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영광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언제?(행 7.1-4)

양무리교회(20200322)

 

  

 

영광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언제?

Acts. 7.1-4

 

 

 

    <1> 첫번째 만남: 소명의 타이밍_6W1H

 

       [스데반의 설교_ 사도행전 7.1-4]

       ∙누가(who): 영광이 하나님이(2c)

       ∙누구에게(whereon):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2a)

       ∙언제(when) & 어디서(where):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2b)

       ∙무엇을(what):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3)

       ∙어떻게(how):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2c)

       ∙(why):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가라(3)

 

  

영광의 하나님

 

사도행전 7장은 스데반의 설교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관심은 설교 시작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이다. 2-3절에 영광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보여”,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무엇인가를 이르시되라 되어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어느 때에, 어디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는가 하는 부분이다. 왜 이를 관심하느냐 하면 아브라함이 처음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는 이야기와 연결해서 무엇인가 깊이 생각해야 할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두 번째 부르심으로 찾아오신 것과 그 이후의 모습에서 생각 이상으로 실망스러웠었다. 그런데 창세기 121절보다 이전 아브라함인데 그런 그에게 이르시되하나님이? 그렇다면 이 첫 번째 부르심이었을 때 아브라함은 더 형편없었을 것이고, 그럼 그만큼 더 실망스러웠을 것인데 그런데 하나님이 무엇을 보시고 그런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부르심을 입을 만한 형편이 전혀 아닌 그런 그를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 내실까 라는 의문형 질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을 창세기와 연결해 보면 창세기 1131-32절인데 이게 소위 아브라함의 제1차 소명이다. 그리고 하란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창세기 121절에 나타나시는데 그럼 이게 아브라함의 제2차 소명인 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이 소명들, 특별히 제1차 소명의 시점이다: ‘아브라함이 어느 형편이었을 때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셨는가?’ 이런저런 부분들이 좀 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첫 번째 부르심 앞에 서는 장면을 묵상하게 만든다. 이를 위해 아브라함의 생애를 잠시 정리해 보자

 

[1]

영광의 하나님, 언제(when) & 어디서(where)

   ∙누가(who): 영광이 하나님이(2c)

   ∙누구에게(whereon):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2a)

   ∙언제(when) & 어디서(where):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2b)

 

      1 첫 번째 소명(7.1-4a, 11.31-32):

          메소보다미아(갈대아 우르) 하란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24.2b-3)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9.7a)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7.2-3)

             

             ▪11.31 -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다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다

                

              [참고] ???? 두 번째 소명(7.4b, 12.1- ):

                               하란 가나안

                창12.4 - 이에 아브람에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창12.5 - 가나안 땅에 들어가다

 

, 스데반의 설교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영광의 하나님을 만난 게 어느 때인가. 창세기 12장 이전이다. 이신칭의 이전(15), 할례라는 행위론적 흔적도 있기 이전(17),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에 그대로 순종할 만큼 성숙하기 이전이다(22). 그러니까 그가 창세기 12장에서 가나안에 들어간 75세부터 아들을 번제로 드리는 120세 전후에 이때가 하나님과 처음 만난 게 아니다. 훨씬 그 이전이다. 그것도 모든 면에서 아직 형편 없던 때였다. 왜 이처럼 단정지을 수 있는가. 창세기 12장부터 보아도 아브라함은 허점 투성이었기 때문이다.

창세기 11, 사도행전 71-4절 시절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찾아가실 만 한 다른 어떤 자격이나 조건이 아니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오해에 깊이 빠지는 경향이 있다. 뭐냐?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사람은 성령충만하고, 전도와 기도와 헌금과 구제와 봉사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맞다. 터무니없이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타락하여 에덴은 물론 세상과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그야말로 완전히 물거품이 되게 한 아담을 찾아오시는 분이시다. 또한 사도 바울 되기 이전의 핍박자 사울이던 그를 다메섹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집 나간 탕자가 다시 돌아올 때 그를 온 몸과 마음으로 품어주시는 분이시다.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영광의 하나님이 그렇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간략하게 정리해 봐도 그는 지극히 연약하고 미약했을 때였다

 

 

[2]

족보신학: 노아에서 아브라함

 

          5:32 7:6   11:10                                         11:24             9:28~29

          502 600    602     637 667   701 731 763  793  822   892   950_노아 죽음/17년 후

    노아 --*----*------*-------*----*-----*----*----*-----*----*------*------*--------*------>

             셈  홍수 아르박삿 셀라 에벨 벨렉 루우 스룩 나홀 데라 아브람       부르심(75, 12.4)

                   100세      35    30   34   30    32   30   29  70 (58)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러지 않아야 할 사람이다. 아브라함은 노아의 10대손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24.2b) 섬기며 살고 있다. 놀랍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러한 때, 이런 아브라함을 영광의 하나님이 찾아가신다.

창세기 11장에 기록된 노아와 그의 아들 셈의 후손들의 족보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58세에 노아가 세상을 떠난다. 무슨 말인가. 노아가 살아 있어도 그의 후손 가운데 가장 유력한 데라의 가정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섬기고 살았다는 점이다. 홍수 이후, 불과 350년만에 여자의 후손인 노아와 셈의 후예마저 이처럼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들을 섬기고 있었으니 하나님의 마음은 오죽하셨을까.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도 영광의 하나님이 그때 그곳으로 아브라함을 찾아가신다.

 

 

[3]

영광의 하나님, ?

무엇을(what):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3)

어떻게(how):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2c)

(why):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가라(3)

 

그렇다면 이런 아브라함을 왜 찾아가신 것일까: ‘가라’(3)

동시에 이런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3)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메소보다미아(갈대아 우르), 무엇보다 하나님이 아닌 이방 신들을 섬기고 있을 때 그를 찾아오신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처럼 살아가는 자리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을 놓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는 점이다.

 

A.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에 머물러 있을 때 이곳을 떠나라 하신다.

B.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은 때에도 찾아오시는 분이시다.

 

이때는(B) 물론 이곳에(A) 거할 때의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런 형편의 때에 있는 아브라함이어도, 그런 처지의 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아브라함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시다. 여기에는 아브라함의 공로도, 믿음도, 행위도, ()도 고려되거나 요구된 것이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3.16)

그렇다. 우리는 이처럼 뜻 밖의 장소에서도 하나님을 만난다. 동시에 뜻 밖의 시간에서도 하나님을 뵈옵는다. 하나님은 내가 있지 않아야 할 그곳에도 계시며 나를 찾아오신다. 또한 내가 그런 때에 머물러 있지 않아야 하는 때에도 바로 그때에도 나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신다. 내가 거룩해서가 아니다. 내가 성도로 바르게 살아서가 아니다. 내가 하나님의 임재와 찾아오심과 안아주심을 받을 만한 어떤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 구원의 때이고, 은혜 받을 자리다. 지금 내가 선 곳이 갈대아 우르, 메소보다미아일지라도 하나님은 이때 그곳을 당신이 임재하시는 성소로 삼으신다. 그럼 내가 탕자처럼 선 곳, 그럼 내가 메소보다미아일 때에도 아브라함에게 찾아가신 것처럼 나에게도 영광의 하나님이실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야말로 우리가 아브라함보다 더 못할 때에, 방황하고 있을 때에, 예배와 기도와 말씀과 소명을 다 팔아먹어 버리고 하나님 밖에 머물러 있을 때에도 찾아 오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은혜라 하지 않는가. 바울이 전하는 로마서 58절이 압권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렇다. 그분이 우리를 찾아오실 때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다. 아무런 소망이 없던 그때 우리를 찾아오셨다. ‘영광의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 당신이 아닌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을 때, 그분은 당신의 자존심마저 버리시고서 죄투성이자 못난이인 아브라함을 찾아오신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라면 나에게도 은혜 받을 기회는 있다. 하나님이 찾아가시지 못할 일생은 없기 때문이다. 그분은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를 나에게도 노래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용서 받지 못할 죄인은 없다. 용서를 구하지 않는 죄인이 있을 뿐이다. 영광의 하나님이 찾아가시지 못할 죄인은 없다. 죄인이 지금 여전히 영광의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을 뿐이다. 어디에서? 그렇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에 머물러 있을 때에도 그런 나를 찾아오셔서 그곳을 떠나라 하신다. 어느 때에? 그렇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은 때에도그런 순간에도 문밖에 서셔서 사랑으로 찾아오시는 분이시다.

 

영광의 하나님이 오늘 이곳에, 오늘 이 시간에 나에게도 그렇게 찾아오시기를 기도하며 무릎을 꿇는다. 양무리의 하늘문을 가르시고 영광의 하나님이 임재하시기를, 이 땅 가운데 오늘도 아무 자격 없는 죄인들을 그렇게 찾아오시기를 바라며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간다. 아니, 이 못난 죄인에게 한 번 더 찾아와 주시기를 간구하며 부르짖는 중이다: “하나님, 나도 사랑 받고 싶습니다! 나에게도 오시옵소서!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 영광의 하나님! 양무리의 영광으로 오시옵소서! 이 땅, 이 민족의 영광으로 오시옵소서! 한국교회의 영광으로 오시옵소서! 예배와 교회와 성도로 모이는 것을 사회악이라, 범죄라 말하는 이 폐역한 시대에도 영광의 하나님으로 오시옵소서!

 

 

  • 2020년 3월 22일 주일설교(양무리교회)를 앞서 한 본문이어서 여기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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