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표적(기적), 예수께서 하셨다(행 3.11-26).

20230611(양무리교회)

 

 

     

표적(기적), 예수께서 하셨다.

Acts. 3.11-26

 

 

    본문 관찰

 

    기적의 본질(11-16)

    기적의 주체(17-26)

  

 

세 번째 설교, 예수가 하셨다!

 

    문제1 무엇이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걷도록 완전히 낫게 하였는가? ( )

 

    ① 나면서 못 걷게 된 이(자신의 믿음이나 행위)

    ② 베드로와 요한의 능력이나 경건함(사도들의 개인의 능력)

    ③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믿음(예수의 이름과 그를 믿는 믿음)

    ④ 예루살렘 교회의 계획된 연극 같은 쇼(Show)

    [힌트] - 10, 12, 16

 

기적(표적)과 일어난 하나님의 일에 대한 베드로의 설교가 이어진다.

그는 성령과 그 능력을 사유화하지 않았다(세속적 기적방법론). 그 연장선에서 지금 일어난 기적 이후에도 이것을 자신을 높이는 기회로 삼는 것 같은 어떤 우쭐함 같은 흔적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자신을 향한 시선을 오직 주님께로 돌린다(12b 16). 그는 겉으로 드러난 사실과 현상(10,12), 그리고 본질(진리)을 혼돈하지 않았다(16). 성령을 받았어도, 결과적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이 있어도 그는 이 모든 것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지 않는다(인본주의적 예수공식, 인간적 기적소유권). 그럼 무엇인가. 베드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능력만을 전한다.

 

 

기적의 본질(11-16)

 

    “12b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b 너희가 그를 넘겨주고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15a 너희가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15b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기적이 일어나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11). ‘나면서 못 걷게 된 이가 베드로와 요한으로 더불어 함께 걷고 뛰어다니는 것을 보자 그런다. 이때 베드로는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예수님께로 돌린다: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12b) 그는 영광을 자기 것으로 취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래서 주님의 뒤로 자신을 감추고서 오직 주님만이 영광을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13a)- 받으셔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예수님 뒤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보기를 촉구한다(13a). 결국 이 일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예수님이시고, 이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께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이 영적 진리에 대한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너희를 향한 베드로의 설교가 이어진다: “너희가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13b-15a) 베드로는 이스라엘의 죄를 밝히 드러낸다. 이처럼 죄 가운데 있으니 기적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죄는 바른 판단과 행동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래서 끝없는 죄의 악순환만을 낳게 한다. 베드로가 진단하는 저희의 상태가 그렇다. 이미 성령님이 오셨고(2.1-4), 수 천의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고(2.41), 무엇보다도 나면서 못 걷게 된 이가 걷고 뛰는 기적 앞에 서 있음에도 그것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도 모르는 것, 이것이 죄인의 모습이다.

그래서 무엇인가. 하지만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러나로 이 문제를 풀어 가신다. 놀랍다. 인간은 철저하게 딴 길로 갔는데 하나님은 이처럼 일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15b) 새 역사는 여기서부터다. 베드로에게서가 아니다. 지금 베드로는 이것을 말하고 싶어한다. 그러니까 나면서 못 걷게 된 이’, 이 사람이 뛰게 된 것 역시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역사라고 선언한다. 결코 자기 공로나 업적(능력)으로 변형(표절, 사유화, 도적질)시키지 않는다. 진리를 진리로 보고,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시각에서 통찰하고, 그것을 그대로 시인하고, 또한 말할 수 있는 사람, 그가 성령 안에 살아가는 사람 베드로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 사람의 사건을 16절처럼 결론을 맺는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믿음 때문에, 여러분이 보고 아는 이 사람이 강건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보시다시피 예수님의 이름과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 이 사람이 완전히 치료를 받은 것입니다.”(쉬운성경) 이로써 모든 시선을 오직 주님께로 돌려 드린다. 이것은 입술에만 있는 빈말이 아니다. 예수 이름을 높이는 진심이면서, 한 사건을 대하는 베드로의 통찰이자 신앙고백이다. 성령충만 이후에 한결같은 마음과 태도를 유지하는 베드로를 보라. 이 베드로에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가시는 일에 쓰임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든든함과 건강함을 배우게 된다. 이처럼 겸손하게 낮아져 있는 베드로의 힘은 하나님과 성경과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함과 거룩함으로부터 왔다. 이것이 이제 막 시작된 사도행전 교회의 모습이다.

 

 

기적의 주체(17-26)

 

    “17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18   그러나 하나님이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르셨느니라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

      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22a 모세가 말하되

      24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

      25b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26a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26b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베드로는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라는 이야기(겉모습, 현상/기적)만으로 그의 설교를 채우지 않는다. 이 큰 일을 이루신 분, 놀라운 기적의 주체이신 예수님, 그 분이 누구이신가라는 본질(진리)을 말하는 것으로 설교의 중심을 이동한다. 결국 예수님을 이야기하는 것이 설교의 목표다. 이처럼 그는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예수님과 통합하고 연결한다. 그러니까 그 이름예수님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17a), 그래서 결국 무지 때문에 13b-15a절처럼 언행했다고 고발한다. 하지만 몰랐다는 것이 변명이나 무죄(無罪)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같이”(18), 그러니까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15b)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므로 ’(19- ):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그런데 많이 익숙한 말씀 아닌가. 그는 다시 238절처럼 초청(Calling)한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 유쾌하게 되는 날이 임할 것을 복음으로 축복한다. 사람들은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주목하지만 베드로는 그에게서 예수님을 본다.

이게 다르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재림까지를(20), 더욱 선지자(21,24), 모세(22-23), 아브라함(25)까지를 예수님을 통해 이해하도록 요구한다. 이처럼 예수님을 통해서 구약을 볼 때만이 비로소 진리의 빛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실패한 이유는 예수님을 바르게 아는 일에 철저하게 무지하기 때문이다. 기적의 본질과 그것을 이루는 분의 역사하심이 보이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구약의 예언과 계시에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9절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

하나님의 하신 일은 끝나지 않았다(26). 그러니까 너희가 그랬음에도, 너희가 죽였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 종을 통해 복()을 주려 하셨다. 그래서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기 위해 너희에게 먼저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다(25 26). 그리하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악()을 버리게 하셨다. 그럼에도 이와같은 한량없는 은혜를 받은 너희가 하고 있는 일이 고작 무엇이라 하시는가. 이것이 베드로의 진단이다([1] - [4]).

 

 

부스러기 묵상

 

    베드로의 진단

    [1] 불신앙(16) -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성하게 하였나니

    [2] 영적 무지(17) -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3] 회개하지 않음(19) -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4] (26) -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왜 이 진리와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고 있는가.

바로 위의 것들 때문이다([1] - [4]). 그렇다면, 선지자의 말씀을 들었어도(18,21,24), 모세의 율법을 받았어도(22-23), 아브라함 언약의 후손임에도(25) 이것들이 너희의 본질을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베드로의 통찰은 인간이 얼마나 그리스도적인가를 웅변적으로 드러낸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21a) 이 일을 진행하셨고, 한 번도 이 섭리를 포기하시거나 변경하시지 않으셨다. 이 모든 죄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해결하셨다. 베드로는 이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알았고 만났다. 그래서 그 또한 이 패역하고 죄 많은 세상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볼 수 있는 영적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기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고, 동시에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이스라엘(‘너희)처럼 말하고, 이 너희들처럼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산다. 그럼 반대로, 기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알고, 믿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베드로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보인다. 그래서 베드로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동시에 베드로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낸다.

이처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에게 죽게 하사 그의 의를 따르는 자들을 구원하시고, 모든 압제와 죄의 속박으로부터 너희우리모두를 고치시사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다. 이 일에 우리 모두는 증인이다. 이것이 날마다 예수의 기적을 보고, 말하는 주님의 몸된 바로 그 교회다.

 

 

제목 날짜
23 사울, 빌립, 시몬: 나는 누구인가?(행 8.1-13) 2023.08.12
22 너희도 구약처럼 실패하려느냐?(행 7.1-53) 2023.07.29
21 광야교회(행 7.35-43) (1) 2023.07.25
20 영광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언제?(행 7.1-4) (1) 2023.07.25
19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살고(행 6.8-15, 7.54-60) 2023.07.22
18 문제 안에 있는 해답(행 6.1-7) 2023.07.22
17 옥중행전(행 5.33-42) (1) 2023.07.12
16 고난행전(행 5.17-32) (1) 2023.07.10
15 교회, 거룩에로의 부르심(행 5.1-16) 2023.07.08
14 교회: 말씀과 기도 안에서 교제하기(행 4.23-37) 2023.07.01
13 40년만의 첫 외출, 예수를 만나다(행 4.13-22). 2023.07.01
12 세상이 예수를 거절할 때, 나는?(행 4.1-12) 2023.06.24
11 표적(기적), 예수께서 하셨다(행 3.11-26). 2023.06.10
10 나도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행 3.1-10) 2023.06.04
09 교회, 그 놀라운 하나님의 백성(행 2.43-47) 2023.05.27
08 세례신앙설명서: 세례에 관하여(행 2.37-42[2]) 2023.05.27
07 교회, 예루살렘에 예수의 증인으로!(행 2.37-42[1]) 2023.05.20
06 성령강림, 구약을 성취하다(행 2.14-36). 2023.05.13
05 기도⑥: 초대교회의 기도(행 2.1-13) 2023.05.08
04 교회, 말씀과 기도로 세워진다(행 1.15b-26). 2023.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