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동안의 고독(눅 13.10-17)

20210212(묵상)

  

 

 

18년 동안의 고독

Luke. 13.10-17

  

    본문 관찰

 

    안식일에 가르치실 때에

    18년 동안이나 귀신들려 한 여자가 있더라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회당장이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18년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기뻐하니라

   

 

안식일 논쟁(2)

 

여러 종류의 사람이 나온다.

안식일에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주님 앞으로 나아온 무리들, 그 가운데 특별히 무려 18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귀신들려 병이 든 여인, 회당장, 그리고 이 기적을 목도한 무리들 가운데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주의 행하신 일을 보고 기뻐하는 무리들이 각각 등장한다. 나는 지금 이 사람들 가운데 누구인가. 그렇다면 주님으로부터 어떤 말씀을 들어야 할 사람인가. 쉬운 본문이 갑자기 어려워졌다.

   

 

18년 된 병자, 안식일을 누리다.

 

여인은 지금 병든 몸을 이끌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18년이나 귀신에 붙들려 허리가 굽은 채 지내는 중이었다(10-11). 그런 모습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나아왔고, 주님은 이 여인을 보셨다(12a). 누가(Luke) 역시 이 여인을 본 모양이다(10b). 하지만 해답(은혜)은 오직 주님께로부터 왔다. 주님은 당신의 말씀을 듣고 있으나 아직 여전히 사탄의 지배 아래 허우적거리는 여인을 보셨다.

주의 말씀’(, 복음)과 귀신의 지배 사이에 끼어있는 자, 그것도 18년이나 이런 영육(靈肉)의 형편 가운데 있었으나 아무도 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 물론 치유된 여인을 비난하고 있는 회당장(14), 주님을 반대하는 자들(17a), 그리고 누구보다 당사자인 여인 자신도 이 문제를 풀 수 없었다. 무려 18년이다.

사탄의 지배 아래 있으면서도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말씀 앞에 나아와 주님을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이 참으로 특별하다. 여인은 귀신에 들린 증상이 허리가 굽은 질병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귀신의 지배 아래 있는 자들의 모습은 매우 다양하다. 나는 어떤가. 과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처럼 그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아오는가.

여인은 18년의 모습을 주님 앞에 있는 그대로 내어놓고, 그 문제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치거나 아뢰기 이전에 조용히 말씀 앞에 엎드려 있다. 병이 든 채 주님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지금 모습 그대로를 주님께 보여드리고 싶다. 지난 18년의 사역을 그대로 주님께, 동시에 주의 말씀이라는 그릇에 담아 주님께 드리고 싶다. 온전한 사람으로 사는 것을 방해하는, 무엇보다 아직도 나를 죄와 사망의 법 아래로 끌어 내리려는 거짓 영()의 지배로부터 온전히 회복되는 기회의 시간이기를 기도한다.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12)

 

, 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福音)인가. 여인은 안식일에 주님 앞에 나아와 그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말씀을 듣고 있었다. 여인이 한 일은 여기까지다. 자신의 병든 현실을 비관하고 자학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주님 앞으로 나아온 것이다. 주님은 말씀과 사탄의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아니 지난 세월이야 그랬다 하더라도 지금복음의 가르침 앞에, 더더욱 주님 앞에 서 있음에도 이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어야 하는 것, 주님은 이를 결코 용납하실 수 없었다. 비록 안식일이라는 흔들 수 없는 종교적 전통이라는 장벽이 시퍼렇게 살아있을지라도 말이다.

주님은 복음의 복음됨을 가로막는 그 어떤 세력도, 제도도, 사람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 놀라운 것은 복음의 능력 앞에 18년의 문제가 하루 아침에 물러가 버렸다. 지금도 주님은 이처럼 일하신다. 사탄도 주님의 능력 앞에서는 무력하였으며, 회당장이나 주님의 일하심을 반대하는 자들이 결코 보지도, 생각지도, 행할 수도 없었던 복음의 영광스러움을 찬란하게 밝히신다. 이 일은 ’(즉시, 13) 이루어졌다. 주는 말씀하시고, 여인은 이 말씀의 성취를 맛본다. 이런 은혜가 내게도 흘러오기를 .

   

 

아웃사이더(outsider)

 

모두가 다 안식일에(시간), 회당에서(장소) 주님의 말씀을(메시지) 듣고 있다. 주님과 여인의 일대일 만남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 여인만이 안식일을 누리게 되는 주님의 은혜를 입는다. 그리고 회당장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말씀을 들었으나 오히려 말씀의 반대편에 선다(14,17a). 주님의 말씀이 이처럼 들릴 수 있다는 점,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다.

회당장, 좀 생각해 본다(14). 그는 말씀과 기적을 듣고 보았음에도 분내어모였던 사람들에게 분풀이를 한다: “안식일에는 병을 고치지 마시오!”(현대인의성경) 주님과 사람들을 갈라놓으려는 사람, 예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 자를 가로막는 사람이 회당장이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들이 회당을 통해서 만나는 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인데 어찌된 일이 자신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일을 거역한다.

놀라운 것은 자신은 물론 주님 앞에 나아오려는 자들까지를 딴지 걸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사람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 여인은 마침내 18년 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13)로 반응하고 있는데, 동일한 시간과 장소와 사건을 보고 회당장은 분내어한다.

은혜의 불을 끄는 소방수로 사는 것을 자임하는 우리 시대의 자칭 회당장들은 누구일까. 자기 의()라는 기준을 앞세워 주님의 말씀까지도 무시해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만드사 지키도록 하셨지만 안식일다운 삶의 기준은 사람(회당장)이 이러쿵저러쿵 쓸데없는 소리로 말씀 듣는 사람들을 혼돈스럽게 하는, 그리하여 실제로 주의 가르침을 받는 무리들 가운데서 주의 말씀을 반대하는 자들이 나오고 있음이 마음 아프다.

   

 

부스러기 묵상

 

18년이나 묵은 것, 18년짜리의 문제였다.

이 장구한 시간들을 사탄의 지배 아래 놓여있었던 여인의 모습이 자꾸만 어른거린다. 그런데 이게 ’(즉시) 해결되어 버렸다(13). 말씀 앞에, 그러니까 예수님 앞으로 나아왔기에 맛본 은혜요 기적이 아닌가. 지난 절망의 세월 동안 여인이 흘려야 했을 눈물과 아픔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귀신의 지배 아래 살아야 했던 지난 세월이었다. 그럼에도 그 모습 그대로 주님 앞으로 나아왔고, 하늘의 복된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질병과 싸워야 했고, 사탄과 영적으로 싸워야 했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무수한 시선들과,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싸워야 했다.

주님은 오늘도 일하신다. 이 여인처럼 자신의 내면세계와 육체의 질병이라는 인간의 고통과 신음소리에 눌려 있는 인생들을 위해 지금 이 시간에도 일하신다. 주님은 비록 당시의 시대가 안식일의 주인인 당신과 상관없이 죽은 의식들의 잔치로 전락했다 할지라도 안식일의 본질을 회복하고, 그리하여 진정한 안식에로의 부르심을 위해 말씀으로 안식일을 새롭게 하신다.

주님이 한 여인에게 이처럼 안식일을 다시 돌려주었듯이 나 역시 주의 이름을 힘입어 주의 날의 회복을 내 안에서 먼저 이루고 싶고, 그리하여 이것이 흐르고 흘러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히 내가 섬기는 교회 안에 가득 넘치는 향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게 된다. 한편 여기에는 회당장이라고 하는 거대한 힘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또한 이 악이 모든 반대하는 자들로 자라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어찌할까.

주님이 이미 회복해 놓으신 진정한 참 안식을 회복해야 할 소명을 생각하는 묵상이다. 어찌 사람이 소나 나귀에 비교될 수 있으랴(15). 그럼에도 예나 지금이나 주님의 탄식처럼 짐승들을 위한 안식일은 있어도, 사탄에게 매인 사람을 회복시키는 사람을 위한 안식일은 없다. 정말 누구를 위한 안식일인지 세삼 돌아본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2.27-28)

한편 적대자들과는 다른 편에서 예수께서 그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17b)한 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주의 말씀을 듣고, 그 중에 한 여인에게 일어난 치유(기적)를 보고 주님과 눈높이를 맞춘 사람들이다. 한 여인에게 이루어진 말씀의 실재를 경험한 후라는 점이 눈에 띈다. 물론 주님이 이루신 일이지만 한 여인은 온 무리’(17b)를 이처럼 영적으로 깨어나게 한다. 이처럼 긍정적 그룹을 만들어내는 일에 쓰이는 여인이 아름다워 보인다.

결코 풀리지 않았던 18년 묵은 어두운 짐이 내려졌다. 얼마나 자유하고 행복했을까. 이때의 여인의 모습은 누가는 이렇게 소개해 준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13) 비로소 어둠의 긴 터널을 빠져나온 여인의 모습, 주님이 이루신 일을 겸손하게 인정(인식)하고 고백하는 여인의 모습, 이렇듯 내게도 여인에게처럼 주의 말씀이 필요하다: “충만아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1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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