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문제 안에 있는 해답(행 6.1-7)

20230716(양무리교회)

  

 

 

문제 안에 있는 해답

Acts. 6.1-7

 

  

본문 관찰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택하여 세우니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너희 가운데서 택하라!

 

성령 안에서 세워진, 동시에 성장하는, 예루살렘 교회, 바로 그 교회가 심상찮다.

무엇보다 긍정적이고도 건강한 복음의 확장이 바로 그 교회의 성장을 주도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의문이다: ‘성령 안에 있는데 교회가 이럴 수 있는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문제들이 연속해서 터진다. 사도행전 교회는 이처럼 어찌된 게 문제의 연속이다. 2장에서 약속하신 성령이 오시는 것을 시작으로(낮술논쟁), 3-4장에서는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둘러싸고서(예수금지령), 이어서 5장에서는 아나니아 부부의 성령을 속이는 사건이었고, 그런데 진짜 특별한 점은 이 사건은 교회 안에서 발생한 아픈 상처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다시 6장에서 또 다시 교회 안에서 문제가 터진다.

교회 밖 세상이야 당연히 교회와 복음을 흔든다고 하겠지만 성령 안에 있는 교회, 바로 그 교회 안에서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 불편하다. 이번에는 다름 아닌 성도들 사이에 발생한 원망의 문제였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교회(7.38) 생활을 하고 있을 때의 모습을 상기하게 된다. 과연 이러한 불신앙을 이번에도 예루살렘 교회는 잘 해결해 갈 것인가? 또한 어떻게 극복해 갈까.

 

 

원인과 진단(1-4): ()을 선()으로

 

    ∙헬라파 유대인(1): 그리스 말을 하는 과부 신자들

       ↔

    ∙히브리파 사람(1): 히브리 말을 하는 과부 신자들

 

    ∎원인(1) - ‘원망하니’(섭섭하게 여기는 마음)

       → 매일의 구제(봉사)에 빠지므로”(1b)

        = “매일 양식을 배급받을 때 차별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Message)

    ∎진단(2) -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 우리(사도들)와 그들(집사)의 사역 조정 및 분담

 

, 그럼 이번에는 또 어떤 문제가 터지는가. ‘그 때에’(1a)는 외적인 핍박을 잘 수습하고 난 이후를 가리킨다. 이렇듯 밖으로는 여전히 예루살렘 종교 권력이 움직이고 있는 때다. 하지만 교회는 고난을 만났음에도 든든히 서 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 때에외적인 고난은 오히려 교회의 부흥과 건강한 교회를 이루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제는 좀 평안하겠지 싶었는데... 그러나 교회 내부로부터 하나의 갈등을 다시 만나게 된다. 이상한 것은 그것이 원망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성령충만한 교회(개인)에도 문제는 있다는 점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옳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때 사도들은 즉시 모든 제자를 불러”(2a) 문제 해결을 시작한다. 먼저 사도들은 문제를 정확하게 대면한다. 그들은 이 일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무시거나 무관심하는 식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사도들은 문제를 밝히 거론하고 드러낸다. 그냥 덮어 버리지 않는다. 또한 뒤로 미루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을 불러 놓고 공동체의 문제를 정직하게 밝힌다. 뒤에서 숙덕거리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수근수근하지 않았다. 정죄하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뒤 돌아서서, 밀실에서, 사도들끼리만, 윗선에서 결정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사도들의 시각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재정 출납)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2b)에서 금방 드러난다. 사도들은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 찾지 않았다. 원망하는 과부들에게 전가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너희들 때문이야! 왜 들 그래? 꼭 이래야 되겠어? 형편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구?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은 떠나라.”라고 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사도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일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이것은 정확한 영적 통찰이다. 구제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이 일은 집사들이나 할 일이라고 생각한 것 또한 물론 아니다. 그 어떤 사역도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봉사)(4)” 앞 세울 수 없다는 결론이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2.21)

 

문제를 지적하고 비난하고 탓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문제를 풀어내고, 또한 해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해결인가에 있다. 사도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문제의 핵심을 놓치지도 않았다. 문제의 원인은 우리가’(2)이고, 하지만 해결을 위한 방향은 너희 가운데서’(3) 그 답을 찾는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택하라.”(3) 어쩌면 여기 너희는 문제를 만들어낸 원인 제공자들은 원망하는 사람들과 무관하지 않다(1). 하지만 사도들은, 그럼에도 원망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신뢰한 것이다. 비록 사람의 마음은 때로 악하고 불의(不義)하기 때문에 오히려 대적 사탄이 승리의 분위기를 잡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원망이라 할지라도 이를 건강하게 해결하고, 다시 겸손하게 말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 공동체에게 은혜를 허락하신다.

먼저, ‘성령이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을 택하라!’(3)라고 제안한다. 성령충만하지만 사람들에게 칭찬 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 듣는 사람이지만 성령충만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 또한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을 택하라!’(3)라고 요청한다. 이 역시 마찬가지다. 지혜로운 사람이지만 성령과 무관한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사람일 수 있다. 반대로 사람들에게는 좋은 평을 듣지만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결국 성령과 지혜와 덕을 겸비한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맡아 그 일을 책임 있게 감당할 수 있다.

 

 

문제 그 이후(5-7):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찬송가 3732)

 

사도행전 교회의 특징은 위기 가운데서도 넘어지거나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5a) 오히려 교회 안에서부터 터져나온 원망이라는 씨앗을 교회의 성장과 부흥의 기회로 바꾸는 영적 실력이 있다는 점에서 교회는 위대하다. 문제나 위기, 그리고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지상 교회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흔들리고, 갈등하고, 그러면서 무너질 수도 있는 무수한 문제들에 직면한다.

때문에 교회는 날마다 영적 전쟁을 벌인다. 때문에 신약교회를 가리켜 전투적인 교회라 부른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 안에 있지만 그럼에도 아직 여전히 의인된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사도들을 중심으로 초대교회 모든 성도들이 다함께 갈등과 원망이라는 불신앙의 문제를 더 확대하지 않고, 그 문제를 지나가거나 덮어 버리지 않으면서, 마치 상처난 조개에서 영롱한 진주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문제를 열매로 역전시킨다. 그리하여 은혜의 강물이 흐르게 되는 은혜의 모습을 목격하는 기쁨을 맛본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5-6) 교회는 그 공동체만큼 건강하다. 다같이 모두의 승리(Win-Win)를 이끌어내는 사도들의 탁월한 영성을 만나게 된다. 다같이 기뻐하는 해법(解法)을 이끌어낸 것이다. 마침내 원망기쁨으로 바뀌었다. 이와같이 갈등은 극복하기만 한다면 문제라는 그 씨앗은 오히려 공동체를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곤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일은 가능하다. 때문에 누가는 이 기쁨의 후속편을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믿음)에 복종하니라.”(7)

 

 

부스러기 묵상

 

인간은 원망을 낳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이 점점 왕성하게 하신다. 이렇게 하심으로 원망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게 하신다. 놀랍게도 성령충만한 초대교회였을지라도 그곳에는 원망이라는 가시가 있었다. 이때 그리스도인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먼저, 그것을 비난하고 떠벌리는 사람은 실패한 사람이다. 또한, 그것만을 보고서 하나님의 능력과 교회의 권위를 부인하는 사람 역시 어리석은 사람이다. 사람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원망이라는 문제보다 하나님이 더 크시고 위대하신 분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계획하시고 이루어가시는 이야기를 인간이 만들어 낸 문제와 원망과 갈등 때문에 포기하신 적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하실 뿐만 아니라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라는 위대한 신앙을 고백하게 하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삶에서 만나는 갈등을 어떻게 할까. “내가 옳다, 너는 틀렸다, 죽일 놈, 살릴 놈이라 하면서 서로 망하는 쪽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사도행전 교회처럼 원망의 밭에서도 마침내 기쁨의 열매가 자라게 하면서 다시 일어날 것인가. 하나님은 이 숙제를 우리 양무리 공동체에게도 주셨다. 오늘 주님은 사도행전 말씀을 통해서 이를 미리 풀어보도록 예제(例題)도 주셨고, 또한 오늘처럼 모범 답안도 함께 주셨다. 내 경험과 생각대로라는 답안지를 써 놓고 나처럼 푼 해답이 정답이다.”라고 교만하게 폼잡다가는 그것으로 탈락일 수 있다. 문제를 문제로 겸손하게 인정할 수 있고, 그 문제 안에 있는 하나님의 해답을 볼 수 있고, 이를 은혜와 사랑 안에서 해결함을 통해 모두가 다 기쁨과 새로움을 만날 수 있다면 문제는 오히려 축복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모인 교회 역시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조그마한 바람만 불어도 가지는 흔들리고, 그게 좀 심하면 가지도 부러지고 그런다.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는 초대교회도, 무엇보다도 사람만 모인 것이 아니라 성령충만함으로 성장하는 지상교회의 표준에 가까운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쪽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또한 비 온 후에 땅이 더 단단해지는 것처럼 7절이라는 결과로 열매를 맺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문제 안에 있는 해답을 열매로 맺어가는 교회가 품고 있는 소망이다. 이 모습이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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