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는다(요 8.12-20).

20220127b(묵상)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는다.

Jn. 8.12-20

 

    본문 관찰

 

    나는 세상의 빛이라(12)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13-20)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는도다.

 

7장의 어두운 밤이 지나고 새 날 아침이다(2).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어두움에 빠져있다. 어두움이 빛을 이기려는 치열한 영적 전투가 7장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린다. 빛 앞으로 어두움이 왔다. 바리새인들과, 그리고 간음하다 잡힌 여인이었다. 여인은 분명 어두움의 사람이다. 그녀를 둘려 싼 영적 어두움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해결하실 수 있는 것이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말씀을 듣기 위해 아침부터 주님 앞에 찾아 나왔던 회중들, 한편 간음하다 잡힌 여인의 뒤를 따라 성전에 운집했던 청중들, 이들 모두는 빛이 자신들에게 임하기도 전에 다시 어두움 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칙칙하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12).

 

생수의 강’(7.37-38)생명의 빛’(12) 사이에도 어두움의 실체는 여전히 일한다. 자신만 어두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인과, 그리고 이를 통해 예수님까지 어두움으로 몰아 넣으려고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6)한다. 이스라엘 광야생활의 생생한 상징들이 모두 재현되었다. 오병이어(만나, 6), 생수(7, 37-38), 그리고 불기둥(, 12)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세상은 여전히 생명 밖에 머물러 있고, 영적 기근에 허우적거리며, 영적 어두움에 깊은 잠을 자고 있다.

이 어두움이 한줄기 빛으로 깨어난다. 주님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에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11b)는 말씀으로 그녀를 빛의 세상으로 초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주님은 여인에게 빛을 따르는 생활을 시작하라고 말한다. 더 이상 어두움에 다니지 말라고 하신다. 그리하면 생명의 빛을 얻는다고 말씀하신다. 여인만이 12절의 대상이 아니다. 바리새인들 역시 이 말씀의 대상자들이다(13a). 하지만 어찌 바리새인들 뿐이랴.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1.5,9-11)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나려 함이라 하시니라.”(3.19-21)

 

 

나를 알았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13-20).

 

바리새인들은 여전히 율법의 앵글로 예수님을 점검한다(13). 그러나 이것은 육체를 따라 판단해서 될 일이 아니다(15). 그러니까 14절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율법으로 묻는(13) 바리새인들에게 역시 율법으로 답하심으로써(16-18) 율법을 폐하지 않으신다(35.30). 예수님은 스스로 율법의 의를 지키심으로서 율법을 이루신다.

한편 새로운 고소의 틈을 찾는 바리새인들의 질문(13)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14-18)은 계속되는 문답(問答)으로 이어진다. 아버지를 말하는 주님의 말씀에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19a)라는 의문이 생기는 것은 어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버지를 모르는 어두움의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19b) 빛과 어두움의 생생한 대비가 압권이다. 성부와 성자를 모르는 자들, 성령을 받지 않은 자들(7.39), 구약의 아버지를 모르니 신약의 아들을 알 턱이 없고, 신약의 아들을 모르니 구약의 아버지를 안다 할 수 없는 자들이 바로 어두움에 포로가 되어 있는 인생들의 모습이다.

   

 

부스러기 묵상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14,19)

 

기적은 주님이 행하시는 표적들만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표적들과 예수행전으로 이어지는 주님의 언행(言行)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계속해서 영적 무지의 어두움에 빠져있는 자들이 기적이다. 이들은 자기만 이 기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3-5), 그리고 예수님까지(6,59), 그러니까 주님의 말씀처럼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빛을 가로막은 자들이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23.13,15)

주님을 알지 못하면 나를 알지 못한다. 주님을 아는 만큼 나를 안다. 어둠에 있는 것만큼 빛을 알지 못하며, 빛으로 나아오지 않는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나를 모르는데 -주님을 모르는 것만큼 말이다- 그럼에도 주님을 안다, 저 여인은 죄인이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율법(말씀)을 범하는 죄가 된다, 이 불결한 여인은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 그러면서 이러쿵저러쿵 열심히 떠들고, 가르치고, 결정하고, 결의하지만 진짜 주님이 진단하시는 나를 보면 참으로 웃기는 일들이다. 이렇게 사는 게 나라는 생각을 하면 절로 기운이 빠진다. 주님을 모르는 것만큼 날뛸 수 있고, 좁쌀 같은 책임과 의무를 수박 같은 권리와 권한으로 착각하며 서서히 바리새인되어갈 수 있다. 그런 줄도 모르면서 말이다. 이게 걱정이다.

지금은 나의 기초를 다시 점검하고, 새롭게 토대를 쌓을 때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모든 어두움을 몰아내고,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때다. 돌아보면 열심히 한다고 한 것들이 결국은 거대한 쓰레기로 쌓여 있는 게 한 둘이 아니다. 부끄럽고, 한심하고, 답답하고, 그럼에도 여기까지 참으시고, 기다려 주시고, 이끌어 주신 주님이 어찌 황송하고 황공하옵는지, 바싹 말라버린 내 영혼의 뜨락이 부끄럽고 초라하여 다시금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래도 나를 받아주실는지, 세상과 죄인인 내가 교묘하게 공모하여 자꾸만 어두움으로 회귀하려는 죄의 욕망을 생수의 강으로 씻어 생명의 빛으로 깨끗게 하사, ‘생명의 떡으로 영생하도록 은총을 부어주실는지, 결국 이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이라는 은혜의 선물로 내 영혼에 안착하기를 기대하게 된다. 내가 초라하고 볼품없는 게 드러나는 아픔보다 주님이 위대하시고 커 보이는 빛이 비추어짐이 아름답고 고마워 벌거벗은 영혼으로 다시금 주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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