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의 종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요 13.1-11).

20220215(묵상)

 

 

 

섬김의 종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Jn. 13.1-11

 

    본문 관찰

 

    때를 아셨다(1,3).

    제자들을 씻기셨다(4-10a).

    가룟 유다를 아셨다(2,10b-11).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다.

 

흔히 13-16장은 예수님의 [다락방 강화](고별설교)로 불리운다.

떠나가서 숨으시니라.”(12.36b)에서, 잡히시던 날 밤에 감람산으로 나가시니”(18.1), 그 사이에서 제자들과 더불어 나누신 말씀(13-16)과 하나님께 드린 대제사장적 기도(17)가 자리한다. 그 가운데 특히 오늘 1절은 13-17장의 길잡이가 되는 말씀이다. 주님은 섬기는 종으로서 모범을 보이신다.

   

 

1,3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를 아셨다(1a,3b).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1b).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을 맡기신 것을 아셨다(3a).

 

아셨다사랑하셨다의 흐름이 13장 이후의 그림의 스케치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날 때도 아시고, 임박한 고난과 죽음도 아시고, 이 섭리에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배반할 것도 아시고, 그 밖에 13장 이후에 진행될 이 세상과 사람들의 모든 언행(言行)을 다 아신 분이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신가. 그런데 이를 아시고 끝까지사랑하신다. 그렇게 갈보리 십자가 앞으로 당당하게 나아가신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사랑하시는데 자기 사람들’(1)이다. 그럼 이들은 누구인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자요, 예수님께 오는 자(6.37, 10.29). 그러니까 1-12장까지 전파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듣고, 주님을 알고, 주님을 믿은 거듭난 하늘의 사람을 가리킨다. 주님은 이들을 세상 끝 날까지 사랑으로 함께 하신다.

   

 

4-10a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4-5).

      -주께서 씻기지 아니하면 주님과 상관이 없다(8b).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10a).

    베드로는 주님이 하시는 것을 알지 못한다(6-7).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8a).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9).

 

사랑이 발을 씻는 섬김으로 이어진다. 베드로는 주님이 아니어도 생명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6-10a). 이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어떤 이유에서 건 자기의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한다고 고집을 부린다(8a). 그러나 주께서 씻기지 아니하면 주님과 상관이 없다(8b)는 점을 알아야만 한다. 이 부분에서 베드로는 극과 극을 달린다. 하지만 목욕한 자’(10a), 정확하게는 목욕시킴을 받은 자는 발만 씻으면 된다. 이미 예수님께서 모든 허물과 죄의 더러움을 다 씻어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already) 구원받았으나 아직(not yet) ‘의인된 죄인으로 살아가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3.10,23a)- 성도이기에 날마다 주님으로부터 죄씻음을 받아야 한다.

   

 

2,10b-11

 

    마귀가 벌써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었다(2).

    가룟 유다가 깨끗하지 않음을 아셨다(10b).

    자신을 팔 자가 가룟 유다임을 아셨다(11).

 

그래도 주님은 그와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누시며, 그의 발을 씻음으로서 섬기신다. 다 아시면서 말이다. ‘팔 자’(11)의 원어적 의미는 팔고 있는 자.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불신앙의 계보에 속했고(6.70-71, 12.4), 주와 함께 식사하고 있는 이 시간에도 사탄의 졸개로 살아가고 있고(2), 주님을 팔 기회를 찾고 이 일을 은밀하게 진행 중이다. 얼마나 가증스럽고 위선적이며 두 얼굴의 철면피인가. 이러고도 천연덕스럽게 식사 자리에 동석하고, 발을 내밀어 씻어주시는 주님 앞에 앉아 있다.

바로 그 유다를 주님은 아셨다(11). 그가 깨끗지 않음도 아셨다(10b). 그럼에도 주님은 그를 계속해서 상대하신다. 그는 분명 가라지다. 알곡처럼 주님으로부터 씻기심을 받았을지라도, 주님을 따르는 외적인 언행이 있을지라도, 오늘 식으로 말하면 교회에 등록을 하고 여러 종교적인 모임이나 순서에 참여했을지라도 그것 자체가 알곡이 되게 만들지는 못한다. 예수님과 동거동락(同居同樂)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구원이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엄중한 경고이기도 하다.

   

 

부스러기 묵상

 

주님은 언제나 오셔서 나와 교제해 주신다.

나를 다 아시면서도, 나의 죄도 아시고, 나의 못난 자아도 아시고, 나의 은밀한 죄의 파편들을 아시고, 나의 성품이나 기질도 아시고, 나의 구부러진 버릇이나 습관도 아심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변함 없이 사랑과 은혜 안에 품어주신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변덕꾸러기인가. 연약하고 못난 나를 다 아시는 분도 나를 실망시키시지 않으셨는데 영적으로 무지한 나는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얼마나 자주 자행자지(自行自止) 했던가. 잘해 주셔도 그걸 알지 못하고, 이해되지 않는다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왜 이걸 내게 주시느냐고, 왜 필요한 때에 응답하시지 않으시느냐고, 이걸 구했는데 저걸 주시느냐고, 주님이 징계하셔도 무감각하고, 주님이 축복하셔도 내가 잘 해서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문제다.

사랑 받을 만한 자격이나 조건이 없음을 아심에도 불구하고 사랑해 주시는 분이 내가 섬기고 역시 사랑하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다. 누가복음 22장의 베드로가 그랬다. 주님은 그가 당신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할 것을 아셨다(34). 그럼에도 그가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다(32a). 그리고 이런 말씀을 부연하신다: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32b) 다 아시면서도 사랑해 주시는 분, 난 지금 이 시간도 그분 앞에 서 있다.

항상 난 주님 앞에만 서면 초라하고, 부끄럽고, 황송하고, 더듬거리고, 연약하디 연약한, 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나를 발견한다. 그럼에도 나를 사랑하신단다. 나에게도 특별한 그 저녁’(3a)을 만들어주시고, 어김없이 내 발을 요구하시고 내 더럽고 추하고 못난 죄인의 발을 씻으시겠다고 나를 찾아오신다. 언제쯤 이 못난 초보를 벗어버릴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이건 하나의 희망사항으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 해 본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 앞에서 아무 것도 감출 수 없어 조용히 무릎을 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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