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종말론.終末論(사 24.1-23)

20200811-12(묵상)

  

 

 

이사야 종말론(終末論)

Isa. 24.1-23

    본문 관찰

 

   심판의 보편성(1-4)

   심판의 원인(5)

   심판의 양면성(6-23a)

      저주의 심판

      그러므로 저주가 정죄함을(6)

      기쁨이 소멸 성읍이 황무하고 성문이 파괴되었느니라(11-12)

      땅의 주민아 함정에 빠지겠고 올무에 걸리리니(17-18)

      땅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20)

      그 날에 군대를 왕들을 옥에 갇혔다가 형벌을 받을 것이라(21-22)

      그 때에 달이 수치를 당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23a)

         ↔

      남은 자의 무리

      남은 자가 적으며 그 남은 것을 주움 같을 것이니라(6b,13b)

      무리가 동방에서 모든 섬에서 땅 끝에서부터 (14-16a)

      의로우신 이에게 영광을 돌리세!(16a)

      하나님의 영광(23b)

         여호와께서 왕이 되시고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라

   

 

마지막에 될 일들

 

심판을 알리는 종소리는 동심원을 그리며 점차 확장된다.

이스라엘(1-5) 열방(13-23) 땅 끝(24)으로, 더 특별한 것은 종말론적인 저 먼 미래의 심판을 예고하는 메시지(24.21-22)가 분명한 원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24장에서만 16회 사용)에 대한 심판은 이미 세계 민족 중에”(13a), 그러니까 온 세상 전체가 그 대상이다. 심판을 경고하는 나팔 소리는 땅 끝까지 울려 퍼지게 된다. 땅도 사람도, 그 무엇도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5)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세상은 자기의 지은 죄의 무게에 짓눌릴 것이니, 쓰러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20, 표준새번역) 이제 더 이상 높은 군대땅의 왕들’(21)이 힘을 쓰지 못할 것이며, ()에 갇히게 될 뿐만 아니라 해와 달도 부끄러워 할 것이다(22-23a). 마침내 종말론적인 현상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벧후2.4, 1.4, 20.1-10).

먼 미래를 가까운 현재로 끌어당겨 보던 이사야의 솔로(solo, 16b)가 애처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말은 희망의 노래가 희미하지만 주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으로 큰 불을 일으킨다. 바로 남은 자의 찬양이다(6,13 14-16a). 하나님은 모든 죄를 심판하시고 종말의 때에 영광의 왕으로 찬양을 받으실 것이다(23b). 역사는 그날을 향해 가고 있다. 비록 라는 강력한 힘이 온 땅을 심판으로 정복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심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심판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심판은 몇 나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한다(13-2324.13a). 이것은 마치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1.8) 전파되는 것과 같다. 이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는 구원이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렇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선언되고 있듯이 말이다.

지금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3b), 즉 심판의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있다: “땅이 죄로 더렵혀졌으니 이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여 그와 맺은 영원한 계약을 어겼기 때문이다. 세상이 죄악에 짓눌리고 있으니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5,20b, 현대인의성경) 이렇듯 심판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 때문이다. 불순종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파기되게 만듦으로써 죄가 온 세상에 급속하게 퍼지게 만들었다.

죄의 대가에 따른 저주의 심판은 동서고금(東西古今), 남녀노소(男女老少), 빈부귀천(貧富貴賤)을 무론하고 보편적이다(1-4). 결국 모든 것을 가져간다(6-13). 그 결과 기쁨과 즐거움 대신에 슬픔이 그 자리를 대신함으로써 온 세상이 탄식한다. 땅이 이 정도면 거기에 발을 딛고 사는 인생들의 비참함이야 오죽할까(17-22). 이렇듯 심판은 우주적이다(23a).

 

   “그날에 여호와께서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죄수처럼 한 곳에 모아 지하 감옥에 가두어 놓을 것이며

    그들은 형벌이 확정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21-22, 현대인의성경)

 

마지막에 될 일들(최후심판)에 대한 이사야의 외침은 주님의 종말론 강화와, 그리고 사도들의 통찰과 그 맥을 같이 한다(17-23 24.1-31, 벧후2.4, 1.6, 20.1-10). 오늘의 죄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것은 곧바로 내일의 심판이 된다는 경고는, 내일이 아닌 오늘에 선포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이것이 얼마나 영적으로 부담이었으면 그러나’(16b)로 탄식할까.

한 시대의 영적 황무함을 바라보는 이사야의 마음이 내게는 얼마나 자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누군들 심판의 노래를 부르고 싶을까. 하나님은 그만큼 죄를 미워하시는 분이심을, 창조한 당신의 세상을 인간의 죄 때문에 심판하실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심판이 아닌, 아니 그 심판이 집행되고 있는 그 와중에 전혀 다른 희망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6). 심판은 하나님의 최종 메시지가 아니다.

   

 

남은 자의 찬양

 

온 세상을 뒤덮은 심판의 영향력 안에도 남은 자’(6b,13b)는 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6.13) 참으로 놀라운 복음이 아닐 수 없다. 심판이 집행되고 있는 바로 그날에’(21a)도 하나님은 여호와의 위엄으로 크게 외치”(14)는 무리들, 남은 자들을 무대에 세우신다.

소돔과 고모라에서도 롯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아니신가. 그렇다면 지금도 죄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아직 남아 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불러 모으시는 일을 계속하시는 분, 바로 그분이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시다. 절망과 파괴와 형벌의 세상만으로 가득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동방에서 모든 섬에서 땅 끝에서부터”(15-16a) 무리들(‘남은 자’, 14)의로우신 이에게 영광을 돌리세!”(16a)라며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죄로 가득하고, 사탄이 집요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공격해 온다 할지라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 앞에 저들은 결박되고 말 것이다(21-22). 그리하여 왕이신 하나님이 영광가운데 자기 백성을 다스리시는 그날이 올 것이다(23). 주님은 심판주이시며, 동시에 영광의 주이시다.

   

 

부스러기 묵상

 

   “그러나 나는 이르기를

    나는 쇠잔하였고 나는 쇠잔하였으니 내게 화가 있도다.”(16b)

 

이사야는 심판과 영광, 그 사이에서 통곡한다.

자신 역시 영광을 찬송하는 남은 자의 무리들(6,13,14-16a) 가운데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영광의 기쁨보다는 영원한 심판 아래 처한 인류를 보면서 심한 영적 부담을 느낀 모양이다. 나는 구원을 받았지만 너는 아직 심판의 대상임을 잊지 않는 자만이 이사야처럼 언행할 수 있다. 그리고 여전히 죄악 아래 있는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외칠 수 있다.

죄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광의 하나님을 본 사람은 이사야처럼 고백한다(16b). 그는 앞에서도 이와 비슷한 고백을 한 적이 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6.5) 정말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자는 이처럼 나의 영광만이 아닌 너의 심판과 죽음을 보면서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다.

한편, 하나님은 늘 균형을 유지하시는 분이시라는 생각을 해 본다. 공의(公義)의 심판과 은혜의 구원을 통해 당신이 다스리는 세상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공의의 하나님으로 일하시는 그 순간에도 은혜는 늘 숨 쉬고 있고, 은혜와 자비의 하나님으로 찾아오시는 그 순간에도 공의는 결코 좌절되거나 포기되지 않는다. 인간 나는 이 하나님의 두 모습을 간혹 분간하지 못하고서 착각하지만 하나님은 이 두 법을 시행해야 하는 문제를 혼돈하시거나 잘못 집행하신 적이 없다.

세상은 지금 심판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닌 것은 영광의 왕이신 주님이 영원히 다스리실 그 나라와 그 나라의 백성들이 세상 방방곡곡에서 모아질 것이며, 그들은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상에 죄악이 관영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속에서 당신의 택하신 자녀들을 보존하시고, 때가 차면 그들을 모으시고, 그들을 통해 찬양을 받으실 것이다. 지금 그 영광의 날이 오고 있다.

과연 영벌(永罰)의 심판으로 주의 오심을 맞을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영광의 문으로 들어가 주와 더불어 영원토록 영광에 참여하는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주의 오심 앞에 설 것인가. 중간지대는 없다. 그러나 남은 자의 무리(6,13,14-16)로 부르셔서 끝내 주를 찬양하게 하실 하나님을 찬양한다. 오늘도 늘 그래왔듯이 심판과 구원의 이중주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방주 밖에서 심판이 아니라 방주 안에서 구원을 맞이하게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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