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기뻐하십니까?(눅 10.17-24)

20210201(묵상)

   

 

 

무엇으로 기뻐하십니까?

Luke. 10.17-24

  

    구조 분석

 

    1. 보고 기쁨(17)

    2. 평가 나눔(18-20)

    3. 설교 기쁨(21-24)

   

 

70인 전도대

 

 

예수님은 12 제자들과는 달리 친히 70을 세우사 전도하게 하신 후에 이에 대한 그들의 보고와 나눔, 그리고 이를 종합하시는 설교를 하신다. 주님은 파송한 70이 전도하는 것을 보고계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체험을 좀 더 살아 있는 사건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말씀(설교)으로 격려하신다.

 

 

1. 파송되었던 70의 반응, 즉 그들의 보고(17)

 

그들은 예수님의 파송 설교를 듣고, 그 말씀에 그대로 순종한다(1-16 17). 역사는 여기서부터 이루어진다. 시작과 끝이 동일한 70이다. 단 한 사람도 낙오자가 없었다. 10장에 이르러서 제자들은 여기까지 성장(성숙)했다. 무엇보다도 이제 그들은 받은 은혜를 유지할 줄도 알았다. 받은 은혜를 재생산할 줄도 알았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와같은 <영적 건강도>를 계속해서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1] 준비 없는 파송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준비하라. 비전은 준비하는 자의 몫이다. 그냥 밤나무 아래에서 입만 벌리고 누워 있다고 해서 밤이 입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설령 떨어진다 해도 코가 깨지거나,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거나, 밤송이 채 떨어져서 얼굴이 벌집이 되고 말 것이다.

[2] 말씀(훈련, 양육)으로 무장한 파송이었기 때문이다. “주께서 달리 70을 세우사 보내시며”(1) 그들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나라의 말씀으로 설교하셨다(2-16). 말씀은 그들의 영혼을 사로잡았고, 그들을 변화시켰다. 그들은 주님의 전도설교를 듣고(1-16), 그리고 나서 듣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현장에 나아가 전도한다. 이처럼 말씀은 언제나 영혼을 향한 열망으로 나아가게 한다.

[3] 우리 주님이 친히 파송하셨기 때문이다. 70은 오직 주님의 부르심과 말씀을 따라 복음을 전하고 돌아 왔다. 그러므로 비록 선교 단체나, 목회자, 교회가 전도를 요구(요청, 부탁, 명령)했을지라도 근본적으로는 우리 주님께서 분부하신 사명(28:18-20)이라는 데 우리들의 믿음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4] 주께서 말씀으로, 성령으로, 능력으로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전도는 내가 직접 몸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만, -물론 실제로 그렇다- 그러나 주님께서 먼저 시작하신다. 주님은 먼저 말씀으로 70과 함께 하셨다(1-16).

 

그들은 전도를 마치고 기쁨으로 돌아왔다. 진정한 기쁨은 늘 주님(하늘, )으로부터 주어진다. 기쁨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세상이 주는 것과 구분되는 진정한 영적 재생산의 기쁨이다.

전도 이후의 변화된, 또한 확신하는 그들의 고백을 보라! 사실 누가는 바로 앞 9장의 변화산에서 우리 주님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29) 되실 때에 그 사건을 영광스럽게도 목격한 제자들(베드로, 요한, 야고보)의 반응,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33)라는 식의 나약한 고백을 그대로 증언했다. 보다 더 결정적인 증언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첫번째 수난 예고(22)를 하신 그 이후라는데 두고두고 제자들의 낯뜨거움이 있다. 그러나 전도를 하고는 변화산과 다르게 반응을 보인다. 무엇보다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라는 70의 전도 보고(증언, 간증)는 다음 3가지 면에서 깊은 영적 진리가 숨 쉬고 있다.

 

[1] 주의 이름으로 - 바로 앞에서 살펴본 대로 변화산에 함께 동행하지 못한 제자들에게는 어쩌면 창피한(?) 하나의 사건이 누가복음 9장에 기록되어 있다. 누가는 귀신 들린 소년의 아버지의 입을 빌려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못하더이다”(40)라고 증언한다. 그때 주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41)라고 책망하신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그들에게는 믿음이 없었다. 그런데 왠 일인가? 이제 709장에서 그들을 여지없이 실패하게 했던 원인을 진단하고서 이제는 주의 이름으로승리의 깃발을 전도 현장에 꽂았다.

[2] 귀신들도 항복하더이다 -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그들의 전도여행은 주님이 말씀하신 먹고 마시는 따위의 전도자로서의 삯을 얻는 것(7-8) 그 이상이었다. 이제 그들은 전도야말로 <영적 전투>라는 사실을 통찰한다(6.12-13 참조). 당신은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언제나 승리하는가?

[3] 우리에게 - 제자들은 이제 확실하게 알았고, 또 보았다. 그들은 내 이름으로 귀신들이 예수님께 항복하더이다라고 고백하지 않았음을 주목해야 한다. 무엇이라 고백하고 있는가? 우리가 오직 예수 이름으로나아갈 때 세상은 우리에게 꼼짝하지 못한다.

   

 

2. 전도자 70을 파송하셨던 예수님의 평가(18-20)

 

주님은 70의 보고를 들으시면서 그들과 친히 교제하시며 더 깊은 영적인 나눔(사귐)으로 그들의 사역을 풍성케 하신다.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18) 주님은 제자들만 전도하게 하시고 낮잠이나 즐기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제자들도 귀신의 항복을 목도(체험)했고, 주님도 사단의 패배를 보셨다. 주님은 오늘도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친히 보고 계신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한다. 주님은 이것이 <영적 전투>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보셨다.

전도는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이다. 그렇다면 그것만큼 사탄의 나라는 축소된다. 사탄은 이미창세기 3:15절에서 분명한 패배를 선고받았고,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완전히 결박되어 무저갱으로 들어갈 것이다.

   

 

3. 전도자들의 보고를 들은 이후 드디어 예수님의 설교가 시작(21-24)

 

여기서 보다 중요한 것은 70은 예수님께서 기쁨으로 설교하시도록 했다는 점이다. 설교는 이미 그들의 순종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전도를 통해서 꽃 피웠다. 이제 주님은 드디어 그들과 말씀으로 촛점을 맞추시더니, 급기야 더 깊은 말씀으로 서서히 그들을 이끄시기 시작하신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회중인 70의 기쁨과 설교자이신 예수님의 기쁨이 서로 중첩되면서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70파송의 의도와 목적이 드러난다.

주님은 바로 이때에 성령으로 기뻐하사”(21) 설교를 시작하신다. 여기서 이때70의 전도 보고를 들으시고서 그들의 전도를 평가하신 이후이다. 설교의 때는 바로 이때임을 주목하자! 그렇다면 당신은 주님이 기쁨으로 설교(역사)하시도록 하는 자로 살아가고 있는가?

아버지여!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A)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B)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21)

*어린아이 제자들(23)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 선지자와 임금(24)

*아버지의 뜻이다. 전도하는 것은 곧 영적 어린아이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것이다.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23) 아무나 보는것이 아니다.

 

 

부스러기 묵상

 

예수님과 제자들이 전도를 중심에 놓고 서로 기뻐하고 있는 아름다움 모습이 좋아 보인다. 주님과 70사이에는 전도가 연결 고리가 되어 서로 기쁨과, 동시에 풍성한 말씀으로 교제가 이루어졌다. 당신은 주님을 뵈올 때 기뻐할 것이 준비되어 있는가? 주님이 당신을 찾아오실 때 기뻐하실 모습인가? 당신은 무엇으로 기뻐하는가?

당신의 영적 컨디션은 다음 둘 중 어느 쪽인가? 나의 영적 기상도를 돌아보며 묵상과 기도의 무릎을 꿇는다.

첫째, “가끔 곳에 따라 흐리고 강한 비바람을 동반한 슬픔 기압골의 영향을 받겠으며, 해상에는 높은 슬픔의 파도가 일겠습니다. 금주는 계속해서 이러한 날씨가 예상되오니, 이점 생활에 각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기쁨 기압골의 영향을 받아 점점 맑아지고, 한 차례 구름이 끼다가 차차 기뻐지겠습니다. 기쁨 온도는 평온을 되찾겠으며, 동쪽 슬픔 저기압이 빠르게 물러가고 기쁜 날이 계속되겠습니다. 상쾌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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