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산상수훈(山上垂訓)⑥ - 천국로(天國路)는 좁은 길이다!(마 7.13-20)

20220123(양무리교회)

 

 

 

산상수훈- 천국로(天國路)는 좁은 길이다!

Matt. 7.13-20

 

    본문 관찰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13-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14)

       ↔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13)

    거짓 선지자들(15-19)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20)

 

 

두 길 인생

 

    신명기(30.15-20: 생명과 복 vs 사망과 화(저주)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가는 길이 소개된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인도하는 길이 있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인도하는 길이 있다. 어느 시대나 생명(천국)으로 인도하는 문을 찾고, 그 길로 가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 길을 더 옳고 바르게 인도하고 보여주어야 할 선지자들 곧 목회자(설교자)들이 이어 소개된다. 이렇게 보면 천국대로는 밝고, 맑고, 소망과 기대 곧 열매가 기대되는 그런 길이다. 과연 선지자 곧 설교자는 이 역할을 잘 감당할까.

사실 이 두 길은 우리가 언제나 만나고 지나치는 그런 길이다. 그렇다면 이 두 길 가운데 지금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은 어떤 길인가. 이 진단은 내 스스로 만든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다. 이제 이 말씀의 거울에 비춰보자.

   

 

1.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 좁은 문

 

    ▪작고 그 길이 매우 좁아, 그 곳을 찾는 사람이 적다.”(14b, 쉬운성경)

    ∙아브라함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바울(20.24)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

    ∙복음서 5리를 가자하면 10리를,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지금 당장은 싫고 나쁜데 나중은 좋은 것이 있다. 역시 오늘 본문과 연결시켜 보면 좁고 협착(狹窄)하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 곧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다. 개미형 신앙이다. 내일이 있다. 비록 오늘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희망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넉넉하게 오늘을 이겨낸다. 영원한 것을 위해 찰나적인 것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이 길을 걸어 갈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찾는 이가 적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처럼 결단하고 살아가는 것이 옳은가를 종종 의심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믿음이다. 하나님을 향한 철저한 신뢰만이 험한 세상을 승리해 낼 수 있다.

 

    ▪좁은 문의 특성들

    ∙어렵고 힘들다. 자꾸 좌절이 되고 두렵다.

    ∙지친다. 그래서 이쯤에서 포기하고 싶다.

    ∙외롭고 고독하다.

    ∙고생스럽다.

 

진정한 행복을 맛보며 산다. 비록 좁고 험한 인생길을 걸어가도 그 길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길임을 믿기에 환경을 지배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감옥에서도 찬송할 수 있고(빌립보 감옥 바울 & 실라),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스데반),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지만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를 외치며 고독하고 외롭고 좁은 길을 걸어간다(사도 요한).

   

 

2.1.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13)

 

    “넓고 그 길이 쉬워,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들어간다.”(13b, 쉬운성경)

 

세상에는 물론이고 하나님께 이르는 길을 걸어가는 중에도 지금 당장은 좋은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신통치 않을 뿐 아니라 실패로 끝나는 것들이 있다. 오늘 본문 식으로 하면 이는 크고 넓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다. 바로 배짱이형 신앙이다. 내일이 없다. 오늘이 있을 뿐이다. 보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현세만 있지 내세는 없는 사람이다. 더 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점이다. 내가 아는 그 사람도 이처럼 살고 있으니 나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말인가? 기준이 사람이라는 말이다.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진리를 보지 못하고, 따라서 하나님이 아닌 것에서 해답을 찾아간다.

진정한 행복이 없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여유롭다고 할지라도 언제나 삶이 공허하고 만족이 없다. 환경에 지배당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좀 더 많고, 편하고, 자극적이고, 신선하고, 만족스럽고, 불안하지 않는 것을 찾아 끝없이 돌진해 간다.

   

 

2.2. 거짓 선지자들(15-20)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들이 반드시 만나는 자가 있다. 바로 선지자들 곧 예언자들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라는 신앙 생태계에서 선지자(예언자)는 목회자 곧 설교자로 이해될 수 있다. 흥미롭게도 Message 성경은 이 점을 우리에게 주목하게 한다:

 

    “억지로 진실한 표정을 지으며 헤프게 웃어 대는 거짓 설교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이래저래 너희를 벗겨 먹으려는 수가 많다.

      카리스마에 감동할 것이 아니라 성품을 보아라.

      중요한 것은, 설교자들의 말이 아니라 그들의 됨됨이다.

      참된 지도자는 절대로 너희 감정이나 지갑을 착취하지 않는다.

      썩은 사과가 열린 병든 나무는 찍혀서 불살라질 것이다.”(15-20, The Message)

 

위에서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13b)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을 선택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 길을 택하고 따라간 사람의 책임이다. 그런데 멸망으로 들어가는 문이 하나 더 있다. 다름 아닌 거짓 선지자들이다(15- ). 오늘날로 하면 목회자 곧 설교자라 할 수 없는 삯꾼과 같은 그런 지도자 그룹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거짓 목회자 곧 참된 설교자와 거리가 먼 지도자들을 삼가라’(15a), 그러니까 조심하라 말씀한다. 왜 그런가: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온다. 그러나 그 속은 굶주린 늑대이다.”(15, 쉬운성경)

   

 

3. 열매로 알리라!

 

그런데 가장 불행한 인생이 있다. 첫째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을 통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하여 은혜의 품 안에 거하면서, 정작 그의 삶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을 통과한 사람처럼 살아가는 인생이다. 다른 하나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을 통과하여 그 결국은 사망이요, 그리스도 밖이요, 은총 밖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생명 가운데 참여한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인생이다.

이를 성경은 영적 무지라고 부른다. 자신을 알지 못하니 좌충우돌(左衝右突)이요, 무식하니 용감하고,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그런 삶을 살아간다. 자기는 옳고 정당한데 상대방이 언제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한심함과 영적 무지 때문에 주님의 모습이 얼마나 일그러지는지 모른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주님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실까. 그것은 지금 내가 맺고 있는 열매가 가장 확실한 증거다. 무릇 심은대로 거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그가 하는 이 아니라 그가 행함으로 맺어가는 열매로 그를 알라 하신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16a) 가시나무라 하면서 포도를 맺을 수 없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는 것과 같다. 목회자요 설교자라고 하면 그는 자신의 사역과 부르심에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 핵심은 이 거짓 선지자 때문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 생명의 길이요 천국의 길인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자가 거짓 선지자들 곧 거짓 설교자일 수 있다.

   

 

부스러기 묵상

 

나는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 나는 지금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내가 걸어가는 길이 생명의 길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지금 만난 그 모든 것들(좁고 길이 협착아여 찾는 자가 적음’)이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반대로 지금 당면한 현실 때문에 내 안에 있는 예수의 생명이 정상적인 호흡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 만들어 내는 열매는 좋은 열매일 수 없다. 왜냐하면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환경(현실)이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만난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을 주관하시는, 이러한 모든 형편의 주도권을 쥐고 계신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는 나의 상태가 문제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좁은 길에서도 자족하며, 기뻐하며, 감사하며, 마냥 행복해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 땅에서 살지만 하늘의 것을 맛보며 사는 것이다. 이 비밀은 하늘의 신비를 맛본 자만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하늘의 시민이 된 자만이 누리며 살 수 있다.

나의 행복은 이것이다. 아무리 당면한 나의 환경이 나로 하여금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을 가로막고 방해하고 흔들리게 한다 할지라도 그것에 지지 않는 믿음이 있기에,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사 나의 가는 길을 인도하신다는 확신이 있기에 실패할 수가 없다.

시작은 좁은 길이지만 나중 그 끝은 열매다. 그리고 그 열매로 안다. 이 일이 천국대로라는 것을 믿고서 주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

 

좁은 길에 있음을 감사하십시오.

비록 찾는 이가 적은, 그래서 외롭고 고독한 길이지만...

그렇지라도 이 길이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길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 좁은 길입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 나를 아낌없이 드리는 것이 천국으로 가는 생명의 길입니다.

나의 피 한 방울이 너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이듯 말입니다.

그 무엇보다 예수의 십자가가 생명입니다.

내 안에 이 생명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이것이 산상수훈을 따라 사는 자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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