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관 vs 과부: 경건이란 무엇인가(눅 20.41-21.4).

20210322(묵상)

 

 

 

서기관 vs 과부: 경건이란 무엇인가.

Luke. 20.41-21.4

 

    본문 관찰

 

    다윗의 주(20.41-44)

    서기관들을 삼가라(20.45-47)

    온전한 헌금(21.1-4)

  

 

시각(perspective): 기준이 답(答)이다.

 

전혀 다른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 마치 구슬처럼 쭉 꿰진다.

예수님은 다윗의 시편 한 구절을 통해 다윗과 당신과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말씀하시고 서기관들은 부정하신다(20.41-47). 그리고 이어 헌금하는 두 사람을 보시고 부자는 부정하시고 가난한 과부는 긍정하신다. 재미난 것은 주님께서 다윗과 가난한 과부의 언행과 서기관들과 부자의 언행을 대조시키시면서 그들에게(20.41-44), 그리고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제자들에게 (20.45a) 각각 말씀하시고 계시다는 점이다(20.45- 21.4).

(옛 법의 사람들)의 긍정이 하늘의 부정으로, 하늘(예수님)의 긍정이 땅의 부정으로 뒤바뀌는 순간이다. 이로써 20장의 사람들이 연달아 시비하였던 교묘한 주제가 얼마나 사악하고 천박한 소모전에 불과한 것인가가 드러난다. 하지만 세상은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과 논리로 참과 거짓을 바꾸려고 발버둥칠지라도 주님을 결코 이것이 역전되거나 오해되는 일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긍정과 부정_1(20.41-47)

 

    “그들에게 이르시되 ”(41a)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5a)

 

옛 법의 사람들은 줄곧 세 가지 논리를 앞세워(20.2,22,33) 예수님의 권위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왔다(20.1-40). 비록 지루한 논쟁거리들이었지만 주님은 이 시류 가운데 휩쓸려 버리지 않으시고 소중한 진리들을 말씀해 주셨다. 이처럼 비록 그들은 주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기가 막힌 계략들을 세웠지만 예수님은 저희들을 잠잠케 하셨다(20.6,26,40).

그리고서 바로 그 그들에게 자문자답(自問自答) 형식에 따라 말씀하기 시작하신다(20.41-44). 동시에 이번에는 모든 백성들이 듣고 있을 때에 제자들에게 말씀의 초점을 맞추신다(20.45- ). 먼저 지금껏 예수님을 부정코자 했던 그들이 그렇게도 추앙하는 다윗, 그러나 지금 그들 앞에 서 있는 당신 자신이 다윗의 주이심을 다윗의 긍정에 담아 증명(증거)하신다. 참으로 놀라운 변증(탁월한 논증)이 아닐 수 없다.

그러시고 난 후 당신을 부정한 바로 그들을 포함한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20.45)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당신의 권위를 부정코자 했던 그들은 지금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있으나, 주님은 당신을 부정한 그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심으로써 진짜 부정되어야 할 자들이 누구인가를 밝히신다. 역시 항복(설복)할 수 밖에 없는 주님이심이 귀하다.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지만(28,42-43) 분위기나 그 결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주님을 시험한 사탄도 그랬듯이(4.10,11) 그들 역시 입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지만 그것은 주님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수단으로 밖에 사용할 줄 몰랐다. 하지만 다윗은 주님을 더 높이고 찬양하는 자리에 겸손히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알았다(110.1). 지금 그들이 배워야 할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이러고 보니 서기관들의 몰골이 측은하기 그지없다(46-47). 참 불쌍하다. 자신들은 이렇게 살았으면서 정작 주님을 그토록 부정하고 싶었으니, 돌에 맞아야 할 자들이 돌을 들고 있으니 그 돌을 내려놓도록 저들의 허상을 부정하고 저들의 실상을 긍정하도록 하실 수 밖에! 참으로 극적인 역전(逆轉)이다.

 

 

긍정과 부정_2(21.1-4)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8.3, 9.7)

 

옛 법의 사람들이 긍정한 것들을 송두리째 부정하신 주님은 이어 부자와 가난한 과부의 헌금생활을 보시며, 다시 긍정과 부정의 메시지를 담아내신다. 이제 제자들이 취해야 할 삶의 기준과 방향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그만큼 헛된 삶을 사는 20장의 사람들이 초라해 보이고, 또 어리석어 보인다.

주님은 부자와 가난한 과부가 각각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21.1b,2b) 계셨다. 그리고 이어서 부자의 행동과 가난한 과부의 행위를 절묘하게 대비시킴으로써 겉만 번지르르한 저들의 사악하고 인간적인 긍정기획’(위장경건) 이면에 감추어진 추악한 부정 연출’(위선)을 그대로 밝히 드러내심으로써 그들을 심판하신다. 사실 저들은 주님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실 때부터 교묘하게 저항했었다(19.7,39,47-48, 20.1-2,14-16,19-23,26,27-33,40).

하지만 하나님의 눈은 저들의 사악하고 추악한 죄들을 정확하게 밝히심으로써 저들의 긍정처럼 위장된 부정을 허물고 하나님의 긍정을 새롭게 세워주셨다. 이제 모든 백성’(1a,9,16b,45a), ‘그들’(1b,5,17,19-20,26,27,40), ‘제자들’(45)은 연속적으로 이어진 일련의 메시지를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긍정 앞에 서게 되었다. 이것은 이 초대 앞으로 나아올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을 뜻한다. 과연 누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주께서 긍정하신 것을 통해 보이는 삶으로 응답할 것인가.

이점에서 볼 때 가난한 과부의 헌금은 참으로 극적인 메시지를 전해 주는 살아있는 생생한 예화가 되었다. 주님의 긍정을 보여줄 수 있는 예화로 쓰일 수 있는 것만으로 복되고 행복하다 싶다. 어떻든 주님의 기준은 그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참으로 그들(서기관들, 부자들)의 위선적이고 가증한 가짜 경건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부스러기 묵상

 

이 말씀들을 하시는 예수님의 얼굴 표정은 어떠셨을까.

이렇듯 줄기차게 시비를 거는 자들 앞에서도 하늘의 진리들을 퍼 올리시는 주님을 보라. 질문과 대답으로 이어지는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그것도 저희의 간악하고 교활하고 간교한 간계를 아시고”(23)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심장을 향해 비수를 들고 달려드는 자들에게까지 이처럼 중심을 잃지 않으시다니 놀랄 수 밖에 없다.

조금만 마음이 상해도 얼굴부터 붉어지고, 말투가 달라지고, 더 나아가면 상종하기조차 부담스러워 하는 좁쌀근성을 아직 완전히 버리지 못할 때가 허다하다. 그래서 주님이 더 커 보이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만큼이 주님의 마음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고, 저들을 주님처럼 대면하지 못하고 있음이라 싶다. 그만큼 난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다.

하지만 희망이다. 그것은 바울의 고백처럼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7.21)을 깨달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그들처럼 언행하기라는 죄의 사슬을 끊을 때도 되었다. 주님처럼 살아보려고 몸부림쳐도 언제나 거기에 미치지 못한 나를 바라볼 수 밖에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제 좀 더 주님께 초점을 맞추며 살아야겠다. 제자가 얻어야 할 삶의 문답(問答)은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

언제나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깃털만큼 가벼운 생을 향유할 수 있을까. 긍정으로 위장된 인간의 부정을 끊고 주님의 긍정을 따라 삶을 승부하자. 과연 그날이 내게도 올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주님의 예루살렘행전(19.28- )을 기웃거리고 있는 중이다 

한편 주님은 기준을 다윗과 과부로 제시하신다. 물론 서기관들과 부자들고 기준인 것은 맞다. 이렇듯 기준은 긍정과 부정으로 나뉜다. 오늘이라는 삶의 무대에서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살아야 할까. 나는 너에게 어떤 기준으로 읽혀지고, 드러나고, 동시에 모범이 되고 복음이 될까. 그렇다면 과부의 헌금은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예수님처럼 사는 게 무엇인가를 돌아보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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