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지설교3: 하나님의 나라를 듣고 행하라!(눅 6.39-49)

20210118(묵상)

  

 

 

하나님의 나라를 듣고 행하라!

Luke. 6.39-49

  

    네 가지 비유

 

    맹인(39-40)

    티와 들보(41-42)

    나무와 열매(43-45)

    집 짓는 사람(46-49)

   

 

평지설교(3)

 

    [평지설교](6.17-49):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화 있을진저(24-26)

      ‘세상방정식(27-34)

             원수  →   보복

         미워하면 - 미워하다.

         저주하면 - 저주하다.

         모욕하면 - 모욕하다.

         뺨을 치면 - 때려 치다.

         빼앗으면 - 더 빼앗는다.

 

하나님의 나라가 비유에 담긴다.

하나님을 나라를 보는 자인가, 맹인처럼 사는 자인가. 평지설교를 통해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는 자인가. 듣고 행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를 맺는 자인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그리고 그 나라를 따라 사는 자들은 그 나라의 법대로 행함으로써 그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눈에 들보를 가진 맹인 지도자(39-42): !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자인가. 맹인이 맹인을 인도한다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수 밖에 없듯이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는 자는 맹인과 같다 하신다. 그렇다면 주님은 지금 평지설교를 듣는 청중 가운데 맹인 같은 자들이 있다 말씀하신다. 그게 누구인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다.

이들의 또 다른 분명한 특징은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데 있다(41). 결국 복음을 통해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들보도 깨닫지 못하고, 그럼에도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의 마음에 있는 티를 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42b)

   

 

듣고 행하는 자 = 좋은 열매 맺는 좋은 나무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 = 못된 열매 맺는 못된 나무

 

결국 차이는 하나다. ‘행하는’(47)행하지 아니하는’(49)이다. 결과적으로 먼저, 선한 사람은 들은 바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행하는 자다(45a). 이것은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에 비유된다(48a). 때문에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48b) 않는다. 그러니까 앞서 주께서 말씀하신 소위 세상 방정식’(27-34)이라는 큰 물과 탁류가 밀려와도 마음에 쌓은 선을 행하는 것이 중심을 잡고 이를 의지해 이긴다.

어려움이 없어서도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을 하나님께서 다 지키시고 도와주셔서도 아니다. 동일한 큰 물이라는 탁류가 휘몰아쳐 오지만, 그래서 때로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를 깨닫지 못하는 영적인 맹인처럼 휘청거릴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듣고 행하는 자로서 끝까지 무너지거나 넘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하나, 악한 사람은 그 마음에 가득 쌓은 악에서 악을 내는 자다(45b). 이것은 주초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에 비유된다(49a). 때문에 탁류가 부딪치매 집에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49b)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결국 앞서 주께서 말씀하신 소위 세상 방정식’(27-34)이라는 큰 물과 탁류가 밀려올 때 마음에 쌓은 악에서 악을 행하는 것으로 무너진다. 이것이 세상 방정식에 비춰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실상이다.

   

 

부스러기 묵상

 

    A 행하다 -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

    B 행하지 아니하다 흙 위에 집 지은 사람

 

47절처럼 살아도 48절이 있다(A).

이처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세상 방정식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 식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는 큰 물이나 탁류가 그의 인생에 없게 해 주셔야 할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47절처럼 살아도 49절처럼 사는 자가 만나는 고난과 아픔과 상처와 시련의 파도 앞에 여지없이 노출된다 하신다.

평지설교는 이처럼 요동친다. 그렇다면 이런다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식으로, 그러니까 하나님식(복음식)으로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나라를 따라 사는 자가 걸어가야 할 제자의 길은 이처럼 꽃길이 아니다. 영광과 성공과 행복과 축복과 잔치가 보장된 그런 게 아니다.

그러나 이런다고 아무렇게나 살 수 있는가.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인데 주와 교회와 복음을 위해 꼭 듣고 행하는 자’(47-48)로 살아야 하는가. 이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고 실족하고 무너진다.

그래서 성경(주님)49절처럼 사는 사람을 말씀하신다(B). 하나님의 나라 식으로 살지 않으면 이처럼 폭망한다. 왜 그런가. 하나님의 나라 식으로 행하지 않아서 그렇다. 평지설교를 듣는 사람은 이처럼 두 종류의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설교를 들으면 A만 있을 것 같은데 놀랍게도 B도 있다. 그러나 행하느냐 행하지 아니하느냐가 분수령(분기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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