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맥잡기

맛있는 신약통독개론(묵상)

  

 

 

마태복음 맥잡기

Mt. 16.16

 

    구조 관찰

 

    [구조1]

    왕의 탄생(1.1-2.23) - ‘임마누엘

       왕의 사역1(3.1-4.11): 준 비

       왕의 사역2(4.12-25.46): vs 이스라엘

          왕의 설교 5(5-7, 10, 13, 18, 23-25)

          ① 산상수훈(5.1-7.29)

          ② 제자도(10.1-42)

          ③ 천국 비유(13.1-58)

          ④ 신앙공동체(18.1-35)

          ⑤ 마지막에 될 일들(23.1-25.46)

       왕의 고난(26.1-27.66)

    왕의 부활(28.1-20) - ‘임마누엘

 

       [구조2] 임마누엘

       A ‘Immanuel’(1.23)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X 마태복음: 왕이신 그리스도_약속된 메시아

       A' ‘Immanuel’(28.20) - “항상 함께 있으리라.”

 

          [구조3] 사역지

          갈릴리 사역(4.12-18.35)

          예루살렘 노중사역(19.1-20.34)

          예루살렘 사역(21.1- )

 

             [구조4]

             1. 1.1-7.29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7.28)

             2. 8.1-11.1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시기를 마치시고(11.1)

             3. 11.2-13.58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13.53)

             4. 14.1-19.2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19.1)

             5. 19.3-26.5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26.1)

             6. 26.6-2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28.18)

   

 

마태가 전하는 예수: 약속된 메시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1.1)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8.20b)

 

구약과 신약이 서로 만난다(1.1).

구약은 예언(약속)하였고 신약은 이를 성취하는데, 이의 성취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마태는 이를 모형(Type, 구약-인물, 사건, 제도)과 실체(Antitype, 예수) 사이의 성취라는 관계로 열어감에 있어 이 구원사의 흐름을 끝없이 방해(중단)하는 세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과 그분의 말씀을 들음으로 해서 천국 복음을 따르는 자들의 숨 막히는 긴장을 연속적인 대화의 기법을 통해 전개해 간다.

이런 와중에서도 예수님은 묵묵히 구약의 약속(예언)을 성취하시는 분으로, 그리고 이것의 위기(긴장)를 다섯 편의 설교를 통해서 정면으로 돌파해 가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언()과 행()이 구속사의 전 영역에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그래서 그 누구도, 즉 사람(종교지도자들, 백성들, 때로 제자들)이나 사탄(4.1-11)도 결국은 패배하게 되는 것과 놀라우리만큼 일치하면서 끝까지 일관되고 있다. 이로써 아브라함 다윗 예수 그리스도(이상 1.1) 12제자(10.2-4) 내 교회(16.18) 세상 끝 날(28.20)까지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하나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은 천국의 옴(이룸)을 거역할 수 없다. 마태는 이를 구약의 말씀(예언)을 통해 예수님을 바라보고, 동시에 예수님을 통해 영원까지를 내다보도록 이끈다.

한편 마태복음의 독자가 유대인이었다는 점에서 마태복음은 유대적 복음서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아람어가 번역되지 않고 쓰이고 있으며(5.22, 27.6), 유대적 습관들이 설명 없이 언급되고 있고(15.2, 23.5, 23.27), 곳곳에서 유대적인 표현들(천국 즉 하늘나라라는 표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표현도 그렇다)이 사용되고 있다. 더욱 복음을 전파해야 할 영역이 이스라엘로 제한되고 있다는 점에서(10.5-6, 15.24, 이 둘은 마태복음에만 나타난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아브라함에서 족보가 시작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1.1-17). 또한 다윗의 자손’(9)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동시에 마태는 유대로부터 모든 족속으로’(28.19) 복음이 확장되는 것을 내다봄으로써 유대주의를 극복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태복음은 유대적이다(21.31,43, 22.8-9, 23.1-36,37-38) 유대인에서 이방인으로 대치되는 긴장이 고조된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배척의 결과로서 이방인이 은혜(어부지리, 漁父之利)를 입는 것만은 아니다. 이것은 주님의 초기 공생애 사역 중 백부장의 믿음에 대한 주님의 평가에서 그렇다(8.11-12). 이제 초대교회(마태의 독자들)와 유대인과의 긴장 사이에서 유대적이자 유대적인 메시지를 동시에 보내고 있는 마태의 신학 앞에 비로소 서게 된 셈이다. 이 긴장은 순전히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정치적 메시야와 다른 그리스도였기 때문이다.

  

 

1. 왕의 탄생(1.1-2.23)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1.1)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다. 그는 다윗과 아브라함의 후손이다.”(1.1, 사역)

 

세계’(1, Biblos genesews)계보가 더 정확한 뜻인데 성경에 두 번 더 나타난다(2.4, 5.1). 세계의 시작에, 인류의 시작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의 시작을 알리는데 이 단어를 사용한다. 특별히 마태는 예수로 시작하여 그리스도로 계보이야기를 마무리하는 3중적 [감싸기 구조](inclusio/ 예수-다윗-아브라함 아브라함-다윗-그리스도)를 취한다(1,17). 이를 통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기를 원하고 있는데, 이는 다윗(“예수는 다윗의 후손이다.”)과 아브라함(“다윗의 뿌리에 아브라함이 있다.”)을 통해서 더욱 분명하게 이해하기를 기대한다.

 

1.1. 왕의 족보(1.1-17): “낳고 낳고 낳으니라.”

 

물론 독자가 유대인이어서도 그렇지만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아브라함에서 족보가 시작되고 있다는 점에서 마태복음은 유대적 복음서라고 할 수 있다.

 

1.2. 왕의 탄생(1.18-2.12)

 

1.2.1. 성 취: “이루려 하심이니

    -1.22-23(처녀 잉태) 7.14, 8.8

    -2.5-6(베들레헴 탄생) 5.2; 삼하5.2

1.2.2. 긴 장: 박사들 vs 헤롯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 “소동한지라.”(2.3)

    *헤롯: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2.4)

    *모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 “유대 베들레헴이오니”(2.5)

       -박사들?: “저희가 별을 보고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2.10)

       -박사들?: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니라.”(2.11)

 

유대인들과 대조되는 이방인에 대한 마태의 관심은 놀랍다(2.1-11; 28.19). 유대인들(헤롯, 종교지도자)은 예수님(메시야)을 죽이려 하고, 이방인들(동방박사들)은 그분을 찾아와 경배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1.3. 왕의 유년기(2.13-23)

 

1.3.1. 성 취: “이루려 하심이니라.”(2.15b)

    -2.15(애굽 거주) 11.1

    -2.16-18(유아살해) 37.30, 42.13; 31.15

    -2.22-23(나사렛에서 성장) ?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헬라어는 복수다)

 

왕의 족보와 탄생을 전하는 프롤로그(1-2)를 통해 구약의 성취로서의 마태복음이 갖는 성경에서의 위치와 중요성을, 그리고 이것을 기술해 가는 왕의 공생애(3-25), 동시에 왕의 고난과 부활(26-28)을 내다보게 한다. 중요한 것은 마태가 이처럼 성취의 초점을 그리스도에게, 즉 구약의 성취자로서의 그리스도의 새시대와 그의 공생애를 그린다는 점이다.

마침내 예언의 시대에서 성취의 시대로 넘어간다: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1.22-23; 2.15; 2.16-18; 2.22-23; 4.13-16; 8.4; 8.17; 12.15-21; 13.13-15; 13.34-35; 21.2-4; 27.9-10) 마태는 구약 성취를 위의 주제에 머물지 않고 특별히 모형론적 성취(2.15,19-21; 4.1-11; 12.6,41,42)와 율법의 성취(5.17-48)로까지 확장한다.

한편 헤롯의 속셈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4) 물었던 이유, 또한 동방박사들에게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8) 했던 복선이 얼마나 사악한 것이었던가: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13a) 참으로 치열한 영적 전투가 전개된다. 베들레헴(1-12, 7.41-42) 애굽(13-18) 나사렛(19-23)으로 이어지는 숨막히는 피난생활이 그것이다. 사탄은 헤롯을 앞세워 메시야(그리스도)의 오심과 그것으로부터 시작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1.21)하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무력화하려고 발버둥친다. 그 사이에서 진행되는 하나님의 택한 사람들의 언행(言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으로 열매를 맺는다. 이것이 고난을 이해하는 화두(話頭).

  

 

2. 왕의 사역1(3.1-4.11): 준비_“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4.17)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4.23, 9.35 참조)

 

2.1. 요한 서곡(序曲, 3.1-15): 선 포

 

2.1.1. 성 취: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15b)

    -3.3(세례자의 활동) 40.3

 

2.2. 하나님의 선언(3.16-17): 세 례

 

무대가 나사렛에서 다시 광야로 옮겨간다. 그리고 사람들도 바뀐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에 앞서(4.12- ) 메시야이심에 대한 확증들이 이어진다. 하나는 세례 요한의 증거이고(3.1-12),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세례 받으심이고(3.13-17), 그리고 광야에서 시험받으시는 사건이다(4.1-11). 세례 요한은 알리고, 하나님은 확증하시고, 예수님은 이기시는 것으로 메시야이심을 드러내신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지 실로 3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2.3. 두 지평(vs 마귀)의 긴 장(4.1-11): 시 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4a)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7a)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기록되었으되”(10a)

 

시험 없는 인생은 없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4.15) 예수님께서도 시험을 받으셨다(1, 16.1; 19.3; 22.18,35).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참 어려운 대목이다. ‘이 세상 임금’(12.31; 16.11)인 마귀가 자신의 임박한 끝을 알고서 마침내 공생애를 시작하시려는 예수님을 시험함으로써 하늘 권세에 도전한다. 사탄은 이처럼 예수님의 발목까지를 잡아 보려고 발악한다. 시험이라는 화살이 예수님을 겨냥한다는 점이 놀랍다.

한편 누가는 이 시험의 순서 중 둘째와 셋째가 바뀌어 있다(4.1-12). 마태는 왕의 영광과 관련하여 마지막 시험에 이를 배열한다. 사탄은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방식으로 왕권의 획득을 제안한다. 이 긴장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28.20)라는 일관된 공생애에서 해소된다. 그렇다면 누가는 왜 성전과 관련된 시험을 마지막에 놓았을까. 누가는 성전의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가. 이는 누가행전’(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주제로서의 성전이 누가의 중요한 관심이 될 것을 알게 된다.

  

 

3. 왕의 사역2(4.12-25.46): vs 이스라엘

 

    [사역지에 따른 구조]

    갈릴리 사역(4.12-18.35)

    예루살렘 노중사역(19.1-20.34)

    예루살렘 사역(21.1- )

 

    [성 취]: “이루려 하심이라!”

    -4.13-16(갈릴리 사역) 9.1-2, 42.7

    -8.4(제사장 확증) 14.2-32

    -8.17(치유사역) 53.4

    -12.15-21(치유사역) 42.1-4, 61.1

    -13.13-15(비유설교) 6.9-10

    -13.34-35(비유설교) 78.2

    -21.2-5(예루살렘 입성) 62.11; 9.9

    -24.15(큰 재난) 9.27, 11.31, 12.11

 

3.1. 메시야로서의 공생애 시작(4.12-25)

 

3.1.1. 시 작(12-2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17b)

3.1.2. 긴 장(23-25): 중간평가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지니라”(24a)

    -“갈릴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25)

시험을 이긴 것은 또 하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승리는 그것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님은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에 가서”(13) 사심으로써 구약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하신다(14-16, 9.1-2). 이것은 요한의 투옥 소식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2-13), 그리고 이때부터’(17a) 공생애가 스타트 되는 그 사이에 들어있는 것으로 봐 주님은 당신이 일하실 바로 그 때를 기다리셨고, 그때가 마침내 왔던 것 같다.

마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17, 3.2)를 주님의 사역 스타트로 선언함으로써 요한의 예언이 주님 안에서 성취되는 것으로 [마태복음] 그려가기를 시작한다. 이 말은 예수님이 요한의 후계자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요한의 증거가 옳다는 것이며, 그를 따르는 자들의 언행이 역시 바른 것이다는 것(3.5-7), 그렇다면 요한이 증거한 분이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하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는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볼 때 보다 분명하다는 마태의 탁월한 논증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주님은 찾아가시고, 사람들은 찾아오는 만남 안에 메시야의 3중사역이 자리한다. 소문은 유대를 넘어 수리아까지 퍼지고(24), 그리하여 허다한 무리가 각처에서 주님 앞으로 나아온다(25). 그만큼 23절에 소개된 사역이 왕성했음을 보여준다. 사실 이 3중사역들은 주님의 전() 공생애 기간을 이해하게 되는, 그리고 이를 통합하는 키워드에 해당한다.

구약이 메시야의 출현을 예고했다면, 특별히 세례 요한은 구약과 메시야의 경계선에 서서 예수님과 신약을 하나로 연결하는 계시의 성취를 완수한다. 이것은 구약과 예언이 단지 구약의 언어(문서) 속에 누워있는 것이 아닌 지금도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현존임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살아있는 이야기다. 여기까지 오기까지도 무수히 넘어야 할 구속사의 위기가 있었듯이 -구약의 전() 역사가 그렇다- 사탄은 창세기의 수법을 다시 들고 나온다(4.1-11, 3.1-7 참조). 하지만 예수님(왕이신 메시야)은 태초에 에덴에서 하나님이 그러셨듯이 말씀(산상수훈, 5-7)으로 위기(긴장)를 해소하신다. 이것은 공생애와 고난과 부활로 이어지는 사역의 패턴을 바라보게 한다.

갈릴리에 바람이 분다. 416절처럼 흑암에 앉은 백성이요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이던 잠자던 영혼들이 마침내 복음의 빛으로 말미암아 깨어나기 시작한다.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천국 복음 때문이다(4.17). 이 복음은 가르침과 전파함과 치료함이라는 3중사역을 통해 온 세상을 덮는다. 예수님의 복음은 갈릴리의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사람들의 가슴 속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래서 이 복음의 빛을 맛보고, 또 비췸을 받은 사람들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 앞으로 나아온다.

마침내 이제 [마태복음]의 사람들은 왕의 설교 앞으로 나아간다(5.1).

 

            → #첫번째 설교(5-7) -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이 말씀을 마치시매”(7.28)

 

    산상수훈의 위치1(4.23-9.35) - inclusio

    4.17 23

                                → 가르침(4.23a, 5-7)

    천국 선포(4.23) =                                         = 9.35(천국 선포)

                                → 능력(4.23b, 기적, 8-9)

 

 

    산상수훈의 위치2(4.23-7.27)

    A 허다한 무리(3중사역으로 부르심, 4.23-5.1): 긍정적

        X 산상수훈(5-7)

    B 듣고 행하는 자 - 비 창수 바람(7.24-25): 부정적

 

그리스도의 3중사역을 통해 기적을 맛본 무리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팔복을 따라 살아가야 할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A). 동시에 산상수훈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로 받은 바 말씀(은혜)에 반응하며 살지라도 그들은 비와 바람과 창수가 나는 일이 불어 닥치게 된다(B).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이 가난한 자를 시작으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로 살아가야 할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과연 무엇이 진정한 복()인가. 주님은 지금 산상수훈의 말씀을 듣는 청중들에게 긍정적이자(A) 부정적인(B) 삶의 자리에 처해진다 해도 심령이 가난한 자’(애통하는 자...)로 살 수 있겠느냐 말씀하신다.

 

3.2. 긴장(8.1- ): 두 지평(vs 이스라엘) vs 천국 백성

 

3.2.1. 8-9두번째 설교(10)

    -제자들: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8.27)

*어떤 서기관들: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9.3)

    -무리?: “보고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9.8)

*바리새인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9.11)

    -요한의 제자들?: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9.14)

    -“그 소문이 온 땅에 퍼지니라.”(9.26)

    -하프타임: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9.30)

    -저희?: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전파하니라.”(9.31)

*바리새인들: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9.34)

    →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을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9.35, 4.23 참조)

 

                → #두번째 설교(10) -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10.5-6, 15.24 vs 10.30-37, 17.11-19

                -“명하시기를 마치시고”(11.1)

 

3.2.2. 11-12세번째 설교(13)

        -요한마저?: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11.3)

    *예수님: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11.20)

        -“화가 있을진저”(11.21)

    *바리새인들: “보고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12.2)

    *사람들: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12.10)

    *바리새인들: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거늘”(12.14)

       -무리?: “다 놀라 가로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12.23)

    *바리새인들: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쫒아내지 못하느니라”(12.24)

    *바리새인 중 몇 사람: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12.38)

   

                   → #세번째 설교(13) -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13.53)

 

                   -고향?: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예수를 배척한지라”(13.53-57)

                   -제자들?: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13.36)

 

                 A) 도입비유: 씨뿌리는 비유 (1-9)

 

                       B) 막간:            a. 비유의 목적’ (10-17)

                                               b. 씨뿌리는 비유 해설’ (18-23)

 

                               C) 세 가지 성장에 관한 비유    a. 가라지 비유 (24-30)

                                                                              b. 겨자씨 비유 (31-32)

                                                                              c. 누룩 비유 (33)

 

                       B') 막간 :        a'. 비유의 목적’ (34-35)

                                              b'. 가라지 비유 해설’ (36-43)

 

                               C') 세 가지 다른 비유들:          a'. 보화 비유 (44)

                                                                              b'. 진주 비유 (45-46)

                                                                              c'. 그물 비유 (47-50)

 

                 A') 종결 비유: 집주인 비유 (51-53)

 

12장에는 세 개의 모형이 나온다(12.6,41,42). 이는 구약(모형)을 통해 예수님(실체)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성전과 요나와 솔로몬이 뭔가를 시사한다. 먼저,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통로이듯이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이 그러하시다(28.20b, 유사성). 하지만 구약의 성전은 지리적으로, 그가 누구인가에 따라(이방이의 뜰, 여인의 뜰, 제사장의 뜰, 성소와 지성소) 제한되지만 예수님은 언제나 어디서든지 누구나 다 만날 수 있는 분으로서 성전의 모든 한계를 뛰어넘으신다(차이점, “보다 더 큰 이”).

또한 요나가 선지자였듯이 예수님도 그러하시다. 그런데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33(三日三夜)를 지냈듯이 예수님도 그러셨는데, 요나는 불순종의 결과였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 요나보다 더 큰 이로서 구약의 모형을 성취하신다.

더 나아가 솔로몬이 왕이였듯이 예수님도 왕이시다(유사성). 하지만 지혜의 왕 솔로몬은 우상숭배로 끝난 불행한 왕이었지만 참 지혜와 왕이신 예수님은 끝까지 하나님을 섬기며 순종하심으로써 솔로몬보다 더 큰 이로서 역시 구약의 모형을 성취하신다(차이점). 가족도(12.46-50), 고향도(13.53-58) 천국 복음(13)을 받아들이는데 미묘한 긴장 관계에 있음이 흥미롭다.

 

3.2.3. 14-17네번째 설교(18)

*분봉왕 헤롯?: “예수의 소문을 듣고 요한을 죽이려 하되 민중을 두려워하더니 왕이 근심하나”(14.1,5,9)

    -무리?: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간지라.”(14.13)

    -제자들: “예수께 절하여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14.33)

    -저희: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14.35)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15.2)

    -베드로?: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15.15)

    -여자(이방인):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15.27)

    -큰 무리?: “고쳐 주시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15.30-31)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16.1)

    -제자들?: “이제야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16.12)

    -첫번째 수난예고(16.21- )

        -베드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16.23a)

    -두번째 수난예고(17.22-23)

        -제자들?: “심히 근심하더라.”(17.23b)

 

                     → #네번째 설교(18) -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이 말씀을 마치시고”(19.1)

 

3.2.4. 19-22다섯번째 설교(23-25)

    -“이 말씀을 마치시고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큰 무리가 좇거늘”(19.1-2)

*바리새인들: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리하면 어찌하여 ”(19.3,7)

-천국이야기(19.13-20.16)

-세번째 수난예고(20.17-19)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 “주의 나라에서 우편에,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20.21)

    -열 제자: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20.24)

    -큰 무리: “예수를 좇더라.”(20.29)

    -소경 둘: “곧 보게 되어 저희가 예수를 좇더라.”(20.34)

    -무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21.9a)

    -예루살렘 온 성: “이는 누구뇨?”(21.10)

    -무리: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21.11)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분하여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21.15b-16a)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21.23)

        →

        -예수님: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21.32b)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저희가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니라.”(21.45-46)

*바리새인들: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22.15)

*바리새인들의 제자들과 헤롯 당원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22.17)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22.28)

*한 율법사: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22.35-36)

 

                      → #다섯번째 설교(23-25) -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26.1)

 

사탄(마귀, 옛뱀; 12.9)의 지배권 아래 있는 세상 나라의 대표자들(종교지도자들, 권력자들, 백성들)과 주님의 지배권 안에 있는 천국 백성(제자들, 복음의 빛을 따라 천국 백성됨의 은혜를 맛본 자들, 제자들) 사이에 숨 막히는 영적 전쟁이 공생애의 스펙트럼이다. 탄탄한 신학(문학)적 구조만큼이나 힘의 균형은 팽팽하게 전개된다. 이것이 마태복음의 첫(, ) 독자들로 하여금 이 두 사이에 끼어서 끊임없이 방황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바로 이 대목이 마태복음의 현() 독자들이 놓치지 않아야 할 대목이다. 어쩌면 이것이 위기(긴장)의 때마다 선포된 다섯 편의 설교가 서 있는 위치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오늘의 독자들은 면면히 흐르는 주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듣고 그말씀앞에 천국 백성으로 응답했던 증인들의 언행(言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를 방해하는 무수한 잡음들이 종교지도자들의 편에서 만들어지고 유포되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놀라운 것은 주님께서 이런 변화무쌍(變化無雙)한 공생애의 전 시간(과정)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단(포기)하지 않으시고, 성경(계시, 예언, 구약)을 이루시고 계시다는 점이다(1.22-23; 2.15; 2.16-18; 2.22-23; 4.13-16; 8.4; 8.17; 12.15-21; 13.13-15; 13.34-35; 21.2-4; 27.9-10). 그분은 어떤 형편과 처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셨으며, 가장 가까이는 3년이라는 세월 동안 동거동락(同居同樂)했던 제자들마저, 그리고 그 중에서 가룟 유다가 나오는 위기의 연속이었음에도 구속사(救贖史)를 완수하시는 놀라운 왕으로서의 메시야셨다.

  

 

4. 왕의 고난과 부활(26.1-28.20) - “평안하뇨?”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26.2, 16.21; 17.12; 20.17-19 참조)

 

4.1. 왕의 고난(26.1-27.44)

 

4.1.1. 성 취: “이루었나니

    -26.56(체포) ?

    -27.9-10(유다의 죽음) 11.12-13(18.2-3, 32.6-15 참조)

4.1.2. 긴 장: 예수님/제자들 vs 대제사장들, 백성의 장로들/가룟 유다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26.4)

        -제자들: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26.8)

        -가룟 유다: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를 주려느냐”(26.15a)

        -가룟 유다: “저가 그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26.16)

        -제자들: “주여 내니이까”(26.22)

        -가룟 유다: “랍비여 내니이까”(25a)

        -제자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바리지 않겠나이다.”(26.33)

        -모든 제자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26.35)

        -가룟 유다: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26.49)

        -제자들: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26.56b)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으매.”(26.59)

    *대제사장: “내가 너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26.63a)

        -베드로: “부인하여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저주하며 맹세하여”(26.70,72,74)

        -베드로: “심히 통곡하니라.”(26.75b)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27.1)

        -가룟 유다: “스스로 뉘우쳐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27.3,5)

    *대제사장들: “이것은 피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27.6)

    *빌라도: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27.24)

    *백성: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27.25)

    *총독의 군병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27.29b)

    *지나가는 자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27.40)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27.42)

 

4.2. 왕의 죽음(27.45-66)

 

4.2.1. 긴 장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27.47)

    *그 남은 사람들: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구원하나 보자”(27.49)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27.54)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파수꾼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니라.”(27.66)

 

4.3. 왕의 부활(28.1-20)

 

4.3.1. 긴 장: 여자들/제자들 vs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그 여자들: “큰 기쁨으로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28.8)

    →

    -예수님: “평안하뇨?”(28.9a)

    -여자들: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28.9b)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28.13)

    -열한 제자: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28.17)

 

4.3.2. 지상명령(18-20)

긴장의 또 다른 축이 다름 아닌 제자들이었음이 흥미롭다. 물론 종교지도자들은 여전히 멸망의 선봉에 서 있다. 하지만 전자(前者)가 후자(後者)와 다른 것은 -가룟 유다는 결국 후자 편에 서고 말지만, 그렇지만 부활 후까지도 제자들 중에서는 믿음이 아닌 의심으로 반응하는 자들이 있었음을 주목한다- 왕의 메시야 사역이 마태복음을 넘어서 그 이후(‘내 교회세상 끈 날까지’, 16:18 28:20)에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도록 만든다.

마침내 왕은 승리하신 메시야로 부활의 새아침을 찬란하게 여신다. 이제 왕은 단순히 유대인들에게 구약의 성취자이신 것을 증명하시는 차원을 넘어 당신이 창조하신 전 우주적 차원으로 구원의 활짝 문을 여신 것이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1:16) 마태복음 2820절은 바로 이 놀라운 구원의 파노라마를 조망하게 한다.

 

 

부스러기 묵상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1.1)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4.17)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을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9.35)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8.18-20)

 

 

    [마태의 구조]

    구약

        → A 임마누엘(1.23)

            ― 복음(공생애)

                ― A' 임마누엘(28.20)

                    → 세상 끝날

 

마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 임마누엘의 빛 안에서 예수님과 그의 복음을 조망한다. 임마누엘의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구약의 역사는 이를 준비(예비)한다. 그리고 그분의 생애는 임마누엘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 이후는 그분의 다시 오실 때까지의 임마누엘을 바라본다.

 

이제 왕의 사역은 제자들에게 위임되었다. 구약의 성취자로서의 왕이신 예수님이 시작하신 천국 복음의 3중사역(1.1; 4.17 4.23; 9.35)이 마침내 제자들에게 지상명령으로 주어지고 있다(4.23; 9.35 28.18-20). 구약이 메시야의 공생애에서 살아 움직였듯이 주님의 최후 명령 역시 제자들의 행전’(ACTS)에서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이것이 왕이신 주님의 희망이었고, 그랬기에 공생애 기간 내내 복음으로 하여금 복음 되지 못하도록 근근이 연명하며 살았던 제자들을 끝내 포기하지 않으신 이유이기도 했다.

주님도 아버지의 뜻을 구하셨고, 이를 이루셨듯이 제자는 마땅히 이처럼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26.39b) 제자들은 희망의 증거여야 한다. 이처럼 왕의 증인들로 살아감에 있어 왕이 그러셨듯이 무수한 적()들을 만나겠지만 그럴 때마다 주님의 기도를 드리면서 천국 복음의 영광스러움을 모든 족속으로 하여금 얻게 만들어야만 한다. 이것이 부활하신 주님에 의해 시작된 새로운 왕국이다.

왕의 부활은 이 놀라운 복음을 제자인 나로 더불어 시작하도록 초대한다. 이 길이 영광이 되기까지, 이를 위해 먼저 걸어야 했던 고난의 가시밭을 주님처럼 걸어가야만 한다. () 고난, () 영광이다(2.5-11). 이를 위해 나 역시 겸손히 나를 죽이는 세례 앞으로 나아간다(3.13). 지금 내가 서야 할 자리, 내가 걸어가야 할 사명, 내가 이루어야 할 미션은 바로 그 자리다. 이것이 마태복음이 희망의 증거인 이유이다.

 

   

신약묵상.jpg

 

  김충만

  맛있는 신약묵상

  가나북스

  2014

 

  마태복음 묵상은 책, pp.13-54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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