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 … 보리라’의 길목에서 부른 노래가 있다(요 12.44-50).

20220214(묵상)

 

 

 

장차 보리라의 길목에서 부른 노래가 있다.

Jn. 12.44-50

 

    본문 관찰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이 하신 일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천국복음 전파(1-12)

    제자훈련과 기도(13-17)

    십자가 구속 사역(18-21)

 

유월절 어린 양으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기 위한 구속사가 절정을 향하고 있다.

예루살렘 입성(12.12- )이 그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13-17장은 그들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36b)에서 암시되었듯이 제자들과 함께 지내신 기간으로 무대가 갑작스럽게 바뀐다. 이것은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18.1)의 어간에 되어진 일이다. 그렇다면 12장은, 그것도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의 복음전파의 긴 여정 가운데 주께서 하신 일련의 언행(言行)에 대한 조그마한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장차 보리라’(1.42,50-51)의 길목에서 강조하셨던 복음송을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44a)로 다시 부르신다.

   

 

44-45

 

    44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를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다.

    45 예수님을 보는 자는 그를 보내신 자를 보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늘로서 오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이시다. 예수님은 자기 스스로의 힘과 노력과 열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 사람이 하나님이 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의 모양을 입고, 친히 사람이 되셨다. 그분이 예수님이시다.

   

 

46-48

 

    46 예수님은 으로 세상에 오셨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신다.

    47 예수님이 오신 것은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시다.

    48 ‘어두움에 거하는 자의 마지막 날 심판은 예수님의 말씀에 의해서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다. 예수님은 죄악으로 어두운 세상에 참 빛으로 오셨다. 마침내 믿는 자를 장차 보리라의 빛의 나라로 부르셔서 더 이상 어두움에 거하지 않도록 구원하신다. 하지만 불신자의 계보에 선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말씀을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은 결과 때문에 그 말씀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심판은 있다. 지금 그 심판의 때가 점점 임박하고 있다. 아무도 이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세상은, 빛이 아닌 어두움에 거한 자들은 마지막 날에 예수님의 말씀이 저들을 심판하게 될 것이다.

   

 

49-50

 

    49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받은 바를 말씀하신다.

    50 예수님(아버지)의 말씀이 영생을 가져다준다.

 

이러한 예수님의 진리는 예수님이 스스로 만드신 독자적인 말씀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49b)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이 1-12장까지 하신 말씀들은 모두가 다 위로부터 온 말씀이다. 오직 이 진리의 말씀만이 믿는 자에게 영생을 선물로 준다. 주님은 철저하게 자신의 정체(identity)를 이처럼 하나님께 의지하신다 :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10.30)

   

 

부스러기 묵상

 

주님은 지금 이 진리의 말씀을 외치신다(44a).

여기 외쳐 이르시되에 사용된 단어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11.43)에 쓰인 단어와 동일하다. 주님은 나사로를 부를 때의 그 마음과 그 심정으로 복음(福音)을 외치신다. 끝까지 아버지 하나님을 높이신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이심을 분명히 하신다.

한편 요한이 살았던 1세기 초대교회 시대는 예수님이 대한 오해가 팽배하던 시기였다. 사람이다, 하나님이다, () 사람에 반() 신이다, 사람이 아니라 신이다, 신이 아니라 사람이다, 등등 무수한 사설(私設)이 난무한 때였다. 요한은 자신마저도 영적 무지 때문에 예수님을 오해하고 있었던 때가 있었음을 겸손하게 인정한다(2.22, 7.39, 10.12-13, 12.16). 그랬기에 요한 역시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이신가를 목놓아 노래하고 있다. 이 노래를 영원히 부를 노래요, 다시 부를 노래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31)

 

이 주님이 나를 믿는 자로, 당신을 보는 자로, 어두움이 아닌 빛으로, 구원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로, 영생을 얻은 자로 부르셨다. 할렐루야, 아멘이다! 주님이 먼저 부르셨던 노래를 우리 역시 계속해서 부를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이고 축복인지 모른다. 부를수록 더 귀한 주님이시다. 이제 이 주님의 노래가 우리의 노래가 되었다. 이 노래가 삶이셨던 주님처럼 우리 또한 생활복음의 향(8.3)으로 주님께 드리는 자 되기를 소망한다.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44a)로 이어지는 말씀을 생명을 걸고 노래하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심장의 고동이 멈추는 그 날까지 외치며 살아가야 한다. 돌들이 소리 지르는 모욕스러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이 복음의 노래를 온 세상을 향해 외치며 찬양하며, 주님께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딤전2.2)하는 이 일에도 최선을 다 할 생각이다. 요한이 이 주의 노래를 우리에게까지 전해 주었듯이 말이다.

그말씀(www.thesermon.org) 역시 또 다른 사람들에게 영원히 부를 주의 노래를 전파하는 하나의 도구가 되었으면 한다. 주님의 노래는 또 다른 영혼을 기다리고 있다(딤전2.2): 예수님 바울 디모데 충성된 사람 또 다른 사람 → ○○○ 바로 이 자리를 이어가는 사람으로 나를 부르시고, 나를 통해 또 다른 사람을 기다리시는 주님을 다시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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