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예수님은 누구신가?(마 1.1-17)

20211225(양무리교회) - 성탄감사예배 

  

 

 

예수님은 누구신가?

Matt. 1.1-17

 

    본문 관찰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1-6a)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 때까지(6b-11)

    바벨론 포로 때부터 그리스도까지(12-16)

  

 

예수님의 족보(族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1)

 

구약 4천 년의 역사가 하나의 족보를 통해 그려진다.

이것은 [아브라함언약](12.1-3)[다윗언약](삼하7.1-17)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는 것으로 드러난다. 구약의 역사는 하나님의 언약을 신약의 예수님이 완성(성취)하신다는 면에서 연속적이다. 아브라함에게 함께 하신 하나님이 라합과 웃시야에게도 동일하게 함께 하셨다. 부족하고 허점투성이인 인생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저들을 언약 성취의 씨앗으로 사용하신다. 이는 족보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조금만이라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금방 발견되는 것들이다. 하나님의 열심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될 수 없는 족보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낳고 낳고 낳으니라.”

 

약속의 씨(후손)에 대한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다. 사도 마태는 [마태복음]을 기록하면서 하나님의 언약이 아브라함에게 시작되어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성취)되는 것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여기에 대해서 마태는 열 차례에 걸쳐 곳곳에서 그 성취의 흔적들을 분명하게 선포한다(1.22-23, 2.15,17-18,23, 4.14-16, 8.17, 1.:17-21, 13.35, 21.4-5, 27.9-10). 구약에 익숙한 유대인 독자들에게 이것만큼 더 확실하게 메시야 언약이 성취되었음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을까.

성경으로 성경을 증거하는 것,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확실하게 진리를 밝히 드러내는 하나님의 방법(방식)이다. 마태는 성경이 증언하는 사람이라면 비록 그가 자기 개인적으로 맘에 들든 그렇지 않든 간에 정직하게 족보의 목록에 올린다. 그가 어떻게 살았느냐는 평가보다는 하나님이 그를 쓰셨다는 하나님 기준이라는 사실에 집중한다. 마태에게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의 사람으로서의 절제를 본다. 족보의 사람들이 그랬듯이 자신 또한 하나의 통로로서 쓰이고 있음을 잊지 않음에서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4천 년의 구약 역사, 그러니까 아브라함에서 요셉까지의 인물사(人物史)를 망원경 식으로 드려다 보면 놀라운 점이 발견된다. 타락한 인간의 허물과 죄(), 이것이 모든 사람들 속에 퍼져있다. 과연 이런 사람들이 메시야의 족보에 오를 수 있단 말인가 싶은, 그래서 탄식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래서 더 놀란다. 인간의 죄를 보면서,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면서 말이다.

4천 년을 나에게 적용해 보아도 마찬가지다. 4천 년을 60(교회설립 20)으로 축소해 보면 나의 지난 날에도 족보의 여러 사람들처럼 씻을 수 없는 죄의 족적들을 뿌리고 살았던 부끄러운 정거장들이 어디 하나 둘이란 말인가. 그곳에서 목적지를 잃어버렸고, 그래서 탈락했어도 아무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때마다 상처난 내 영혼을 치료하시고 회복시키셨다. 마치 유다가 다말에게서”(3a), 그리고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6b), 또한 솔로몬은 르호보암”(7a)으로 이어지는 그 이면에 들어있는 처절한 죄의 흔적들을 오직 사랑으로 덮으셨듯이 말이다.

족보는 족보의 사람들이 거기에 들만 한 아무런 공로가 없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듯이 나 역시 오늘까지 이어진 60(교회설립 20)의 인생 시간표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하다. 나의 60(교회설립 20)이라는 낳고 낳고의 삶의 언덕들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얼룩져 있기에 그나마 오늘까지 이어진 내 인생이라는 족보가 있게 되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이미 죽어 끝나는 족보가 될 수도 있지만 아직 살려주신 이유는 무엇일까. 내 마지막 족보의 푯대 또한 예수님 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네 명의 여인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3.28)

 

[1] 다말(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야곱의 손자인 유다의 맏아들 엘의 아내로서(38.6), 불의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창녀로 변장하여 시부 유다와의 사이에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는다(38.20-30):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유다에게 베레스와 세라를 낳아 주었으니 유다의 아들이 모두 다섯이더라.”(대상2.4).

 

[2] 라합(5a):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 여리고에 살던 기생으로서 여호수아가 보낸 두 정탐꾼을 믿음으로 숨겨준 공로를 따라 자신과 가족까지 구원을 받았다(2.9-11,13; 11.31, 2.25). 후에 유다 자손 살몬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았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11.31)

 

[3] (5b):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사사시대 기근을 피해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 이주한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아들 말론의 아내인 룻은 모압 여인으로서, 모압의 신을 버리고 시어머니 나오미와 그녀가 믿는 하나님을 따라 베들레헴으로 이주한 후에 보아스와 결혼하여 다윗의 조부 오벳을 낳는다: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1.17b)

 

[4] 우리아의 아내(밧세바, 6b):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아히도벨의 손녀이자 엘리암의 딸인 밧세바(삼하11.3; 밧수아, 대상3.5)는 다윗의 심복 우리아의 아내였으나 다윗은 목욕하던 그녀와 간통한 후, 남편 우리아를 암몬전쟁에서 죽게 하고 밧세바를 아내로 맞는다(삼하11.17,27). 다윗에게서 솔로몬 등 여러 아들을 낳았다(삼하12.24-25, 대상3.5).

 

족보에는 마리아를 제외하고 다말(Tamar), 라합(Rahab), (Ruth), 우리아의 아내(Uriah's wife), 이렇게 네 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그녀들은 다같이 이방인이다. 다말은 가나안(3, 38.11-14, 대상2.4), 라합은 여리고(5, 2,6), 룻은 모압(5, 1.4), 그리고 밧세바는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6, 삼하 11-12)였으니까 말이다. 또한 그리 바람직스럽게 인생을 살았던 것도 아니다(창세기 38, 11.31, 룻기 4, 사무엘하 11-12).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것은 이 네 여인들은 메시야의 족보를 이어가는 밭들로 쓰였다는 사실이다. 이로 보건데 예수님은 이방인의 메시야도 되시며, 여인들의 메시야도 되시고, 또한 죄인들의 메시야이실 뿐만 아니라 버림받아 마땅할 인생들의 메시야도 되시는 분이시다(3.28). 그렇다면 죄인인 나의 메시야도 되신다.

   

 

부스러기 묵상

 

비로소 그림이 맞추어지고 있다.

예수님을 통해서 14(13+1) + 14(17-3) + 14(13+1) = 42 조각의 그림(17, 14(7x2) × 3)이 완성되고 있다. 하나 하나로 볼 때에는 초라하고 죄로 얼룩진 인생들인데, 그러나 마침내 예수님께서 가장 복() 있는 족보가 되어지도록 저들의 모든 것을 다 십자가로 회복시키신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다. 마치 다이아몬드 반지는 링 때문이 아니라 중앙에 박힌 다이아몬드 때문에 다이아몬드 반지라 불림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인생은 이렇듯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의미와 가치로 재창조된다.

마태는 이를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다윗 왕조시대)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바벨론 포로시대)를 분기점으로 삼아 인위적으로 14에 맞춤으로써 예수님이 이 계보의 마지막 완성자이심을 드러내는 통찰을 보여준다. 한편 마태는 다윗의 아들을 솔로몬으로(6), 누가는 나단으로 제시한다(3.31). 이는 마태는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드러내고자 함이다.

특별한 것은 다윗이다. 그는 이 계보에 무려 다섯 번(1,6-7,17)이나 나타남으로써(아브라함은 세 번이다) 그가 이 계보에 얼마나 중심적인 인물인가를 반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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