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눅 15.1-10)

20210217(묵상)

  

 

 

잃은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Luke. 15.1-10

  

    본문 관찰

 

    도입(1-2)

    잃은 양의 비유(3-7)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8-10)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7a,10a)

 

잃었다! 찾았다! 기쁘다!

이 비유들에서 어떤 사람(여자)이 잃어버린 것은 일백 마리 중에 한 마리 양이고(3-7), 열 중에 한 드라크마다(8-10).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잃어버린 것이 다름 아닌 죄인 하나’(7a,10a)라는 주님의 말씀이다. 이것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기도 하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9.10) 1/100이나 1/10의 구색을 맞추기 위함이 아니다. 지금 주님의 가장 중심되고 일관된 관심은 바로 잃어버린 한 영혼이다. 이 주님의 마음으로 이 비유를 읽고 묵상해 본다.

   

 

잃은 양의 비유(3-7)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8-10)

 

                              → 기쁘다!

               → 찾았다!

    잃었다!

 

어떤 사람(여자)은 각각 자신이 양()과 드라크마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일상에서 관심이 어디에 집중되어 있는가를 짐작하게 되는 부분이다. 아마도 찾았을 때의 반응이 기쁘다인 것으로 봐 잃어버렸을 때 이들의 마음은 줄곧 슬프다였던 것 같다. 이처럼 기쁨과 슬픔의 경계는 잃어버린 양과 드라크마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히 재산상의 손실 때문이었을까. 아니었다. 잃은 양()과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가 절묘한 것은 이것이 각각 잃어버린 죄인을 다시 찾은, 즉 잃음과 찾음 사이에 회개라는 과정이 지불된 놀라운 변화를 놓치지 않고 있음 때문이다. 예수님은 지금 잃어버린 양()과 드라크마와 같은 인생들을 찾기 위해 이 세상에 친히 오셨다. 그분은 지금 당신의 잃어버린 자녀들을 찾고 찾는 분이시다.

그분은 찾을 때까지 이 일을 중단하지 않으신다(4b,8b). 따라서 이 비유가 시작되는 1-2절 역시 하나님의 나라 백성을 모으시는 거룩한 찾으심의 연속선인 셈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고, 잃은 자기 백성을 다시 찾으시기 위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2b)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니 저들이 하는 일이란 원망과 시비일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잃어버린 원인이 죄()라면 바로 그곳으로 가서 다시 찾아와야 하지 않겠는가. 물에 빠진 사람이 자기 머리를 자신의 손으로 들어 올린다고 해서 물에서 건져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죄인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 때문에 주님이 메시야로 이 땅에 오셨고, 잃어버린 당신의 백성들(양과 드라크마)을 찾기 위해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다. 그러자 모든 세리들과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1)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거룩한 찾음이 진행되고 있는 복음의 현장에 주님에 의해 찾아져야 할 자들이 이를 거부하고 있다(2). 이것이 같은 맥락의 비유가 연속으로 세 번이나 반복되어 가르쳐지는 결정적인 이유다. 감사하고 놀라운 것은 주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집단으로 보지 않으시고 각각의 영혼으로 보신 것이다. 나 한 사람에게까지 당신의 모든 관심과 애정을 집중해 주신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7)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10)

 

죄인을 찾아 길 떠나신 주님께서 나를 찾기까지 지불하신 대가를 생각해 본다. 내가 주님으로부터 그만큼의 은혜를 받을 만큼 귀한 존재라는 말인가. 아직 죄인(罪人)되었을 때인데도? 주님으로부터 잃어버린 자 되었는데도? 내 마음과 생각이 이끄는 방향대로 주님의 품을 떠났는데도? 때문에 나를 찾도록 찾아 다니신 주님이심이 얼마나 송구(황송)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감격스럽고 가슴 뛰는 일인지 모르겠다.

나를 찾으시자 기뻐하신다(6,9). 내가 스스로 주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찾아오셔서 나를 다시 당신의 소유된 백성으로 찾으신 것이다. 그러시면서 나보다 더 나를 인하여 기뻐하신다. 그리고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시고 잔치를 배설하신다. 이 잔치의 축사는 이렇다: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드라크마)을 찾았노라!”(6,9)

죄인이자 잃어버린 자였던 나까지도 당신의 양이요 드라크마라 하신다. 내가 의롭고 잘나고 쓸모가 있어서 나의 잃은이 아니다. 지지리도 못나고 어리석은, 그래서 주님의 품을 떠나버린 죄인임에도 주님은 나를 찾도록 찾아오시며, 나를 향해 너는 나의 양이라, 나의 드라크마라 인()쳐 주신다.

   

 

부스러기 묵상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이 생각난다(요한복음 10).

여전히 내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잃은 한 양(드라크마)을 찾아 길 떠나는 목자가 요구되는 시대임에는 틀림이 없다. 잃어버렸다는 것을 아는, 그래서 그를 찾아야 하는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시는, 그것도 찾도록 찾기까지 쉬지 않으시는, 내가 뭐 대단하다고 찾으시자 기뻐하시는, 그리고 잔치까지 배설하시는, 슬픔이 기쁨으로 전환되는 것이 다름 아닌 오직 잃었던 나를 다시 찾았음 때문인, 오직 그 이유 하나만으로 기뻐하시며 잔치를 여시는 주님을 생각해 본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것을 이처럼 위대한 사건으로 맞으시는 주님을 묵상하면서 자꾸만 눈물이 난다. 그가 내가 섬기는, 나를 맞아주시는 주님이란 말인가. 주님, 당신에게 내가 이처럼 귀중하고 소중한 존재인가요. 내가 한 일이라고는 당신의 품을 떠난, 그래서 당신으로 하여금 나를 찾도록 찾아 수고하게 한 일 밖에 없는데도, 내가 주님께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내가 나의 영혼을 위해 지불한 대가보다 -아니다, 내가 나의 구원을 위해 지불한 대가는 없다.- 죄인인 나를 위해 주님이 친히 지불하신 것이 이처럼 크고 크다는 것이 이제 내가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 자인가를 생각게 한다. 나를 다시 회복시켜 주신, 그래서 당신의 품에 안아 주신, 찾으시자 잃었을 때 지불한 것들 때문에 분노하거나 책망하지 않으시는 주님을 배워야겠다.

나를 이처럼 고귀하고 존귀한 한 영혼으로 대우해 주신 주님처럼 나 또한 잃어버린 양과 드라크마를 주님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이해하고, 찾고 찾으며, 그와 더불어 기뻐하며, 그와 함께 잔치하며 살고 싶다. 나를 위해 주님이 먼저 이러한 사랑을 주셨기에 나도 이 받은 사랑을 주의 영광을 위해 주의 백성들에게 나누며 살고자 한다.

두 비유 안에 동일하게 주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잃어버린 죄인에게 모든 것을 집중하시는, 그렇지만 그 마음 중심은 한결같이 잃은 자기 백성들을 향해 슬퍼하며(잃었을 때), 찾았을 때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어디 하나 분노하고, 책망하고, 꾸짖고, 벌주시는 이미지(image)는 발견되지 않는다. 나와 주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간격은 바로 이 부분이다. 오늘도 나를 찾도록 찾아 임하실 주님을 기대하며, 그분 앞에 무릎 꿇고 두 손을 든다: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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