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이라는 불신앙의 밭에도 31절의 꽃은 핀다(요 7.25-36).

20220125(묵상)

 

 

 

7장이라는 불신앙의 밭에도 31절의 꽃은 핀다.

Jn. 7.25-36

 

    본문 관찰

 

    초막절 전(1-10)

    초막절 중(11-36)

       예수님의 가르침이 옳은 증거들(25-36): “(하나님)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예루살렘 사람들에게(25-31)

          종교지도자들에게(32-36)

    초막절 후(37-52)

  

 

예루살렘 성전 변론(2)

 

초막절을 전후하여 불신앙의 흐름이 급류를 탄다.

가깝게는 가족에서 시작하여(1-5) 예루살렘에 올라온 각처의 유대인들에게(12,15,20), 그리고 오늘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25-27), 급기야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까지(32,35-36) 그 세력과 힘이 점차 확장된다. 그 중심에 홀로 외롭게 주님이 서 계신다. 불신앙을 통해 예수님께 도전하는 사람들만 바뀌었을 뿐 14절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의 키(key)는 오직 주님께 있다: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30) 주님은 사람들에게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죽음의 위협이 공존하는 때(1,19,32)에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으로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일을 계속하신다(14). 오늘도 이 일은 중단없이 계속된다(25- ).

   

 

예루살렘 사람들에게(25-31)

종교지도자들에게(32-36)

 

불신앙의 가지는 예루살렘까지 뻗어갔다. 마치 전염병처럼 무서운 기세로 말이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19b)는 주님의 말씀에 대해 25-26절 같은 소리를 하는 것으로 봐 귀신이 들렸도다.”(20)라며 비아냥거린 유대인들의 말이 거짓임을 밝히면서 일단 7장의 무대에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의 메시야관은 일그러져 있다(27,42, 5.2, 2.1). 27절이 이들의 실상이다. 이에 대해 주님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17-18,28), 하나님이 자신을 보내셨다고 다시 말씀한다(16,29).

한편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32) 성전을 지키는 군인들을 보낸다. 하지만 예수님은 잡히실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30b; 6, 2:4 참조), “조금 더 있다가”(33) 다시 아버니께 돌아갈 것을 말씀하신다(13.1a). 이처럼 아직 남아있는 가 바로 기회의 시간표다. 때가 차면, 혼인잔치의 문이 닫히면, 노아의 방주문이 닫히면, 그래서 문 밖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면서 예수님을 찾아도 만나지 못할”(34a) 것이다. 이것이 천국을 면제받는 길이다: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34b)

   

 

부스러기 묵상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31a)

 

종종 개인적으로 찬송가 고요한 바다로”(373)를 흥얼거릴 때가 많다.

그 가운데 1절의 순풍이 2절의 큰 물결로 바뀌는 부분, 그러니까 우리네 인생항로(人生航路)에는 이 둘이 공존한다는 톱레이디(A. M. Toplady, 1740-1778)의 찬송시가 언제나 내 심령을 희망으로 두드린다. 2절 가사는 이렇게 되어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그렇다. 7장이라는 불신앙의 폭풍우 속에서도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는 놀라운 일이 이루어진다.

신앙이란 참으로 신묘불측(神妙不測)하다. 어찌된 게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치료한 표적(5)을 통해서는 예수님을 믿는 것은 고사하고(47) 오히려 핍박과 죽음(16,18)이라는 음모가 시작된다. 그리고 오병이어의 표적(6)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26)에 주님 편에 줄을 섰다가 자신들의 기대와 다르게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35,47)이라는 말씀을 듣고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다니지 아니하”(66)게 되었고, 공생애를 시작할 때의 12 제자로 돌아가 버렸다(67). 그런데 이처럼 형제들 유대인들 예루살렘 사람들 종교지도자들로 이어지는 숨막히는 불신앙의 황무지에서 무리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31a)라는 장미꽃이 핀다. 그래서 신앙이란 인력(人力)으로 되지 않는다. 이미 요한은 서두에서 이 진리를 선포하였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2-13)

 

1983년 인턴 전도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계속해 온 목회생활이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건강한 교회라는 알곡교회에서도 은혜 받지 못하고 교회를 옮기는 쭉정이 성도가 있고, 늘 싸우고 갈라지고 상처뿐인 영광만이 있는 가라지교회같은 그런 곳에서도 구원의 확신과 영생의 소망을 따라 살아가는 알곡 성도가 있다. 도저히 알다가도 모를 일이 참으로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이게 어쩌면 복음의 신비 아닌가 싶다. 7장과 같은 아수라장에서도 천국 복음은 여전히 선포되고 있고, 그 가운데서도 31절처럼 믿음과 영생 앞에 나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해 보면 7장에서 증거 되는 메시지가 나빠서 사람들이 이처럼 악해진 게 아니다. 주님의 설교는 가장 완벽하다. 한마디 한마디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인 직접 설교가 아닌가. 그런데 그 설교를 들었는데도 예수님을 잡으려고”(32b)하는 무리들이 예수를 믿고 말하”(31a)는 사람들과 공존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육신적으로 가장 가까운 가족에서부터(5) 영적으로 가장 가까울 수 있는 종교지도자들과 대제사장(大祭司長, 32)들까지 하나 같이 다들 예수님의 반대편에 서 있다.

과연 어느 쪽이 문제인가? 예수님의 씨뿌리는 자의 비유’(8.4-15)가 희미한 빛으로 밝아온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11)라고 했으니 네 종류의 밭은 그렇다면 인간 심성이라는 마음의 밭이다. 이 비유의 핵심은 네 종류의 밭 모두가 다 말씀을 들었다는데 있다. 그렇다면 씨(말씀)가 문제가 아니라 밭(마음)이 문제다. 열매를 맺지 못한 마음들의 원인이 자세히 밝혀진다(12-14). 반대로 열매를 맺은 밭은 말씀을 듣고, 그 이후가 앞의 세 종류의 밭처럼 되지 않았던 분명한 이유를 누가는 이렇게 전한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15) 이것이 7장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동일한 말씀을 같이 들었으나 예수를 믿고’(31a)라는 믿음과 영생의 열매를 맺은 사람이 던지는 메시지다. 문제는 이렇듯 인간 심성이라는 마음 밭이다.

초막절에 무수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다. 그럼에도 하나같이 다들 예수 그리스도를 시비하고, 믿지 않고, 잡으려고 하는 혼돈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천국 복음은 중단되지 않으며, “예수를 믿고”(31a) 빛의 세계로 들어오는 믿음의 사람들이 주님 앞으로 나아온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부터 좋은 땅은 없다. 모든 인간은 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본질상 진노의 자녀”(2.1-3)이었던 자리에서 시작한다. 거기서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생명을 얻어 불신앙이라는 돌(5)을 골라내고, 미혹(迷惑)하게 하는 자(12)라는 시험을 경계하고, 예수님 앞에서 잘난 채하는(15) 이생의 기운에 막히지 않도록 하며, 마귀 편에 서는 죄(20)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자로 서기까지 끊임없이 내 영혼이라는 마음의 밭을 새롭게 하는 일에 내 인생의 승부수를 던져야겠다. 더 이상 불신앙의 잔재들(5,12,15,20)이 나를 가지고 놀지 못하도록, 이것들이 내 영적 시야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오직 장차 보리라’(1.42,50-51)의 꿈을 현실로 바꾸시는 주님만을 바라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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