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대로.弟子大路(눅 12.1-12)

20210207(묵상)

  

 

 

제자대로(弟子大路)

Luke. 12.1-12

  

    본문 관찰

 

    제자들

       말한 것이 전파되리라(3)

       내 친구(4)

       그를(하나님을) 두려워하라(5)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7)

       사람이 끌고 가거든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11)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가르치시리라(12)

    바리새인들

       외식(1)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4)

       나를 부인하는 자(9)

       성령을 모독하는 자(10b) -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제자도, 그 비상(飛上)의 날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1b)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4a)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1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22a)

 

제자는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가?

화 있을진저’(11.42,43,44)의 대상인 바리새인들과 비교해서 근본적으로 다르게 부름 받은 주님의 제자는 무엇으로 사는가(1). 우선 바래새인들과 달라야 한다.

   

 

제자들: 두려워하지 말라!

 

제자는 그 자신이 드러날 뿐만 아니라 그가 말한 모든 것이 밝히 전파될 것이다(2-3). 주님은 이를 두려워하지 말라!”(4,7) 하신다. 세상이 아무리 진리를 덮으려 해도 소용없는 짓이다. 언젠가 주님께서 이 모든 일의 진실을 밝히실 날이 올 것이다. 진짜 두려워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다(5). 무릇 진리를 두려워하는 자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둘째로, 제자는 죽음까지도 불사하고서 담대하게 살아야 한다(4-7). 내가 제자로 살기만 하면 하나님은 나의 생명을 책임져 주신다. 그러므로 내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제자의 삶을 살고 있는가, 그렇지 않는가이다. 하나님만을 믿으며 소망을 삼는 자의 영광이요 특권이다.

셋째로, 제자는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며 살아야 한다(8-9). 세상이 아무리 나의 생명을 위협하고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서 핍박하더라도 바로 그 세상 앞에 공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그분의 제자됨을 고백하며 살라 하신다. 세상 앞에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밝히는 것은 내가 하늘의 백성이 되었음을 확증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살면 주님은 아버지 앞에서 나를 아신다 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제자는 위에 언급된 삶을 사는 것 때문에 급기야 끌고 가거든이라는 고난을 당하게 된다(11). 어찌 보면 결국 이게 복음을 전파하는 자가 서게 될 지점이다. 어찌할까.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는 자리로 끌려가도 당당하게 하늘 향해 두 손 들고 찬송하고 죽어갔다. 주를 모시고 사는 자의 범접할 수 없는 영역 아니겠는가. 비록 고난과 핍박 때문에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어 눈을 감지만 다시 눈을 뜰 때는 천국에서 주님 품이라는 것을 믿고 확신하고 알고 있어서다.

   

 

바리새인들: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감추인(숨긴) 것이 드러나(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2)는 예수님의 말씀은 바리새인들을 향한 정죄함에 해당하는 저들의 사악한 이중적인 언행(言行)화 있을진저’(11.42,43,44)라는 선언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암시한다. 동시에 바리새인들의 이러한 태클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의 복음 전파(3,8-9) 역시 광명하게 전파되는 것이 드러나게 될 수 밖에 없음이 주님에 의해 제자들에게 선포된다. 이런 면에서 바리새인들이 막는다고 해서 제자들에게 맡겨진 복음이 감추어질 수 없음이 흥미롭다. 복음의 주인이 우리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이 분명한 메시지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4a)인 바리새인들의 언행을 두려워하지 말라!”(4b) 하신다. 제자들이 하찮은 참새보다 귀하다면 결국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해서 참새보다 못한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 아닌가(6-7). 참으로 놀라운 예수님의 비유라 아니할 수 없다.

   

 

부스러기 묵상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 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6b)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7b)

 

참새 하나도 잊어버리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러니까 하물며 제자들일까. 놀랍다. 해서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다. 진실로 할렐루야다. 결국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은 자가 바로 제자들(8),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이 아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제자들이다. 좀 더 차원 높은 영적 시야를 가지고 보면 바리새인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저들은 혹시 몸을 죽이고까지는 할 수 있을지 모른다(4). 하지만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5). 이것을 믿고, 알고, 확신하고, 깨닫고, 그래서 주의 복음을 전파하는 자는 하나님이 보호하시며 궁극적으로 승리케 하신다. 제자는 그만큼 하나님이 잊으시지 않으시고 귀하게 여기시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읽고, 생각하고, 묵상할수록 이미 승리한 싸움인 것을 알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이중적일 수 없다. 속으로는 불신앙인데 겉으로는 신앙으로 사는 척 할 수 없다. 반대로 속으로는 주님을 믿고 십자가를 지고 겉으로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자처럼 살 수는 없다. 이것은 위선이다. 또한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인간 자기 중심이다. 이는 잠시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세상과 의식주에 속한 것을 위선적으로 지키려다가 자칫 영원한 하늘의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나를 아는 자들 중에 내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모르는 자들이 많을수록 그럴 위험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빛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내 안에 참 빛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이 들어왔다면 빛에 속한 자의 삶은 주변을 밝히고 비출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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