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광야교회(행 7.35-43)

20200621(양무리교회)

  

 

 

광 야 교 회

Acts. 7.35-43

  

 

    본문 관찰

 

            ↖   42~43 아모스 예언의 성취(5.25- )

               ↖   42 하나님이 버려 두셨으니

       [애굽]   ↖   41 우상 앞에 제사하며 기뻐하더니

         세상        ↖   40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G IS   ↖   39 -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애굽]          ↖   39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

 

                                     고전10.5

                                     행7.39-41 42-43

                         G 그런데 이스라엘은?

 

                         [광야교회] 35-38 / 고전10.1-4

                        모세: 35b - 지도자(관리)와 구원자(속량하는 자)

                                 36 40(애굽, 홍해, 광야)

                                 37 나와 같은 선지자(18.15)

                                 38 살아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

 

                                 → [가나안] 그럼에도 하나님은?

                                                     ↘ 아브라함언약을 성취하신다(15. )

                                                        ↘ 가나안교회로 가야 할 소명과 사명

 

    [구조2]

    35-38 모세와 광야교회

    39-41 다시 애굽으로

              우상숭배

              하나님 OUT!

    42-43 심판/징계/멸망

 

 

광야에서 길을 잃다.

 

    [광야교회 전후사]: 출애굽기 1-17

    3.7 애굽(세상)에서 부르짖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부르짖음을 듣고

    12.37,40 장정이 60, 애굽생활 430년이 끝나다.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60만 가량이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430년이라.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

            *15.13 -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5.16 - 네 자손이 4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14.22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16.12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17.6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스데반은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던 이스라엘을 광야교회에 담아낸다. 모세와 함께 한 이스라엘은 40년이라는 시간을 광야에 세워진 교회로 살아간다.

 

 

광야교회가 세워지다.

 

    사도행전 7                                        고린도전서 10

    35b - 지도자(관리)와 구원자(속량하는 자)     1-2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

    36 40(애굽, 홍해, 광야)                          3 신령한 음식

    37 나와 같은 선지자(18.15)                    4 신령한 음료(반석=그리스도)

    38 살아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  5 - 그러나

    42 - 하나님이 버려 두셨으니

 

모세와 광야교회를 보라(35-38; 고전10.1-4). 모세 목사가 있고, 그 뒤에 하나님이 계신다. 이를 모든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들, 곧 장정만 60만명에 이르는 광야에 개척된 광야교회가 목도한다. 광야교회는 헬라어로 광야 안에 있는’(en te eremo), ‘교회에’(en te eklesia)로서 지금 신약교회가 부르는 교회와 같은 에클레시아다.

지도자와 구원자인 모세 목사의 면모를 보라(35b,37,38). 그의 이력은 전무후무하다. 성경이 사람에게 칭할 수 있는 모든 표현의 절정이 다 들어있다. 어디 그뿐인가. 고린도전서 10장을 보라. 세상에 이처럼 영적 경험과 은혜와 축복 가운데 세워진 교회가 또 있을까.

무엇인가.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5장에서, 430년 전에 약속한 그 비전을 모세와 출애굽 공동체를 통해 성취하신다. 무엇 때문인가. 이사야 4321절이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

이제 광야교회가 할 일은 시내산언약(출애굽기 19)을 따라 율법을 지켜 행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우선하고,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거룩한 후손이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다. 이제 이 일이 앞에 놓였다. 이 얼마나 가슴 뛰는 은혜인가

 

 

광야교회가 세속화되다.

 

그런데 이런 광야교회가 시름시름 그 빛을 잃어가고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다. 아니, 이런 영광스러운 이스라엘과 광야교회가 부흥이 아니라 곤두박질치며 무너진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렇다. 이런 영광스러운 교회도 쇠퇴한다. 그러니 하물며 우리는 어떻겠는가.

오늘 사도행전 742절로 이어지는 스데반의 설교와, 바울의 고린도전서 10장은 절묘하다. 결국 구약 이스라엘은 애굽이라는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세례와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은혜의 품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얻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그런데 시작된 광야교회는 곧바로 곤두박질친다. 본문 42절과, 고린도전서 105절이다:

 

    행7.42 - 하나님이 버려 두셨으니

    고전10.5 -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광야교회, 멸망의 이유들

    39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

    39 -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40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41 우상 앞에 제사하며 기뻐하더니

 

        → 42 하나님이 버려 두셨으니

 

그렇다면 무엇이,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광야교회가 그만 이처럼 무너지고 마는 것일까. 모세 목사도 있고, 시내산 언약도 맺었고, 세례와 성찬에도 참여하였고, 홍해를 건너는 세례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430년이라는 애굽생활 곧 세상으로부터 마침내 꺼냄을 받아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통치와 인도하심 안에 생생한 간증과 하나님의 능력을 다 보고 경험한 이스라엘이 아닌가.

좋은 교회에서 멀어지는 교회의 특징들이다. 핵심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방향으로 쇠퇴해 간다는 점이다. 스데반은 병들어가는 광야교회에 대한 진단을 그의 설교 속에 토해낸다.

먼저, 목회적 리더십, 즉 영적 권위의 부재다. 모세 목사의 문제라기보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따르지 않았다(39a). 툭하면 너만 하나님의 종이냐는 후렴구가 들려올 정도였다.

둘째, 광야교회에 일하시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아닌 애굽을 향해 늘 마음의 방향을 둔다(39b). 애굽은 무엇인가. 홍해를 건너 세례를 받아 구원을 얻기 이전의 상태인 세상을 가리키는 곳이 바로 애굽이다. 그럼 무엇인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호시탐탐 기회가 되면 하나님 없는 세상, 즉 옛 사람으로 돌아가겠다는 모습이다. 애굽은 교회가 아니다. 심판 받을 세상이다.

셋째,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려 한다(40):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하나님으로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를 인도할 돈을, 우리를 인도할 노후 준비를, 우리를 인도할 건강을, 우리를 인도할 연금보험을, 우리를 인도할 자녀를, 우리를 인도할 우리 말을 잘 듣는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자고 소리친다. 이 모든 게 다 하나님으로는 안 된다는 말 아닌가.

이처럼 점차 모세에서 급기야 하나님을 노골적으로 거부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을 향해 대항하고 공격한다. 지금 여기가 어디인가? 광야교회다. 이것이 영광의 출애굽과 기적의 광야에 세워진 교회의 모습이다. 하나님이 모세 목사를 세우사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에 당신의 백성들을 성도로 삼아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다.

넷째, 이제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우상 앞에 제사한다(41). 이것이 광야교회의 기쁨이 되었다. 이 정도면 교회 문 닫아야 한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는 이런 구약교회를 향해 피 끓는 설교를 토해낸다. 말라기 110절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그러고서 400년 동안 구약교회가 실제로 문을 닫는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이스라엘 구약교회, 바로 그 광야교회가 서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 왜 그런가? 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라고 하는 살아있고 걸어 다니며 숨 쉬는 주님의 몸된 교회가 이처럼 광야교회처럼 되어 있어서다.

*40년이라는 기회의 시간 안에 나를 교회에 두셨을 때는 이러라고 한 건 아니다.

*예수님이 이러라고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오셔서 저주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아니다.

*어떻게 얻은 애굽(구원, 은혜)인데 다시 애굽(옛 사람, 세상)이란 말인가.

*광야교회를 애굽처럼 만들어 버리다니요.

 

 

부스러기

 

    “그런데 여러분은 계속해서 웬 고집입니까!

      여러분의 마음은 딱딱하게 굳어 있고, 여러분의 귀는 꽉 막혀 있습니다!

      성령을 고의로 무시하니,

      여러분은 여러분의 조상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51, the Message)

 

언제나,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

그래서 언제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나를 살린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어찌 보면 모세 목사가 설교를 하고, 기적과 이적을 행하였음에도 구약 모세오경 위에 세워진 영광스럽고 찬란히 빛날 광야교회는 병들어 무너졌다.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해서였는가. 아니다. 은혜와 기적으로 출애굽 홍해 광야교회로 이어지는 축복과 영광의 고속도로가 펼쳐졌으나 교만으로 비롯된 하나님을 버린 것이 치명적이었다.

인간은 이처럼 좀 잘 되면, 살만 하면, 하나님이 특별히 도와주시지 않아도 내가 만든 것들이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대신해 주는 것 같으면 하나님도 헌신짝처럼 버린다. 그게 사는 길이 아니라 죽은 길인 줄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저항하고 반항하고 대적한다. 이게 뭐라고? ().

이처럼 위대한 광야교회도 무너진다. 그러니 위대한 게 중요하지 않다. 광야교회처럼 다 가진 게 중요하지 않다. 좀 없어도, 좀 부족해도, 좀 못났어도, 좀 가난해도, 좀 덜 벌어도, 좀 작은 집에 살아도, 좀 노후준비 덜 되었어도, 좀 몸이 부실해도, 인생보고서에 적을 만한 게 없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쪽으로 걷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이면 아멘이다.

늘 얘기하지만,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건 진리다. 잘 나고 똑똑한 나무는 이미 저 먼 산을 다 떠났다. 자기 잘난 맛에, 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못생긴 나무와 같아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자는, 그는 하나님으로 충분하다며 그냥 무던하게 하나님께 속해 있는 자는 뒤돌아 보지 않는다. 애굽에서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너 가나안으로 가는 일정에서 그만 광야교회를 끝으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지 않는다.

내가 서 있는 이곳 광야교회는 건강한가. 모세 탓할 수도 없다. 우리 모두는 다 심은 대로 거두는 자다. 내가 어디서 와서 지금 여기에 서 있는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 이 광야교회가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멘트] 다음 정거장은 광야교회입니다. 내리실 분은 오른쪽입니다. 1-2번 출구로 올라가시면 애굽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잠시 후 우리 버스는 광야교회에 도착합니다... 지금 이곳 광야는 43-45도를 오르내리는 중입니다. 젖과 꿀이 풍요로운 땅, 애굽으로 가십시오.”

어떤가? 내리실 것인가. 진정 다시 애굽으로 가는 버스를 탈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가나안으로 가는 길이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 약속의 땅이자 아름다운 땅으로 가는 길이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광야에서 무너지면 안 된다. 지금 이곳 광야 같은 인생길에 그만 주저앉으면 안 된다. 좀 살게 되었다고, 세례 받았고, 홍해를 건너는 기적도 맛보았다고 여기서 자만하고 교만하고 거만해서는 끝이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오늘 광야교회 전후사는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래, Good Bye 애굽! 그래, 굿바이 죄악!(罪惡) 그래, 굿바이 세상!(世上), 그래 굿바이 불신앙!(不信仰)

잠시 우리가 왔던 길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 시절, ‘한번만 더 살려주세요, 하나님!’을 목놓아 부르던 그 낮아지고 무릎 꿇고 겸손하고, 그래서 처절하게 하나님을 구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때를, 아무 소망이 없던 애굽의 시절을, 허물과 죄로 죽었던, 죄의 노예로 살던 본질상 진노하심과 저주 아래 있었던 때를 잊어서는 안 된다.

비록 이스라엘처럼 넘어지고 자빠져며 휘청거리기는 했어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던 내 신앙의 한 때가 들어있는 나의 광야교회를 잊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다시 애굽으로 후진할 수는 없다.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 주를 떠나도 이 광야에서 다시금 타는 목마름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와 회복과 부흥을 갈망해야 한다. 우리를 죄악의 애굽에서 깨내셔서 당신의 백성 삼으시고, 거룩한 나라로 세우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비록 광야교회 밖에 만드는 자들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광야교회마저도 포기치 않으신다. 놀랍다. 그러니 지금 나 역시 광야교회와 같다 할지라도 거기서 시작하자. 고린도교회 역시 그러지 않은가.

 

 

  • 2020년 6월 21일 주일예배(양무리교회)에서 한 설교여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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