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눅 12.35-48)

20210209(묵상)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Luke. 12.35-48

  

    본문 분석

 

    A 재림에 대한 말씀1(35-39)

        B 베드로의 질문(40)

    A' 재림에 대한 말씀에 대한 말씀2(41-48)

 

           45 만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46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종에게도 복이 있을까?

 

종에게 복이 있다면 어떤 복일까?

종으로서의 신분(자리)을 마침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것이 복일 수 있는가? 그 복은 영원한 것인가? 아니면 다시 그 복을 위해 노력(헌신, 충성, 봉사, )을 해야 다시 보충되는 하나의 당근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우선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많은 복을 받아도 종이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복이란 하나님이 주인이시요, 우리는 그의 종이라는 철저한 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이 말은 자신의 됨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 다시 말하면 종으로서의 자기 고백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실 수도 없다. 스스로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종이라 믿고 살아가는 자만이 종으로서의 행복을 맛보며,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다.

종은 복을 주는자가 아니라, 주인으로부터 복을 받는자이다. 종은 복을 만드는 자가 아니다. ‘은 언제나 주인의 몫(소유)이며, 그것이 종에게 수여되는 한에 있어서만 종의 것이 된다. 종이 아무리 복을 많이 받아도 그가 주인의 자리에 등극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망각하는 순간, 바로 거기서부터 종의 불행은 시작된다. 많은 경우 우리의 불행은 늘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따라서 종으로서의 자기 정체(고백, 인식)에서 출발하여 주인의 권위와 주인됨을 인정하고 섬기는 것이 종의 가장 큰 보람이요, 기쁨인 것을 아는 것이 종이 가져야 하는 신앙이다. 종의 신앙을 회복하자!

   

 

1. 주인과 종은 각각 누구인가?

 

주인은 재림하실 예수님을 가리키고, 종은 하나님의 나라의 일에 참여한() 우리 성도들을 가리킨다. 주인은 주인의 것을 맡아 관리할 청지기를 찾으신다(42). 주인은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주인의 마음에 합한 종에게 복을 주어 자신의 모든 소유를 맡기는 분이다(43-44). 또한 생각지 않은 날에 오는 분이다(46). 뿐만 아니라 종이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하여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한 종을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는 분이다(45-46). 이처럼 주인의 뜻을 행치 아니한 종을 맡긴 차등에 따라 각각 벌과, 상을 내리시는 분이다(47-48).

그럼 종은 누구인가? 오직 주인을 섬기는 자다. 그는 주인이 찾는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다(42). 또한 주인의 집의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다(42). 뿐만 아니라 주인의 올 때를 자기 마음대로 더디 오리라생각하지 않는 자다(45). 이렇듯 주인의 뜻을 알고 예비하는 종이다(47).

그렇다면 종이 받는 복은 어떤 복인가?: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44) 복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복은 가시적이지만, 그 시작은 불가시적이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저 볼 수 있는 것만을 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이 현상적으로 없을 때 -없어 보일 때- 종으로서의 삶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봄의 사과나무에 달린 조그맣고 파란 사과는 분명 사과다. 이게 아니라고 다 따 버리거나, 뽑아 버리면 가을의 기쁨은 없는 것이다. 복이 이와 같다. 한 알의 밀알처럼 시작되는 것이 복이다. 처음부터 10달란트가 아니고, 5달란트로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 주인이 이를 때와 종의 맞을 때는 단절되어 있지 않고 연속적이다.

 

주인이 오기 전까지의 행한 일들이 주인이 온 이후의 모습을 결정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살펴 보면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된다. 주님은 이 시대를 정확하게 통찰하셨다(14.15-24).

먼저 노아와 그 시대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17.26-27). 방주가 어느 날 하루 만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20년이나 걸렸다(6.3). 노아와 당시 사람들의 판이한 결과를 보라. 또한 요셉의 일생을 묵상해 보자. 국무총리가 되기 전까지의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삶의 율동과 전혀 무관하게 총리 이후의 영광이 주어지지 않았다(45.4-8).

시간이 계속 진행되어가는 연속선의 어떤 지점에서 주인이 오신다면 -그 싯점은 내가 선택하거나,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바로 그 오심으로 구분되는 주인의 오심 이전과 이후의 교차 지점은 언제나 오늘일 수 밖에 없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이미 지나가 버린 10년 전의 나의 모습은 오늘 주인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나에 대한 주인의 선고를 변경시키거나,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과거의 화려한 신앙 이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현재, 오늘)이 문제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대망하며 살아가는 성도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에서 내일이란 없다. 오직 오늘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얼마나 내일이 있다는 것 때문에 오늘을 바르게, 깨끗하게, 성실하게, 책임있게, 기쁨으로, 만족하며, 누리며, 최선을 다하며 살지 못하게 되는가? 그러므로 오늘을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자만이, 그 오늘과 연속되는 또 다른 오늘을 -이는 주인의 옴 이후이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다. 때문에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6.33-34).

현세와 내세는 연속적이다. 그러나 종의 정체(identity, 모습)를 갈라놓은 분기(전환)점은 주인의 옴이다. 이것은 종의 손(능력, 영역)에 있지 않다. 그 주도권은 언제나 주인의 몫이다. 따라서 종은 예비(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지금은 준비하고 있어야 할 때이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뿌릴 때는 가을의 수확을 기대하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종종 비바람이 불고, 홍수가 나고, 가뭄이 밀려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무서워서 씨앗을 뿌리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농부는 없다.

각각 다른 모습으로 주인의 옴을 맞이 한다. 모두가 다 칭찬받는 종으로,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자로 주인 앞에 서는 것은 아니다. 종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주인 앞에 기쁨으로 설 수 있는 조건을 이미 구비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비록 주인의 옴을 맞이 할 -맞이 할 수 있는, 맞이하는- 자로 서 있는 은혜를 입은 종이라 할지라도, 그러나 그것은 종의 궁극적인 모습의 결론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부스러기 묵상

 

주인의 옴을 행복하게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복 있는 종인가.

아니면, 보아하니 오늘의 종으로서의 모습을 볼 때 점점 더 불행한 종의 반열에 서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종인가. 주님(주인)이 인정하시는 복 있는 종으로 준비하라! 주인의 옴을 통해 어떤 모습으로 그 앞에 설 것인가는 지금나의 모습이 그때를 결정한다. 따라서 나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중요한 묵상이 아닐 수 없다.

주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따라서 항상 깨어서 주인의 오심을 예비하는 충성스런 청지기()처럼 주인이신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려야 한다. 문제는 주님이 생각하지 못한 때에 오신다고 하신다. 따라서 주인이 언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주인의 오심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오히려 주인이 맡긴 청지기’(42)로서의 소명을 망각하고 자기 이득을 취하는 것으로 불충한다면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45-46).

주인의 명령과 이를 통해 맡은 종으로서의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종이 주인과 상관없는 뜻을 품고, 주인의 말씀을 벗어난 행동을 일삼는 종은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46a) 그를 심판하실 것이다. 다시 오실 주님의 때가 가까이 왔다. 그날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 때다. 주님 다시 오실 그때까지 통하지 않는 잔머리(꼼수, 편법) 동원하지 말고, 종이자 청지기로서의 맡은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것이 재림을 영광스럽게 맞을 수 있는 길이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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