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 복음 vs 헤롯: 세상(눅 9.1-17)

20210126(묵상)

  

 

 

제자들: 복음 vs 헤롯: 세상

Luke. 9.1-17

  

    [구조 관찰]

    A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6)

        X 헤롯이 그를 보고자 하더라(7-9)

    A' 사도들이 돌아와(10)

 

        본문 관찰

        12 제자의 복음전파(1-6)

        분봉왕 헤롯의 반응(7-9)

        오병이어(10-17)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이 제자들을 통해서도 전파된다:

예수께서 12 제자를 불러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1-6) 이렇듯 하나님의 나라가 자랄수록 세상 나라는 심히 당황하며 불안에 떤다(7-9).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생명의 양식 뿐만 아니라 오병이어를 통해 일용할 양식도 주신다. 세상 나라의 한 그림인 헤롯과 비교되는 이 기막힌 장면을 보라. 헤롯은 세례 요한을 죽이는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반대하고 저항하는 것으로,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점점 멀어지는 것으로 밖에 할 일이 없다. 복음과 반대로 언행하고 있어서다.

   

 

12 제자의 복음전파(1-6)

 

제자들은 무엇이 하나님의 나라의 씨앗이며,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으로 세워지고 성장하는가를 직접 현장에서 경험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돈의 나라’(3)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세상의 것들을 동원해서 만들어가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래서 주님이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1)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2)는 것으로 시작되고 이루어지며 성장해 간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더 이르신다. 만일 하나님의 나라의 법(, 1-2,4), 세상 나라의 법(, 3)이 충돌을 일으킨다면 그 성을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5)라고 명하신다. 그렇다면 이 두 나라는 상존(공생, 상생)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제자들은 어떠한 상황과 형편에서도 하나님의 나라의 방식과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분봉왕 헤롯의 반응(7-9)

 

누가의 앵글이 잠시 헤롯에게도 옮겨간다. 제자들이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6)는 현장 사역을 하고 있을 때, 동시에 바로 이때는 제자들과 예수님이 이 일을 사이에 두고 잠시 동행이 아닌 모습으로 있을 때였다. 그는 복음을 따라 반응하는 라인이 아니다. 유독 그만이 제자들이 드러내는 하나님의 나라에 적대적이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복음, 2,6)를 전파하는 것과 반대편에 서 있다. 그가 지금 예수님께 보인 반응은 고작 이 정도라는 사실이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한편 당시 이 시점에서 사람들이 보인 예수님에 대한 반응은 크게 세 가지다(19). 첫째,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7b). 둘째, 엘리야가 나타났다(8a). 셋째, 옛 선지자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8b). 다분히 구약의 성취, 혹은 연속으로 보고 있음이 흥미롭다. 여기까지가 예수님의 초기 사역에 보인 유대의 반응이다.

이 정도만도 되지 못한 반응이 헤롯의 앵글이다. 오리려 그는 세례 요한을 통해 자라고 있는 복음의 싹을 잘라버린 자다. 그것도 부족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뭔가 관심이 보이는 것처럼 이지만 그러나 복음을 깨닫고, 주님을 알고,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는 흐름과는 전혀 무관한, 오리려 예수님에게까지 요한에게 한 방식을 대입해 보겠다는 식이다. 어떻든 헤롯에게는 요한처럼 예수님도 죽이는 것이 목표다. 세상 나라의 초점은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기 때문이다: “어떤 바리새인들이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13.31)

   

 

오병이어(10-17)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13a)

 

예수님의 12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전파하였고(1-6), 이어 다시 예수님에게로 돌아왔는데 이번에도 계속되는 전도여행에 무리가 알고 따라”(11a)온 자들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 남자가 한 5,000명이나 되었다(14). 어쩌면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앞서 제자들에게 명하신 3절을 성취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리가 자그만치 남자만 5천명이다.

주님은 당신에게 나아오는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11)곤 하셨는데 문제는 그만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고, 이 많은 무리가 머문 곳은 빈 들’(12b)이다. 어찌할까. 지금 제자들에게는 오병이어라는 3절만이 있을 뿐이다.

이 순간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던 것을 기억하게 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구할 때 의식주의 모든 것을 공급하시겠다는 산상수훈의 말씀처럼(6.33), 주님은 이 빈 들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생명의 양식을 주실 뿐만 아니라 일용할 양식도 배불리 먹이신다. 이로써 어느 것 하나도 할 수 없는 세상 나라의 왕 헤롯이 얼마나 무능하며 가짜 왕인가가 드러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다 배부른 그야말로 잔치일 뿐만 아니라 남은 것이 12 바구니나 됨에도 말이다(17).

   

 

부스러기 묵상

 

누가의 청중 분석이 흥미롭다.

예수님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헤롯이 듣고 있는 이야기와 제자들이 증거하고 있는 이야기가 동일하다(7-8,19). 하지만 그것에 대한 반응은 전혀 달랐다. 헤롯은 복음행전 앞에 요지부동(搖之不動)하고 있지만 제자들은 달랐다. 그는 진리에 대한 갈급함에서가 아닌 단지 이 사람이 누군가’(9b)에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이는 역시 이어지는 베드로의 고백이 무게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20b) 이는 헤롯의 보인 반응,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9)와 대조를 이룬다.

 

    예수님에 대한 반응들(긍정, 부정)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4.15).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4.22).

      ∙다 크게 화가 나서 쫓아내어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4.28-29)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4.33-34).

    ▪귀신들이 나가며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4.41)

    ▪무리가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4.42)

    ▪그들이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5.11)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모여 오되(5.15)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이 신성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5.21a)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5.21b)

    ▪모든 무리가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5.26)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5.30)

      ∙그들이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5.33)

      ∙어떤 바리새인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6.2)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러 엿보니(6.7)

      ∙그들이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6.11)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6.19)

    ▪어떤 백부장 예수의 소문을 듣고(7.2- )

    ▪예수에 대한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7.17)

      ∙바리새인이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7.39)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7.49)

    ▪제자들이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8.25)

    ▪귀신들린 자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8.28)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예수께 떠나가시기를 구하더라(8.37)

    ▪회당장인 야이로 하는 사람이 와서 간구하니(8.41- )

 

복음과 그리스도(메시야)의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쌍곡선은 처음부터 등장한다. 마치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서처럼 이 둘이 함께 자란다. 하지만 그럼에도 복음은 중단되거나 약화되지 않으며, 예수님은 이제 이 일을 곧 일선에서 감당할 제자들을 현장에서 훈련하시는 일을 하신다. 이들은 점점 강해질 것이며, 예수님에게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제자들을 통해서 땅 끝까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온 천하에 복음이 전파되는 날까지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이 일이 제자들에게서도 진행되고 성장한다는 것을 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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