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대로(눅 8.16-21)

20210123a(묵상)

  

 

 

믿음대로(Faith Line)

Luke. 8.16-21

  

    본문 관찰

 

    갈릴리(4.14-9.50) 평지설교(6.17-49)

       듣고 행하는 듣고 행지 아니하는(6.47-49)

       듣고 말씀만 하사 이만한 믿음은(7.3,7,9)

       들은 들을 들은(8.12,13,14)

       듣고 지키어(8.15)

          등불을 켜서 그 빛을 보게 하여 함이라(8.16-17)

          그러므로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8.18)

       듣고 행하는(8.21)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8.25)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8.48)

          믿기만 하라(8.50)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9.41)

   

 

갈릴리찬가

 

    “듣고 행하는 듣고 행지 아니하는”(6.47-49)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에 대한 반응의 극적 대조가 눈에 띈다.

놀라운 것은 이미 주님은 당신의 평지설교(6.17-49)를 마무리하는 부분에서 이것을 예고하셨다는 점이다. 한편 7-9장은 평지설교의 적용편이랄 수 있다. 따라서 이 설교를 듣고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리고 그 반응에 대해 주님은 어떤 응답을 하시는가? 이것이 적용편의 핵심이다. 여기에는 오늘 본문에서는 누구든지’(16a), ‘예수의 어머니와 그 동생들’(19a) 역시 그 어떤 사람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그럼 나는 이 둘 중 어떤 사람으로 복음에 반응하고 있는가?

   

 

그 빛을 보게 하라!(16-18)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1.9-10)

   

 

누가 내 가족인가?(19-21)

 

마태(12.46-50)와 마가(3.31-35)는 동일하게 예수님과 바알세불의 논쟁(12.22-37; 3.20-30)에 이어지는 이야기로 본문을 다루고 있다. 더 특별한 것은 세 복음서가 공히 바알세불 텍스트에 이어지는 것이 예수님의 가족에 대한 본문인 점인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 응답하시는 예수님의 대답이다.

 

    마태 - “누구든지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12.50)

    마가 -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3.35)

    누가 -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11.28)

 

그렇다면 지금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핵심이다. 다시 정리해 보자. 예수님의 가족에 대한 코멘트의 위치다. 전후문맥이 뭐냐면, 예수님의 기적 가운데 특별히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두고 바리새인들이 보인 반응인데 이들은 놀랍게도 예수님이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았다며 시비를 걸어왔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귀신과 한통속이라며 마치 마녀사냥하듯 예수님의 사역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더욱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친족들이 예수님을 가리켜서 그가 미쳤다!”(3.21)라고 공공연하게 외치는 대목과 바알세불 논쟁에 이어지는 단락에 -“그때에”(3.31)로 시작되고 있다.- 예수님의 가족 텍스트가 이어지고 있음이다. 그럼 무엇인가? 친족들은 미쳤다고 말하고,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능력을 힘입어 기적을 행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바로 그때에예수님의 모친과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다. 이런 흐름(바리새인들의 바알세불 논쟁 예수님의 가족 코멘트)은 누가복음도 예외는 아니다(11.14-26 11.27-28).

, 그럼 무엇인가? 왜 가족들이 이런 때에 예수님을 찾아왔는가? 그리고 그런 가족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답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것이 본문의 문맥 안에서 관찰하고 살펴야 할 묵상의 앵글이다. 이렇듯 본문의 위치는 한가롭게 가족여행 중에, 혹은 가족들 간의 불화가 있어서(유산상속, 장남으로서의 무책임, 오랫동안 보지 못한 그리움 혹은 섭섭함 등) 이루어진 만남이 아니다.

누가는 이미 평지설교(6:17-49)의 결론에 이르러서 듣고 행하는 듣고 행지 아니하는”(6.47-49)이라는 말씀에 대한 두 가지 반응을 정확하게 예고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7장 이후 내용에서 이를 그대로 드러내고 증거한다. 백부장은 듣고 말씀만 하사 이만한 믿음은”(7.3,7,9)이라는 응답으로 평지설교의 결론에 응답한다. 그리고 네 종류의 밭의 비유에서 들은 들을 들은”(8.12,13,14)이라는 부정적 반응과, “듣고 지키어”(8:15)로 긍정적 반응을 보인 마음밭의 결과를 정확하게 예증한다.

그런 다음에 이어지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인 예수님의 가족 코멘트다. 그렇다면 앞서 관찰한 대로 마가복음과 연결해서 볼 때 역시 지금 예수님을 찾아온 모친 마리아와 동생들은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21), 바로 이 믿음이 없었다. 지금 저들은 가장 중요한 복음의 내용은 없고, 단순히 혈통적인 사실에 의지하여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싸늘하다 못해 당황스러울 만큼 냉정하다.

예수님은 당신을 찾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단지 혈통적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오늘 식으로 하면 말씀을 듣기 위해 복음과 교회 앞에 나아왔다는 사실만으로 높은 점수를 주지 않으신다는 얘기다. 깊이 새겨야 할 부분이다. 그러니까 듣고 행하는 것으로 복음 앞에 나아오지 않으면 비록 그가 가족일지라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그분 앞에 나아와 앉아 있을지라도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결코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될 수 없다는 선언이다. 지금 살펴야하는 것은 이것이다 :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다!”(21)

이렇듯 복음서 안에는 결과적으로 놓고 볼 때 예상치 못한 의외의 결과가 상당히 많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의 비유(25.24-30), 양과 염소의 비유(25.31-46), 탕자의 비유(돌탕 vs. 집탕, 15.11-32), 예수님을 가리켜서 주여 주여 하는 자”(7:21) 등 많은 경우에 뜻밖의 결과 앞에 서게 된다. 무엇 때문인가? 다 예수님에 대한 오해에서다. 오늘 키워드로 하면 듣고 행하지 않는, 즉 믿음 없음 때문이다.

이것이 자기 방법, 자기 방식, 자기 식대로 살아가는 자들에게서 발견되는 모습들이다. 오늘 예수님의 혈통적 가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21) 믿음의 언행에 실패하였다. 그 결과 주님으로부터 싸늘한 정죄를 받게 될 뿐이었다. 하나님의 가족됨의 영광, 그것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받아든 아침이다. 지금 나의 언행을, 믿음의 여정을 돌아보면서 나는 과연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인가를 묵상해 보자.

 

 

부스러기 묵상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2-13)

 

믿음이 없으면 보일 수 있는 반응들이 흥미롭다.

친족들은 미쳤다!”고 하고, 가족들은 그 수준은 아니지만 어떻든 예수님을 만나러 온 것이 좀 여러모로 석연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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