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천국로(天國路): 믿음을 사용하십시오(마 9.18-38).

20220306(양무리교회)

  

 

 

천국로(天國路): 믿음을 사용하십시오.

Matt. 9.18-38

 

    본문 관찰

 

    회당장 야이로의 딸(18-19,25-26)

    회당장의 집에서 예수를 비웃는 사람들(23-24)

       그 몸에 손을 얹어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그들이 비웃더라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은 여자(20-22)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두 맹인(27-31)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너희 믿음대로 되라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32-33)

    바리새인들(34)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예수님의 3중사역(35-38)

       가르치시며 전파하시며 고치시니라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너희 믿음대로 되라!

 

기적들 안에는 각각의 메시지가 있다.

치유가 이루어지는 곳에는 어김없이 믿음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주님께 한결같이 마음의 소원을 말한다. 중요한 것은 저들의 믿음이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빛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믿음이라는 것은 자기 힘으로 자신을 고양시키고 강화시켜서 그가 원하는 어떤 결과를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 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내 믿음이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든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저들이 주님 앞으로까지 나아올 이유가 없다. 자기 믿음으로 자기를 고치고 살리면 된다. 이처럼 성경 어디에도 주님과 상관없이 인간 스스로의 힘에 의해 자가발전(自家發電)된 믿음을 통해 자기 소원을 성취한 경우를 발견할 수가 없다. 결국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빛난다.

   

 

믿음이 있는 곳에 치유를!(18-34)

 

[1a] 회당장 야이로의 딸(18-19,23-26)

[1b] 회당장의 집에서 예수를 비웃는 사람들(23-24)

 

한 관리로 칭해진 사람은 회당장 야이로라는 사람이다(18, 5.21-24, 8.40-42). 그는 이미 죽어 장례가 진행중인 딸을 위해 주님께서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18)라고 말한다. 이는 주님의 언행을 비웃었던 무리들과는 극과 극에 서 있다(23-24). 그러나 소녀를 향해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24)는 주님의 말씀을 모든 사람이 믿지 못하고 비웃었지만 단 한 사람, 그의 아버지의 믿음을 보셨고, 이 믿음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가를 보여주셨다(25).

내가 나를 살리는 것은 그렇다 치고, 내가 너를 살린다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딸은 이미 죽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딸을 살린다. 물론 주님이 살리시지만 아버지의 믿음을 보시고서다. 그러니까 나의 믿음이 너를 살린다는 얘기가 된다. 네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말이다. 이 원리를 알면 나에게 너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가슴이 뛴다.

 

[2]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은 여자(20-22)

 

두 번째 기적(20-22)은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은 여자가 마음에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21)는 믿음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주님으로부터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22)는 선언을 받게 되는 사건이다. 12년의 고통이 주님 때문에 끝나는 장면이다. 다시 생각하지만 믿음은 대상의 문제다. 나를 믿는 게 아니라 주님만이 나를 고치시고 치료하실 것을 믿는 것, 이것이 주님이 역사하시는 믿음이다.

 

[3] 두 맹인(27-31)

 

매우 중요한 선언이 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28a) ‘네가가 아니고 내가.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도 동일하다. 소경들의 믿음은 자신들의 확신의 강도에 따라 결과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주님께서 고치실 것을 믿는 믿음이었다. 신뢰의 대상이 자신들이 아니라 주님이었다는 말이다. 나도 주께서 충만아,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물으실 때 주여 그러하오이다!”라는 믿음을 고백하고, 그래서 네 믿음대로 되라!”는 위대한 축복 앞에서 살고 싶다.

 

[4a]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32-33)

[4b] 바리새인들(34)

 

예수의 소문이 온 땅에 전파(26,31)되었던 앞에서와는 달리 네 번째 기적(32-34)은 두 가지 반응으로 양분됨을 읽게 된다. 무리는 긍정적이었고, 바리새인들은 저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34)며 마녀사냥 식의 폭언을 날린다. 참으로 측은한 사람들이다. 죽은 자가 살아나고, 소경이 눈을 뜨고, 귀신이 물러가고, 벙어리의 입이 열리는 경천동지(驚天動地)할 기적들의 현장에서 한다는 말이 고작 주님을 귀신의 하수인이라는 식의 여론몰이나 하고 있으니 말이다.

   

 

추수가 있는 곳에 일꾼을!(35-38)

 

그럼에도 주님은 변함없이, 또한 중단없이 3중직을 감당하신다: “가르치시며 전파하시며 고치시니라.”(35, 4.23) 주님에게서 상황이 어떻든 간에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명자의 모습을 잃지 않으신다. 또한 무리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다르게 사셨던 주님의 모습이다(7.28-29). 그 무수한 기적과 이적을 행하시는 메시야이심에도 한 번도 군림하는 법 없이 오로지 당신 앞에 나아와 있는 무리들을 긍휼의 눈으로 보신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그렇게 살라 하신다.

여기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흐름이 감지된다(35-38 10.1-11.1). 그것은 주께서 지금 일하시고 계시는 때를 영적 추수로 보셨고, 이 추수를 당신 홀로가 아닌 일꾼들과 함께 더불어 하시겠다는 놀라운 계획을 발표하시는 부분이다. 또한 이 일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실로 놀라운 영광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채우는 영적 수확을 하나님은 일꾼들과 함께 하시겠다 하시니 말이다.

   

 

부스러기 묵상

 

경우는 좀 다르지만 지금도 이런 일은 얼마든지 있다.

동일한 시간과 장소에서, 동일한 설교자를 통해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린다. 그런데 새 힘을 얻고 영적으로 새로워지는 사람이 있고(19-22,25-33), 졸다가 일어나면서도 설교가 어떻고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23-24,34). 9장까지 왔으면 얼마나 많은 말씀과 하늘의 기적을 목도했는데도 바리새인들이 이렇듯이 수 십 년을 예배당 출입하며 살아도 도대체 변화와 성숙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내가 곧 바리새인이 아니라고 뭐라 장담할 수 있으랴.

예수님 곁에도 바리새인들이 있었다면 하물며 우리 시대랴. 사실 더 시선이 가야하고, 또 애정을 실어야 할 곳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36)하는 무리들이다. 주님은 바리새인들 때문에 흔들리시거나 목표를 잃어버리시는 일이 없으셨다. 그럴수록에 추수해야 할 익은 곡식들을 보셨다. 이런 와중에도 곡식은 자란다. 놀랍다.

바리새인들 때문이라고 핑계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부끄러움인가. 저들이 아무리 복음이 가는 길을 딴지 걸어도 추수할 것은 많다. 회복해야 할 것은 주님처럼 추수할 사람들을 향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나 같은 자도 추수할 일꾼으로 쓰시겠다 하시니 감사할 뿐이다.

나는 일꾼인가. 나는 진정 추수하고 있는 일꾼인가.

아니면, 추수한 곡식을 축내고 있는 머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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