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고난행전(행 5.17-32)

20230710(묵상)

  

 

 

고난행전

Acts. 5.17-32

 

 

    본문 관찰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사람보다 하나님께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사함을 주시려고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다섯 번째 설교

 

교회가 다시 외부의 적 앞에 노출된다.

사도들은 성령에 충만하여 기도(4.30)와 전도(14)를 통해 복음의 역사가 왕성하게 일어나는 것에 증인으로 서 있고, 반대로 종교 지도자들은 시기가 가득하여 핍박과 방해(17-18)를 통해 사도행전을 가로막는다. 어느 시대나 복음은 늘 거부되었고, 하나님의 역사를 거역하는 자들은 있었다.

내부의 문제를 넘어 계속 순항하자 다시 외부의 적이 등장한다(1-11 12-16 17- ). 사도들은 다시 투옥된다(4.3 5.18). 교회행전(11)은 이렇듯 안팎에서 밀려오는 위기들을 쉼 없이 만난다. 그런데도 교회는 부흥행전의 역사를 계속한다. 종교지도자들의 핍박은 점차 그 강도를 더 한다. 여기에 대한 사도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은 동일한 위기에 직면할 때 어떻게, 무엇으로 이기며 살아야 할 것인가를 교훈 받게 된다.

 

 

이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17-28).

 

예루살렘 교회는 내분을 통해서 자멸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오히려 그 반대였다(1-11 12-16). 이 일을 보면서 모두가 다 감동을 받고, 하나님을 높이고, 힘과 격려를 받은 것은 아니다. 대제사장과 사두개인의 당파가 보인 반응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17), 그래서 그 결과 사도들을 다시 투옥시키고 만다(18). 이들은 다음 날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소집하여 사도들의 죄, 그러니까 명령불복죄와 불순세력 집단이라는 죄목(28)-주님도 이와 비슷한 죄목을 받으셨다.- 엮어 이번에야말로 뭔가를 보여주려고 단단히 버르던 중이었다.

예루살렘 종교 권력이 이처럼 움직이려고 하는 바로 그 날 밤, ‘주의 사자가 옥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20)고 말씀하였다. 이것은 기적이다. 옥문은 든든하게 잠기고 옥졸들이 문에 섰으되 옥은 비어 있고, 거기에 있어야 할 사도들은 성전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지 않은가(21-26).

적대자들(예루살렘 종교 권력)도 놀랐겠지만 사도들 또한 고난에 처한 자신들을 특별한 은혜로 보호하시며 도우시는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것이다. 이 신비한 비밀은 주와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경험하는 다양한 형태의 주의 임재하심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복음을 거역하는 유무형의 세력들을 꺾으시고 복음의 빛을 만방에 발하신다. 하나님을 막을 세력은 없으며, 복음이 가는 길을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29-32).

 

    ∙1차 투옥(4.3) -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2차 투옥(5.18,26-29) -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19)

    ∙3차 투옥(12.3-5) - “주의 사자가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7)

 

베드로의 설교는 짧지만 능력이 있다. 그는 지금 자신을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오직 예수의 복음만을 증거한다. 예수님을 죽인 자는 너희들 자신이라고 거침없이 선포한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일사각오다. 사람에게 순종하며 사는 길을 포기하였음을 공표한다. 지금 사도행전을 따라 걸어가는 길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임을 분명히 한다. 여기에는 타협이 없다. 이것은 선포다. 어떠한 위기와 시련이 있어도 정도(正道)를 가겠다는 신앙고백이다. 저희가 예수님을 죽였지만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듯이 지금도 이 예수의 복음을 거역하고 훼방할지라도 하나님은 교회행전의 역사를 중단하지 않으실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한다.

베드로의 변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까지 나아간다. 다시 사신 예수님은 그럼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하나님께서 그를 보좌 우편에 높이셔서 왕과 구주가 되게 하셨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그러니까 지금 사도들과 교회를 핍박하는 바로 너희가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일하심이라 선포한다(31).

사도들은 지금 이 일의 증인임을 밝힌다(32a). 또한 교회행전의 역사를 주도하시는 성령님도 증인이심을 상기시킨다(32b). 따라서 이 거대한 부흥행전에 불순종하는 너희들은 성령님 밖에 서 있는 자들이라는, 즉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거짓 종교지도자들이라는 직격탄은 저들의 심장을 향해 날려 보낸다. 이로써 결코 불의(不義)와 거짓과는 타협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부스러기 묵상

 

박해시대의 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 안에 있다.

대표적으로, 엘리야 시대 때 그가 바알종교와의 갈멜대첩에서 승리하지만(왕상18.7-40) 이세벨의 박해는 중단되지 않았다. 이때 엘리야는 광야로 도망을 가고 거기서 죽기를 구한다(왕상19.1-4,10). 하지만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7,000명을 남기실 것을 말씀한다(왕상19.18).

이러한 예는 중국교회에서도 발견된다. 중국이 1950년에 기독교를 박해하여 교회 문을 닫을 때, 당시 약 300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1985년 중국 공산당이 다시 교회를 허락하고 문을 열었을 때 자그마치 6,000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이루고 있었다. 이에 중국 공산당도 놀라고, 중국교회도 놀라고, 세계교회가 놀란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맞다. 교회는 박해와 순교의 피를 먹고 자란다.

그래서 말인데, 북한교회도 허다한 무리가 주님을 섬기며 복음의 자유의 그날을 소망하고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마치 이스라엘이 애굽의 절망에서 부르짖으며 해방의 그날을 사모했듯이 지금도 산지사방(山地四方)에서 주님을 섬기는 숨겨진 그리스도인들로 가득차 있을 것을 믿는다. 현재처럼 대외용으로 세워진 [봉수교회]만이 아닌, 북한이 개방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드러날 때 북한교회 역시 고난과 핍박 속에서 하나님이 보존하신 교회로 세워져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도 목숨을 복음으로 바꾸면서까지 주를 위해 살기를 포기하지 않고, 이러한 절대절망의 핍박 안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북한 지하교회와 성도들을 생각하며 사도행전의 고난의 역사를 읽어가고 있다.

신앙은 온실에서 자라지 않는다. 주님의 일을 한다고 모든 일이 순풍을 따라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공식은 없다. 신앙은 삶의 전 영역에서 시작되고 진행되며 또한 완성된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충성하는데 왜 이런 어려움을 만나야 하느냐고 항변하는 것은 지금 자신이 무엇 때문에 부르심을 받았고, 자신은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알지 못하는 영적 무지일 수 밖에 없다.

이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하나님을 위해 뭘 하고 있다는, 그래서 그 반대급부(反對給付)로 뭔가를 얻어내려는 얄팍함을 버려야 한다. 어떻게 사느냐 만큼 어떻게 죽느냐, 무엇으로 사느냐 만큼 무엇으로 죽느냐, 왜 사느냐 만큼 왜 죽음 앞으로 당당하게 나아가느냐 역시 중요한 신앙의 명제들이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과 성령님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승리해 내고 있는지, 사도행전을 읽어 내려가는 마음이 어쩐지 좀 불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럼에도 아직 살아있음이 황송하기도 한 이런저런 생각들이 출렁거린다.

 

  

  • 본문(5.17-32)은 묵상으로 설교를 대신한다. 후에 기회가 되면 양무리교회 강단에서 설교를 할 수도 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다만 3-5장까지의 분위기가 교회 안밖으로 갈등의 연속이고, 그래서 분위기와 색깔이 반복적이어서 연속적인 설교에서는 건너뛰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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