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산상수훈(山上垂訓)④ - 우선순위

20211205(묵상)

  

 

 

산상수훈(山上垂訓)- 우선순위

Matt. 6.19-34

 

    본문 관찰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24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5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먼저 그리하면

 

제자의 삶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하나님을 섬기며 산다고 하면서 보물을 땅에 쌓아두며 살 수 없고(19-24), 주님의 제자라 하면서 이방인들이 구하는 수준에서 머뭇거리며 의식주(衣食住)만을 위해 삶을 소비하며 지낼 수는 없다. 제자는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다.

 

 

보물쌓기(19-24) - vs 하늘

이 모든 것보다 먼저(25-34)

 

    “공중의 새를 보라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재물) vs 하늘(하나님)

예수께서 시작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재물이냐, 하나님이냐. 세상은 재물을 섬기지만 제자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제3의 방식이라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24)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문제는 이방인들은 이것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구한다는 점이다(25,31). 주님은 여기서 제자들에게 다른 원리를 가르치고 싶어하신다. 그러니까 이방인들과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라는 이 모든 것들이 제자들(‘’)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는 것뿐만 아니라 이 모든 것을 더 하시리라”(33b) 하신다. 그러나 땅에 쌓으라고는 아니다. 이런 자는 주님으로부터 이런 평가를 받는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30b)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25,31)

주목할 것은 하늘 아버지께서 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32)b고 계시다 하신다. 문제는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32a) 하시면서다. 그렇다면 의식주에 대한 것은 비록 그것이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일지라도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는 자들에게도 이 모든 것이 있어야 할 것이고, 이를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는 부분이다. 결국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

, 그럼 이해를 돕기 위해 한 예를 들어보자. 그렇다면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과 다르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사는 것은 이런 것이다. 첫째, 백화점(고급스런) 것들을 먹고 마시지 말고 시장(허기를 면하는, 노점상) 것들을 먹고 마시며 살아라. 또한 입는 것들도 비싸고 고급진 것들을 몸에 걸치지 말고 거리에서 파는 소위 거리의 패션’(땡처리, 창고개방)을 입고 살라. 이것이 세상과 다르게 사는 것이고, 그렇게 절제하고 아껴서 하늘에 보화를 쌓는 자가 세상()과 하나님(하늘)이라는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기지 않는 삶이다(24).

하지만 정말 그런가. 예수님은 지금 이런 금욕주의적인 절제와, 어떻게든 청빈하고 가난하게 살아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가깝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그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다 고급진 아파트를 팔아서 가난한 달동네로 이사를 해야 하는가. 어떤 사람들의 기준처럼 한 끼에 7천원이나 1만원을 넘는 것을 먹으면 죄악이라 생각하며 값싼 것들을 먹으며 살아야 거룩하고 경건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가까운 삶을 사는 것인가. 그렇게 살 때 모든 것을 더하신다면, 그럼 이것은 모순이지 않은가.

 

생각과 중심과 방향이 어디인가.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를 회개의 문을 통해 들어온 자들은 누구인가. 그는 지금까지 땅의 것을 가치 있어 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만을 위해 살아왔던 지나온 삶의 태도와 생각과 방향을 이제는 땅이 아닌 하늘을 향해 자신의 전부를 돌아서는 자다.

하나님께서도 의식주의 것들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며(32b),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다하신다 하신다(33b).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처럼 되는 것으로 떨어질 수 있는 땅을 바라보며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다 하신다. 하나님이 더해 주셔도 나는 의식주의 부요함 때문에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살아간다는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

 

먼저 하늘의 것을 구하라(33).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더 하신다고 하시지만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의 전제가 있다. 그것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이를 구하”(33a)는 것이다. 이 둘의 순서는 바뀔 수 없다. 그러니까 이방인들에게 있어야 할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면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며 살아라는 아니다. 이것은 세상이 끊임없이 유혹하는 그럴듯한 논리다. 그러니까 땅으로 향하는 삶의 방향에서 돌아서라.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라. 이것이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이러한 세상의 논리가 나를 지배하고 있는 부분은 있지 않은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32a)을 따라 사는 것이 훨씬 빨라 보이고, 또 쉬워 보이고, 또 그럴 듯 해 보이기까지 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으로 방법과 수단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논리는 순간순간 우리를 유혹한다.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이 다 쓰는 방식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그렇게만 하면 다 될 것처럼 보일지라도, 또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성공한 듯이 보일지라도 주님이 아니라 하시면 아무 미련 없이 돌아설 수 있는 것, 이것이 믿음이다. 신앙은 영원한 것을 보는 것이다. 지금 당장 눈앞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진리의 눈으로 좀 더 멀리 보는 것이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부스러기 묵상

 

                     방향

        땅 -------------천국

        먹을까                       하나님의 나라와 의

        마실까

        입을까                       구하다

        -----                        -----

        땅에 쌓다                   그런데 이처럼 살아도

        좀, , 도둑                땅에서 33절처럼 살아도 ---34

        없어지다(유한)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34)

 

제자로 살아가는 길에도 염려와 괴로움은 있다.

, 땅의 유혹을 버리고 하늘의 은혜를 바라보며 살아도 내일이 자꾸 우리를 염려와 두려움 아래로 끌고 간다. 하나님의 나라를 따라 살아도 염려로부터 자유하는 것은 어렵다. 순간 우리는 당황하고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이를 아시는 주님이시기에 염려하지 말라!” 하신다.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간다는 것이,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따라 살아간다는 것이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간도 없고 쓸개도 없이 그저 태평성대(太平聖代)를 누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신앙이라는 삶은 치열한 호흡이 있는 현실을 무대로 펼쳐진다. 하늘에 보물을 쌓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이처럼 세상 나라와 다른 하나님의 의()를 구하며 사는 오늘이라는 날은 괴로움을 동반한다.

그렇다면 산상수훈을 성취하며 사는 것은 그야말로 피땀을 흘리며 싸워야 하는 영적 전쟁이다. 그런데 그럴수록 편한 길, 쉬운 방법,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논리를 기웃거리고 싶은 욕구가 문제다. 주님은 지금 그럴 때 무엇을 우선순위에 놓고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치신다. 정말 놓칠 수 없는 복음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주님의 종이라면 나의 주인은 주님 오직 한 분이다. 주님은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24a)라 하셨다. 하나님(하나님의 나라, 천국)과 재물(세상, )을 겸하여 섬기는 일은 불가능하다(24b). 내가 보물을 땅에 쌓으면서 살면 내 마음도 땅에 있고, 하늘에 쌓고 있으면 내 마음이 하늘에 있다(21). 정말 나는 내 마음이 하늘을 향하고 있는가. 롯의 아내처럼 두고 온 땅의 것들을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가.

주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33a)며 사는 나의 모습과 방향과 중심을 다 아신다. 혹시 나는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좀 편리하게 살고 싶어 하나 둘 세상() 안으로 들어오게 한 것들이 이제는 놓아버릴 수 없는 것들로 자리를 굳게 잡아버렸다면, 그래서 물질이라는 것들이 나를 자유하게 하기보다는 나를 구속하고 지배하는 것들이 되어 있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어쩜 33절이라는 나의 영적 생활’(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을 가장 가까이에서 방해하는 것들일지도 모른다.

이 땅에 좀 더 분명하고 확실한 것들이 쌓여가는 것이 나를 안심시키는 것으로 자리잡고 있다면 이것은 큰 일이다. 이 세상으로부터 가벼워지지 않으면 우리는 천국에 올라갈 때 그 무게에 그만 걸려서 어쩌면 영원히 땅의 사람이 되어버릴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공중의 새에게서, 들의 백합화에게서 깃털처럼 가벼운 삶을 배워야 할 때다. 만일 지금이 다시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에게 레슨을 받아야 할 때일까. 그렇다면 부끄러워 해야 한다. 오늘 산상수훈 복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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