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절은 51절의 밀알이다(요 1.43-51).

20220105(묵상)

 

 

 

43절은 51절의 밀알이다.

Jn. 1.43-51

 

    본문 관찰

 

    J-B 나를 따르라(43-44)

       B-N 나사렛 예수니라(45)

       N-B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46)

       B-N 와서 보라(46)

    J-N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47)

    N-J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48)

    J-N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48)

    N-J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49)

    J-N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50-51)

          (J-예수님, B-빌립, N-나다나엘)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예수님 빌립 → ① 나다나엘

                   예수님 → ② 나다나엘

 

나를 따르라!”(43)

이는 주님께서 빌립을 만나서 하신 말씀이다. 그는 다른 제자들과 비교해 볼 때 주님으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는다. 복음이 흐르는 하나의 그림이 보인데 예수님 빌립 나다나엘에서, 그리고 다시 예수님 나다나엘로 이어지는 점에서 그렇다. 결국 빌립과 나다나엘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지고 있음을 본다. 이 만남은 단지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는 43절의 차원이 아니다. 이 시작은 더 큰 일을 보게 되는 것으로 자랄 것이다(51). 이를 빌립이나 나다나엘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이끄신다. 이는 부르심에서부터 분명히 드러난다.

   

 

빌립: 나다나엘(45-46)

 

빌립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나를 따르라.”(43) 예수님을 만나 그의 부르심을 받은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전한다(45a). 그런데 빌립의 예수님을 아는 지식은 놀랍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시라.”(45)

하지만 나다나엘은 이 지식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러니 이 복음을 믿지 못한다. 하지만 빌립은 포기하지 않고 강권한다: “와서 보라!”(46b) 이처럼 예수님에 대한 이해는 여러 종류다. 빌립처럼 믿고 전하는 자가 있고(45), 나다나엘처럼 말하기도 한다(46). 그러나 빌립처럼 사는 자가 더 복되다. 비록 믿지 않았던 나다나엘이지만 빌립이 전한 복된 소식을 듣고 그는 예수께로 나아간다(47a).

   

 

예수님: 나다나엘(47-52)

 

    “이 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52b, 5.20b 참조)

 

주님은 당신에게 나아오는 자, 나다나엘을 다 아신다(47). 나다나엘이 어떤 성품의 사람인지, 무엇 하는 사람인지 다 아신다. 나다나엘은 자신을 전인적(全人的)으로 뿐 아니라 시공을 초월하여 자신을 아시는 주님을 만나자 그리스도에 대한 그릇된 편견에서 벗어난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49) 하지만 주님은 이 고백을 씨앗 삼아 더 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을 예고하신다: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12 제자 가운데 바돌로매의 본명일 것이라고 본다(10.3, 3.18, 6.14 참조). 그렇다면 그는 이 부르심과 믿음의 고백을 시작으로 이제 본격적으로 요한복음 2장에서부터 펼치질 메시야 사역을 통해 자신이 고백한 것의 영광과 그 실상을 보게 될 것이다. 비록 그는 구약의 틀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사람이었지만(46), 그러나 주님은 그를 복음과 구원과 은혜와 하나님의나라의 영광 안으로 초대하실 것이다. 또한 우리가 그러하지 아니한가.

   

 

부스러기 묵상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46a)

복음의 빛이 임하지 아니하면 그는 아직 구약의 사람이고, 그 결과 나사렛박스에 갇혀서 온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과 십자가 사랑을 알지 못한다. 더 씁쓸한 것은 지금도 복음의 영광과 구원의 빛 안에서가 아닌 그리스도에 대한 편견과 오해와 그릇된 교리와 율법에 묶여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옳고 바르다고 생각하는 나다나엘 같은 사람들이 많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그리고 참 진리의 복음을 듣고 알아, 그래서 회개해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 그리하여야 46절의 박스권을 깨고 일어나 이 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52b, 5.20b 참조) 편에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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