 간구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의 불모지 빌립보에서 빌립보교도소 소장(간수)이 어떻게 30절의 고백을 토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빌립보 감옥에서 기도와 찬송으로 세상의 거짓되고 악한 프레임을 무력하게 하는 복음의 능력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 화명동 장터(19)와 광장에는 지금도 빌립보 프레임과 동일한 것들이 죄의 사슬이 되어 견고한 진처럼 우리를 위협하고 흔들어 댄다. 어디 화명동 뿐인가. 이 거짓되고 사악한 세상 프레임은 우리 직장에도, 우리 가정에서, 우리 교회에도, 무엇보다 우리 마음과 심령과 생각과 입과 몸이라는 육신덩어리 안에도 견고한 사탄의 진이 되어 우리를 유혹하고 무력하게 하고, 그리하여 세상과 짝하여 살아가도록 만든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세상과 유사한 프레임일까. 아니다. 우리가 그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도 멈추지 않아야 할 것이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25)는 생활이다. 바로 거기에서 30절이 토해진다. 동시에 바로 거기에서 32절이라는 기도와 찬송이 답이 되어 고백되어진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 기도가 답이다. 이 찬송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답이다. 그러니까 세상의 방식인 '세상방정식'으로는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식으로만 된다.

바울은 세상의 그 어떤 유혹과 도전에도 세상방정식과 비슷한 프레임을 사용하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았다. 빌립보에서 외치고 불러야 할 것은 신음소리, 한숨소리, 비난과 비판소리,부정적이고 원망하는 소리여서는 안된다. 우리가 이 노래를 부르고 살면 사람들도 이 노래를 따라 부른다. 바울은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구원을 기도하지도 않았고, 이런 유사품들을 찬양하지도 않았다. 25절 안에 오직 32절만을 바라보고 구하고 찬양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이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기도다. 이것이 이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찬송이다. 이것이 이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예배요 교회다. 이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그 은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이다.

 

  

35-40

 

        35 상관들 - 이 사람들을 놓으라

        36 간수 -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37 바울 -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38 상관들 -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39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40 바울 -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부스러기 묵상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3.15-16)

 

오늘 우리가 이곳에서 묵묵히 살아내어야 할 삶은 25절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세상의 거짓된 프레임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그래서 믿음에서 파선하도록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럼에도 25절을 기도하고 찬양할 때, 바로 그때 세상은 우리를 행해 고백해 온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30)

언젠가 우리가 올려드리며 부르는 25절의 노래와 기도를 보고 들은 자들 중에 우리에게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묻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오늘 예수를 믿고 따라가는 제자임에도 불구하고 빌립보 감옥에 있는 이유다. 그것 뿐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을 이곳에 부르신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양무리교회가 부르는 노래와 기도가 대천마을을 살릴 것이다. 죄와 사탄의 사슬에 매여 보이지 않는 사탄의 감옥에 갇혀 있는 이 시대를 오늘도 주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기셨다. 우리가 바로 그곳에서 기도하며 찬송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도 우리가 빌립보교회 성도일 때 일어나는 일들을 기대하자. 교회만이 부를 노래와 기도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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