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제자도③ - 약 속(마10.24-42)

20220321-22(묵상)

  

 

 

제자도- 약 속

Matt. 10.24-42

  

    본문 관찰

 

    두려워하지 말라(24-33)

    주께 합당하게 살라(34-39)

    축 복(40-42)

  

 

약속, 그리고 상()

 

예수님이 바알세불이라면 그럼 제자들은 누구인가?(25)

주님은 귀신의 우두머리인 사탄을 가리키는 바알세불’(집 주인이라는 뜻, 12.24)이라는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기까지 핍박을 받고 계신다. 그러니 그 집 사람들’(제자들)이야 오죽할까. 보석보다 더 귀한 복음을 맡았는데 이런 고난을 받아야 된다고 하시니 아찔하다. 그러나 주님은 두려워하지 말라!”(26,28,31)는 말씀을 통해서 이를 정면으로 돌파하라 하신다. 제자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

한편 이런 고난과 핍박의 바람이 가정에까지 휘몰아친다 해도 조금도 흔들리거나 염려하지 말 것을 말씀하신다(34-39). 이때 자기만 살려고 하는 자와 주님을 위해 죽음에라도 가는 자의 길이 갈린다. 오늘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지만 내일은 영광의 상()이 기다린다(40-42). 비록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이게 제자의 삶이다. 내일은 오늘의 나를 주께서 잊지 않으시는 날이다. 그날이 오기까지 제자의 길을 걸어가야겠다.

 

 

두려워하지 말라!(24-39)

 

    두려워하지 말라(26)

    두려워하지 말고(28a)

    두려워하라(28b)

    두려워하지 말라(31)

 

주님과 제자들을 마치 [마녀사냥]하듯 바알세불이라 몰아붙인다(24-25). 예수님을 귀신의 왕이라 하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게 세상이다. 세상이 주님에 대해서 우호적이기를 바라는 것은 넌센스일지도 모른다. 고통은 끝이 없다. 조그마한 오해에도 등을 돌리는 판에 제자로 산다는 것 하나 때문에 가중되는 고난, 말이 쉽지 이게 실전(實戰)이니 오죽할까.

그러니까 주님은 계속해서 두려워하지 말라!”(26,28,31) 하신다. 먼저 진리는 밝히 드러나는 법이기 때문이다(26-27). 세상이 아무리 진리를 덮으려 해도 소용없는 짓이다. 언젠가 주님께서 이 모든 일의 진실을 밝히실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제자는 진리를 당당하고 공개적으로 전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둘째로, 제자는 죽음까지도 불사하고서 담대하게 살아야 한다(28-31). 한 데나리온의 1/16 밖에 되지 않는 한 앗사리온이 참새 두 마리 값일 정도로 가치가 적은 미물(微物)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면 하물며 제자일까. 내가 제자로 살기만 하면 하나님은 나의 생명을 책임져 주신다. 그러므로 내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내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제자의 삶을 살고 있는가, 그렇지 않는가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제자는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며 살아야 한다(32-33). 세상이 아무리 나의 생명을 위협하고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서 핍박하더라도 바로 그 세상 앞에 공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그분의 제자됨을 고백하며 살라 하신다. 세상 앞에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밝히는 것은 내가 하늘의 백성이 되었음을 확증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살면 주님은 아버지 앞에서 나를 아신다 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내일은 해가 뜬다(40-42).

 

이 척박한 고난과 핍박과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현장에서도 생명의 꽃은 핀다. 세상에는 핍박하는 자들만 있는 게 아니고 주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역시 있다. 그들에게는 엄청난 축복이 주어질 것이다. 선지자가 받을 상과 의인이 받을 상을 주님을 영접하는 자 또한 함께 그 상을 받게 될 것이다. 또한 주의 제자라고 해서 물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에게도 상()이 기다릴 것이다. 주 안에서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사는 하늘나라가 참으로 멋지게 그려지고 있음을 본다.

이 말씀을 읽다가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제자들을 파송하는 때와 그리고 제자들의 앞날에 소용돌이칠 박해와 고난, 그런데 그 와중에도 주님을 영접하는 일이 있구나 라는 생각 말이다(40). 하나님의 섭리는 언제나 나의 상식과 판단을 뛰어 넘으시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난과 핍박만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을 먹고 또 다른 제자들이 태어나고, 그래서 그 와중에도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된다.

자신의 삶은 물론 가정도 무너지고, 급기야 생명까지 내어놓아야 하는 것이 세상을 무대로 살아가는 제자들의 삶이다. 그런데 그렇게 살았더니 하나님은 그 와중에서도 당신을 영접하는 천국 백성들을 얻게 되신다. 이게 기적이다. 나 한 사람 정말 말씀대로 살면 나 사는 것은 물론이고, 나를 통해서 또 다른 사람이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일이 일어난다. 정말 신나는 일이다.

 

 

부스러기 묵상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田土)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10.29-30)

 

63년의 옛 생활을 끝내고 주님을 구주로 시인한 일이 있었다.

말도 할 수 없고, 손은 수전증처럼 떨리기에 글을 쓸 수도 없고(써도 잘 알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듣는 것은 잘 하셨기에 복음을 전했고, 그분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리고 바람소리만 나는 입으로 이를 시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아내와 친구 앞에서 주님을 시인한 것이다. 눈엔 눈물이 고였고, 흔들리는 손으로 목사님 고맙습니다!”를 썼다. 이제는 죽어도 천국에서 눈을 뜰 것을 확신하느냐는 질문에 얼굴이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은 복음과 예수님을 거부하며 주님 없이, 주님과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주님을 핍박한 채 살아오다가 이제야 주님을 만났다. 결국 핍박과 환난 시대에도 생명을 걸고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지금 주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이것 아닐까. 제자는 안락의자에 앉아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사는 자가 아니다. 제자의 무대는 세상이며, 그 세상은 호시탐탐 나의 생명까지 노리고 있는 그런 현장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영광과 축복이 영원히 기다릴 것이라 말씀하신다. 그날을 맞이하고 살게 되기까지 내가 이 땅에서 지불해야 할 대가는 고난과 핍박과 환난이다.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래서 주께서 나에게 그런 삶을 요구하신다면 기꺼이 나를 이렇듯 산 제물로 주님께 드려야 한다(12.1).

일부러 고행(苦行)을 택할 필요까지는 없을지라도 내 가는 길목에 주께서 말씀하는 이런 제자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면 기꺼이 그 길을 걸어가자. 그것은 내가 주님의 제자인 것을 알게 되는 또 다른 통로이니까. 나를 이처럼 쓰시겠다면, 내가 10장처럼 사는 것을 통해 주님의 섭리가 이루어진다면 이왕이면 넉넉하게 감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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