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는 나무의 사랑, 그게 희망이다(요 15.9-17).

20220404b(묵상)

  

 

 

가지는 나무의 사랑, 그게 희망이다.

Jn. 15.9-17

  

    본문 관찰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9)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10)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11,17)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11)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17)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12)

    이제부터는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15)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16a)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포도나무와 가지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9)

 

이것이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다. 농부(하나님) 포도나무(예수님) 가지(제자)로 이어지는 끈은 사랑이다. 그리고 이 사랑의 관계를 풍성하게 하는 것은 계명(말씀)을 지키는 것이라 하신다(10). 그럼 어떤 계명인가? 앞서 주셨던 새 계명(誡命)이 다시 반복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12, 13.34) 건강한 포도원에는 이처럼 사랑이 있다. 주님은 이 포도원으로 우리를 초청하신다.

 

 

포도원의 꿈(13-16)

 

사랑을 먹고 자라는 포도원으로의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주님은 가지의 희생이나 헌신을 먼저 요구하지 않으신다. 먼저 자기 목숨을 버릴 것을 말씀하신다(13).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포도원에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16b),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이다(8). 이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포도원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꿈이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포도나무의 가지된 제자들 역시 서로 사랑으로 풍성하게 되는 길이다(17).

이 관계를 떠나서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4)- 과실을 맺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2) 마신다. 따라서 가지가 할 일이란 나무에 붙어 있는 일인데, 이는 주님이 명하신 새 계명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다(14). 가지는 말씀이라는 생명의 양식을 공급받아야만 한다. 이것 없이는 결코 주님이 원하시는 과실을 많이 맺을 수 없다. 바로 그 가지를 주님은 친구라 하신다(15b). 거기까지 가지를 높이신다. 이제는 종이 아니라 친구로 이 사명()을 이루어가기를 명하신다(15a).

주께서는 포도나무와 가지, 이렇게 세워진 하나님의 포도원에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해서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15b)고 말씀하신다. 그러니까 이제껏 장차 보리라’(1.42,50-51)의 꿈을 현실로 임하게 하시기 위해 언행(言行)하셨다고 말씀하신다. 결국 말씀이 열매를 맺게 할 것이라 하신다. 이렇듯 말씀만이 포도원의 희망이요 꿈이다. 이렇게 해서 16절 앞에 서게 된다. 16절은 가지의 사명이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가지가 스스로 나무에 붙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내(포도나무)가 너희(가지)를 택하여 세웠다 하신다. 이것이 15장에서 줄기차게 얘기하는 거하다의 영성이다. 주께서 제자()를 가지 삼으신 것은 나무 모양이나 유지하고 싶으셔서가 아니다. 목표()는 열매다. 그리고 한 번 맺고 끝인 게 아니라 항상과실이 있게 하시기 위함이다. 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 드리는 기도는 응답된다고 부연하신다(16c). 이 모든 것이 서로 사랑’(17) 안에서 이루어지는 포도원, 바로 그 꿈을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주님은 지금 이런 포도원을 아버지께 드리기를 원하신다. 이를 위해 십자가로 나아가신다고 말씀하신다. 이런 포도원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이것을 방해하는 모든 죄를 없이하여야만 하심을 말씀하신다. 이렇듯 포도원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스러기 묵상

 

포도원에는 기쁨이 자란다.

가지는 단순히 열매를 맺는 도구가 아니다. 열매를 맺는다는 것만큼 가지가 포도나무에 속하였다는 것을 드러내 주는 것이 또 있을까. 하지만 가지는 으로서 아무 감동도, 기쁨도, 보람도 없이 그냥 열매만 맺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기뻐하실 뿐 아니라 그 기쁨이 가지(제자) 안에 있고, 또 가지(제자)의 기쁨도 충만하게 하신다. 주님은 근심’(14.1)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시는 꿈을 포도원 비유 속에 담으신다.

주께서 나에게 맡기신 열매는 어떤 것일까? 나는 지금 무슨 열매를 맺고 있고, 맺어가고 있는 걸까? 이 일을 하는 지금, 그것이 기쁨’(11)서로 사랑’(12,17)으로 성취되어가고 있는가? 내 가지가 주님께 붙어 있는 가지인가의 진위(眞僞)를 판별할 수 있는 근거는 주님의 말씀(14)이고, 그 말씀이 열매를 맺게 하는 곳에는 언제나 기쁨과 서로 사랑이라는 향기가 나게 되어 있다.

이것이 아니면 다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1-3)일 뿐이다. 이렇게 되면 친구임에도 으로 일하고 있음이다. 그러니 기쁨과 사랑은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6절이 될 수도 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주께서 나를 제해 버리시고”(2) 죽는 날까지 노릇 하다가 !”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자칫 잘못된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가지 스스로 열매를 맺지는 못한다는 이 지극히 단순한 생각 하나를 놓치기 시작하면 말이다. 가지(제자, )는 포도나무(예수님)가 있기 때문이고, 나무는 농부(하나님)가 계시기 때문이라는 영적 원리를 새롭게 붙드는 아침이다. 답지 못해도, 부족해서, 늘 기대하시는 만큼의 열매를 맺어드리지 못해도, 무수한 시련과 폭풍우와 시험의 파도 때문에 열매는커녕 거의 연명하다시피 붙어 있는 가지임에도 불구하고 오늘까지 나는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로 살고 있다. 이미 가룟 유다는 제거해 버리시고”(2), 그리고 6절의 선언 앞에 세우셨는데 말이다. 더 없이 머리를 숙이는 시간이다. 다시금 과원지기의 심정으로 하늘을 본다(13.6-9).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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