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산상수훈(山上垂訓)② - “나는 너희에게”(마 5.17-48)

20211114(양무리교회)

  

 

 

산상수훈(山上垂訓)- 나는 너희에게

Matt. 5.17-48

 

    본문 관찰

 

    율법의 성취자이신 예수님(17-20)

    율법의 성취에 대한 다섯 가지 실례들(21-48)

    ① 살인하지 말라(21-26)

    ② 간음하지 말라(27-32)

    ③ 맹세하지 말라(33-37)

   ④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38-42)

    ⑤ 원수를 사랑하라(43-48)

  

 

율법의 성취, 너희도 이루라!

 

    ▪A 옛 사람 율법

           롬3.20 -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X 예수 그리스도

 

    ▪B 너희 산상수훈(복음) = 하나님의 나라

           롬3.21 -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산상수훈은 구약 율법과의 관계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17-20).

이것이 율법이 무엇이냐는 주제의 핵심이다. 율법이 할 수 있다면 산상수훈의 복음이 필요할까? 그렇지 않다. 그래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율법이 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 즉 죄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은 천국 백성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마태는 구약에 대한 전혀 새로운 이해를 요구한다. 그는 구약 율법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사건 때문에 이미 옛 사람에게 말한 바로 선언한다. 복음 안에서 새 사람이 된 성도에게는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아도 되는 은총이 주어진다는 믿음은 진리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3.21)

왜 이처럼 이제는 율법 외에인가. 율법에 대한 로마서의 선언에서 좀 더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3.20) 그래서 이제는 율법 외에라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한 의()’인 예수 그리스도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는 것까지이지만 복음은 그 죄를 해결한다. 이것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22,28,32,34,39,44)로 이어지는 산상수훈이 말하는 율법 너머의 복음이다. 마침내 성취된 율법, 즉 복음의 새 시대가 열리고 있다(21- ).

   

 

살인하지 말라!(21-26)

간음하지 말라!(27-32)

 

살인이든 간음이든 그것이 이미 행동으로 옮겨짐으로써 발생한 결과에 따른 책임만을 중시했던 것이 지금까지 통용되었던 옛 사람에게 말한 바의 율법이었다. 그런데 이 말은 결과적으로 살인이나 간음으로까지 비화(실행)되지 않으면 문제가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주님은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로 이 계명의 본래적인 뜻(동기와 태도를 포괄하는 행위)을 마침내 밝히 드러내신다. 다름 아닌 살인이나 간음이라는 행동만이 아니라 상황, 마음, 생각의 방향까지가 포함된다.

살인이라는 행위만이 심판을 낳는 것이 아니고 형제에게 노하고, 욕하고, ‘미련한 놈’(단순히 이 말을 하는 것만이 문제라면 주님도 2317절에서 같은 단어인 우맹을 쓰셨다.)이라 악평하는 그 마음의 동기와 태도까지가 이미 형제를 살인한 것이라 하신다(22). 때문에 예배를 드리는 종교적인 행위보다도 먼저 형제와 화목하는 상태(자세)와 태도가 우선한다(23-26).

간음 역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은 이미 마음에 간음한 것이다(28). 눈과 손, 그러니까 몸의 일부분이 이러한 죄에 직간접으로 영향력을 미칠 때 그것을 끊어내는 아픔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분명 이미 간음 안에 있다는 말씀이 충격적이다. 여기서 여자’(gyne)는 이미 결혼한 아내를 뜻하는데 그렇다면 남편과 아내의 결혼 관계를 깨는 그 어떠한 의도나 태도까지도 용납될 수 없다는 뜻이다(29-30). 이혼 역시 그것이 간음이라는 성(sex)과 이미 결탁되어 있음을 지적하신다(31-32; 19.3-9, 24.1-4 참조). 간음이 가정을 깨트리는 끝없는 악순환을 낳는다는 것도 이미 현실이다(32).

주님은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림으로써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죄의 늪 아래로 추락한지 오래라는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따라서 감옥에 갈만한 죄를 행하지 않았기에, 때문에 법이 그런 자에게 죄를 물을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는 식의 항변은 무의미하다.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33-37)

 

율법은 맹세를 금한다: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19.12, 참고 민30.2, 23.21) 왜냐하면 자칫 맹세가 또 다른 죄를 낳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사사기 11장에서 사사 입다의 서원(11.29- )은 자신의 딸을 그 서원한 대로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39)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또 다른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악순환이 맹세 가운데 발생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 법, 그러니까 복음은 맹세를 원초적으로 금지한다(34-36). 맹세 해 보아야 금방 다시 죄를 범하게 된다. 지키지 못한다. 오히려 맹세 때문에 율법으로부터 정죄함을 받을 뿐이다. 이것을 주님께서 미리 다 아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흔히들 나는 하늘에 맹세코 그렇지 않았다. 만약 거짓이라면 OO이라도 내놓겠다.”는 말을 종종 한다. 이것이 악이 먹이사슬처럼, 도미노와 같은 결과를 낳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오직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37) 명하신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38-42)

원수를 사랑하라!(43-48)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42)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44)

 

옛 사람의 윤리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의 윤리를 따라 사는 삶인 왼편 뺨을 돌려대며(39),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40), 십 리를 동행하고(41), 꾸어 주고(42), 원수를 사랑하며(44),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며(44),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며 형제에게만 문안하는 세리와 이방인의 이웃관을 넘어서서 사는 것(46-47),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 하나 결코 자유롭지 못한 나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송사하는 자가 속옷을 가지고자 한다는 말이 흥미롭다(40). 이는 겉옷이 담보물로서의 제한성 때문이었을 것이다(22.25-27, 24.12-13). 그래서 속옷을 가지고자 할 때 제자는 겉옷까지를, 그러니까 모든 소유로부터 자유한 삶을 사는 것이 요구된다(한편 누가는 강도를 만난 상황에서 이 주제를 다루면서 겉옷을 달라할 때 속옷이라는 최종적인 소유까지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6.29).

이처럼 사는 것이 내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세상 앞에 빛으로 소금으로 드러내는 것이며(45), 급기야 하나님처럼 온전(穩全)하게 사는 것이라 하신다(48).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표는 당신의 온전(穩全)하심까지라니 감격과 함께 얼마나 귀한 책임이 동반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처럼 되지 않은 이유를 나의 온전(穩全)치 못함에서 찾아야 함을 그 어떤 다른 논리와 변명으로 대신할 수 있으랴.

   

 

부스러기 묵상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하라.”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라.”

 

내가 복음 안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제 더 이상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것이 산상수훈에서 주께서 말씀하는 새 계명으로서의 복음이다. 주님은 율법의 종노릇으로부터 돌아서라 명하신다.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진정한 행복의 삶은 율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예수 안에 부르심을 받았기에 이제는 율법이라는 그림자가 아니라 복음의 빛을 따라 살아야 한다. 살인, 간음, 맹세, 보복, 원수의 문제 해결은 율법으로는 안 된다. 이것이 주께서 말씀하시는 나는 너희에게의 새 계명이다.

새 시대가 도래했다. 모든 것의 기준은 오직 복음이신 예수님이다. 이제 율법의 시대는 가고 복음의 시대’(하나님의 나라)가 새롭게 열린다는 메시지이다. 이 일은 오직 예수한 분만이 하신다. 다른 이는 없다. 다른 길도 없다. 이것이 역시 주께서 말씀하시는 나는 너희에게의 새 계명의 위대한 선언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진리는 오직 주께로부터 온다. 이것을 신앙으로 고백하는 사람에게 복음의 새 시대가 열린다.

모든 사람은 다 두 갈래 길에 서 있다. 나는 지금 어느 길을 선택하고 살아가는가. 율법인가(율법폐기론, 율법주의, 신약적 율법주의),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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