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누가복음의 선교처럼(눅 8.1-3)-선교주일

20240114(양무리교회)-선교주일

  

 

 

지금은 누가복음의 선교처럼

Luke. 8.1-3

  

 

    본문 관찰

 

    메시야의 3중사역(1)

    예수님 + 12 제자

    어떤 여자들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어떤 여자들, 선교에 동역하다.

 

누가복음 8장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님과 12 제자들이, -역시 바울이 받았던 것처럼(기회가 되면, 다음에 살펴볼 것이다).- 공생애와 하나님의 나라 사역에 필요한 선교비(선교재정) 후원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를 오늘의 경제 단위로 환산해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예수님과 12 제자들, 그러니까 13명이 함께 생활한 비용은 물론 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한 재정까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편 성경은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돈(물질)에 대해, 또한 헌금에 대해 여러 말씀을 하고 있다. 오늘은 선교와 관련하여 이 부분을 살펴보려고 한다.

 

 

돈과 관련된 여러 말씀들

 

너의 선생은 반 세겔’(성전세)을 내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17.24,27)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재물에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8.14)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 은 30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27.3-4a)

 

그러므로 감독은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딤전3.3b)

 

이와 같이 집사들도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딤전3.8)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딤전5.17-18; 25.4)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헌금 과부의 두 렙돈

 

그러면 이번에는 돈(재정)과 관련된 말씀 가운데 헌금에 관한 가르침은 어떤 말씀들이 있는지 보도록 하겠다.

 

    누가복음 21.1-4

     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하시니라

 

주님이 우리가 드리는 헌금을 보신다. 그리고 헌금 드리는 자들에 대한 주님의 생각을 말씀하신다. 드리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3-4절이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 그것이 무엇이냐니까, 주님은 우선 헌금의 양이 아니라 그것의 질을 우선하신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신약에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변함없이 유효하다. 결국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드리는 헌금이 부자들처럼인가, 아니면 가난한 과부처럼인가를 보고 계시는 분이시다.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일부 어떤 사람들의 생각처럼 신약에서도 헌금이 폐지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도 헌금은 주와 복음을 위해 순종으로 드리는 헌신의 중요한 사인(sign)이자 그 척도다. 여기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는 메시지를 들어보자.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

     께 바치라 하시니”(22.17b-18a,21b)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23.23)

 

헌금의 기준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기준이다. 그러므로 헌금은 그것을 드리는 결정권이 마치 헌금을 드리는 자신에게 있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시 얘기하지만, 헌금의 주도권은 헌금하는 사람에게 있지 않다. 그럼 누구에게 있는가. 헌금을 명령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다시 말하지만, 그렇다면 헌금의 주도권은 이를 명하신 하나님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헌금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신이 이곳저곳에, 누구에게로 드리는 것을 결정한다. 이것이야 말로 현대판 고르반이다. 무슨 말인가.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7.11-13)

 

이것이 고르반(Corvan)이다. 그러니까 부모들을 공경하고 섬겨야 할 마땅한 돈을 하나님을 위해 드렸다라고만 하면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당시 서기관들의 전통이 고르반이다. 결국 무엇인가. 인륜과 하나님을 향한 드림까지를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면서 헌금이용해먹기로 추락한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헌금이라는 순종과 믿음마저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하고 또 이미 그러고 있는 것이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 헌금에 대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나만 더 읽어보자. 왜냐하면 고르반 정도는 뛰어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619-21절 말씀이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6.19-21)

 

그럼 이제 오늘 본문, 누가복음 8장이다. 본문의 여인들은 돈에 대한 말씀들은 물론 헌금에 대한 말씀까지를 가볍게 뛰어 넘어섰다. 이처럼 이런저런 인간의 연약하고 완악함에 불구하고 누가복음에서는 헌금이 어떻게 선교에 드려지는가를 우리에게 말씀한다.

 

 

제직회 재정보고(월말정산서)

 

요한복음 1329절이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제자들 가운데 가룟 유다가 돈궤(선교헌금, 사역비), 그러니까 예수님과 12 제자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회계(재정)를 보는 제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13.29)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처럼 이렇게 모아진 헌금을 제자 중 유다가 맡아 관리했고, 제자들 모두가 그것의 입출금 유무를 서로 공유하고 있었던 것 같다. , 이런저런 것들을 토대로 해서 그러면 예수님과 12 제자들에게 매월 어느 정도의 재정이 들어오고 나갔을까를 오늘을 기준으로 대략 큰 항목 정도로만 정리해 보자.

 

     [선교부 재정보고] - 13명 기준

     식비 13* 6,000* 3* 30일 - 8,000,000

     자동차 3(렌트), 세금, 주유, 톨비, 주차, 수리 - 14,000,000

     보험 자동차, 운전자 * 3대 - 7,000,000

     실손보험 - 700,000

     4대보험 - 5,000,000

     주택 33(월세) - 3,000,000

     생활유지비(13.29) * 3채 - 900,000

     화재보험(3) - 100,000

     공과금(전기, 수도, 관리비) * 3채 - 900,000

     품위유지(, 신발, 이발, 목욕, , 커피) - 3,000,000

     통신 휴대폰, 인터넷, Zoom, TV수신료 - 1,000,000

     사역비 13* 500,000원 - 6,500,000

     세금 로마(가이사), 성전세(17.27) - 130,000

     구제비 (13.29)                               -

 

     합계   -  50,230,000

 

13명의 공동체가 대략 한 달을 살려면 지금의 형편으로 환산을 해 보면 최소한 매월마다 5천만원이 넘는 비용이 있어야 했다. 이를 1년 재정으로 하면 여기에는 월급(연봉)은 계산하지 않았다.- 무려 6억원이 넘는다. 실로 어마어마한 재정이다. 제자들이 직업을 가지고 자비량으로 전도자의 삶을 산 것도 아니었다면 그럼 이 많은 재정을 어디서 충당했을까.

 

여기에 대한 희미한 해답(대답)이 오늘 본문이다. 재정이 있으니 재정을 맡은 제자(가룟 유다)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처럼 적잖은 규모의 재정이 과연 어디서, 누구를 통해 마련되고 집행되었을까. 일단 회중, 그러니까 주님 곁에 모여있는 무리는 아니다. 저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통해 빵의 문제를 해결하게 되기를 바랐고, 이게 여의치 않자 주님을 떠나갔던 자들이다(6장 참조).

 

또한 위경에 들어있는 에피소드처럼 쌀이 떨어졌다는 제자들의 말에 바다의 모래를 바구니에 담으면 동전이 될 것이니 그걸 가지고 가서 쌀을 사라는 식의 동화스러운 이야기로 해결할 수 없다. 그럼 무엇인가? 그래서 힌트가 오늘 본문이라는 얘기다.

 

선교비(선교헌금):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3b)

이들이 주님과 그의 일행들을 섬기는 행위를 묘사하는 동사 섬기더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diekonundiakoneo의 미완료 과거 능동태다. 그렇다면 지금 여인들의 재정적인 섬김인 선교헌금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연속적이었고, 또한 자발적이자 자원하여 드린 헌신을 뜻한다.

 

그렇다. 오늘 우리 양무리교회가 선교헌금을 통해 보내는 선교사로 헌신하는 이 헌금이 누가복음과 같다. 우리 모두가 누가복음처럼 자기들의 소유로선교사님들과 교회와 기독교 기관 및 단체들을 섬기기 위해 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를 멈추지 않고, 2024년 새해에도 변함없이 지금은 누가복음의 선교처럼드리겠다는 헌신을 서약하고자 한다.

 

 

부스러기 묵상

 

보통 사람을 세우는 일에는 막대한 재정이 들어간다.

공군(항공사)에서 조종사 한 사람을 양성하기까지 들어가는 비용은 유사시 비행기를 버리고 비상탈출을 하도록 하는 것이 매뉴얼에 있을 만큼 가치있는 고비용이다. 군인 장교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한 사람이 태어나 의무교육을 마치고 고등교육을 받은 후 석박사(최고경영자) 과정까지 공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통계에 의하면 3-5억이다.

 

그러니 3-4년 동안 예수님의 공생애와 그 기간에 12 제자들을 세우고 훈련시켜 사도행전 시대를 열어가도록 한다는 점에서 이들에게 들어가는 재정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용량이다. 위에서 간단하게 큰 항목만으로 정리해 보아도 월 소요경비가 대략 5천만원이 넘는다. 놀랍게도 이 많은 재정이 여인들의 주머니에서 선교비로 드려졌다는 점이다.

 

오늘도 그렇다. 한국교회 역시 여인들의 헌신과 충성, 그리고 기도와 드리는 재정으로 교회의 사명과 소명에 응답해 왔다. 사도행전 이후 초대교회만 보아도 이 흐름은 그대로 이어지는 듯하다. 오늘도 주의 피값으로 세워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신앙공동체가 유지되고 성장하고 부흥하는 것은 이처럼 자신의 소중한 소유로 복음과 교회를 섬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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