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 묵시록.黙示錄(사 20.1-6)

20200806(묵상)

  

 

 

애굽 묵시록(黙示錄)

Isa. 20.1-6

  

   본문 관찰

 

   앗수르의 사르곤 왕이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해

   이사야가 3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

   이와 같이 끌려갈 때에 다 벗은 몸과 벗은 발로 수치를 보이리니

   그들이 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그날에 우리가 믿던 나라가 이같이 되었은즉

   우리가 어찌 능히 피하리요

 

      [구조]

      A 심판(19.1-15)

         X 회복(19.16-25)

      A’ 심판(20.1-6)

   

 

3년이라는 시간표

 

이사야의 애굽과 구스를 향한 예언의 노래다.

애굽과 구스는 이사야의 예고처럼 약 50여년 후에 앗수르의 침략에 의해 멸망한다(BC 713 BC 681-63). 하나님은 한 사람 선지자 이사야의 심령을 여시고, 그에게 이상을 보이신다. 이것은 이사야가 스스로 생각하여 알아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사야에게 알리신 것이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갈지어다.”(2a) 이사야를 찾아오신 하나님은 오늘 나에게도 찾아오셔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의지하던 애굽은 결코 이스라엘을 돕는 영원한 방패가 아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는 내가 의지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온 몸으로 하는 설교(2-4)

 

하나님은 이사야를 3년이나 온 몸으로 설교하게 하셨다(2-4). 하지만 그의 배역은 희망의 노래가 아니라 심판의 설교였다. 이사야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은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2b)는 명령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한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니라.”(2c)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속옷 하나 걸치고 발에는 신발도 없이 무려 3년이라는 시간 동안을 그렇게 순종한다(3).

모르긴 해도 뜨거운 태양의 이글거리는 모래 위를 맨발로 걸어 다니는 것은 그렇게 유쾌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자원한 것도 아니었고, 이사야가 꼭 해 보고 싶었던 희망사항도 아니었다. 그는 선지자다. 그럼에도 유리하는 방랑자 같은 몰골을 하고서 3년이라는 기간을 한결 같이 순종한다는 것은, 다른 면에서 볼 때 이사야의 대단한 집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3년 이후가 희망이 아닐 쯤에야 오죽했을까!

나를 돌아본다. 나에게 좀 부담스러운 일일지라도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고 있는 순종이 있는가. 하나님과의 무수한 약속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진행 중인가. 3년은 고사하고, 3개월, 3(), 아니 작심삼일(作心三日), 하긴 뭐 이 정도면 그래도 양반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작심삼시(作心三時), 작심삼분(作心三分)에 불과한 그런 값싼 순종이 신기루처럼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가 버리는 것을 볼 때 말이다.

이사야의 변함없는 3년의 모습은 애굽에 대하여 예표와 기적이 되었다(3). 이것은 정신 차리지 않으면 너희들은 이사야의 모습처럼 일그러지게 될 것이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기적만으로 쓰이기를 원하는 나의 못남을 회개하면서 내 안에도 이런 기대와 소망을 다시 되살려 본다: “하나님이여, 이 시대의 예표로 쓰시옵소서! 나를 보며, 우리 가정을 보며, 우리 교회를 보며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회개에 이르도록 나를 그 통로로 쓰옵소서!”

한편 불행하게도 애굽과 구스는 회개하지 않았다. 이것이 죄인의 모습이다. 노아시대의 사람들도 방주를 보면서 방주문이 닫히는 그 순간까지도 회개하지 않았으며(6.8-7.12), 또한 40년 동안 광야를 유랑하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다(고전10.5). 아마도 이사야를 보면서 사람들은 비웃고, 깔깔거리고, 무시하고, 냉대했을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십자가를 보면서까지 사람들은 그랬고, 지금도 그러고 있으니까.

   

 

애굽의 멸망을 부끄러워하라!(5-6)

 

앗수르를 대적하기 위해 애굽을 의지했던 이스라엘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애굽이 멸망당함으로써 그들의 계획과 의도가 얼마나 코미디 같은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이 예언의 성취가 갖는 몇 가지 의미들이 있다. 하나님은 애굽과 자신을 동시에 의지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분이다. 언젠가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20.5, 4.24, 24.19).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애굽을 의지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여 하신다. 자존심이 상하신다는 얘기다. 그것은 한낮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에 불과한 애굽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섬기고, 의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나님)는 그(솔로몬)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삼하7.14)

애굽은 잠시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해 사용한 막대기와 채찍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애굽을 짝사랑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삼각관계로 만들었으니, 이러한 못된 관계를 하나님이 그대로 방치하실 리가 없었다. 하나님(아비)과 이스라엘(아들)과 애굽(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을 혼돈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아야겠다.

   

 

부스러기 묵상

 

애굽의 멸망당함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의지하던 애굽을 멸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의 잠자는 신앙을 깨우고 싶어 하셨다. 나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는가. 하나님이 아닌 그 어떠한 것들도 그분은 다 빼앗아 가신다. 하나님은 요나가 햇빛을 피하려고 의지하던 박넝쿨을 시들게 하셨다. 그것은 박넝쿨보다 니느웨 백성들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4.1-11). 그러므로 내가 의지하던 박넝쿨이 잘리기 전에, 모든 것이 내 품을 떠나기 전에, 말하자면 소 잃기 전에 우선해야 할 것을 놓치지 않아야겠다.

하나님께서 애굽을 치시듯 이처럼 소위 외곽떼리기를 시도하실 때, 그 본 의도를 빨리 눈치 채야 할 것 같다. 영적 포위망이 좁혀 올 때, 그것을 빨리 깨닫아야 한다 싶다. 이것이 지혜로운 자다. 한 나라를 멸하시는 것을 본보기(sample, 4)로 삼으시면서까지 이스라엘을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집요하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5-6).

특히나 이사야의 3년이라는 기간 동안 이루어진 순종이 여러모로 내 마음을 두드린다. 결코 쉽지 않은 기간이요 행동이었다(3). 그럼에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면 묵묵히 순종해 내는 그의 헌신에서 내가 감당해야 할 사역자로서의 영성을 좀 더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뭔가를 이루시겠다면 그것이 혹 내 입맛과 취향에 맞지 않는다 할지라도 거기에 기꺼이 순종할 수 있기를 다시금 다짐해 본다.

하나님은 나를 어떤 예표와 기적으로 쓰시고, 또 쓰실지 내심 궁금하다. 나는 어떤 예표일까? 등대처럼, 나침반처럼, 깃발처럼 나를 쓰시는 분의 의도를 충분히 드러내고 있는지도 역시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이사야처럼 좀 황당하게(?) 쓰실지라도 그 안에 들어있는 섭리를 읽어내고 받아들일 수 있는 깊이가 있기를 소망한다.

한 나라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일이고, 또한 예표의 자리를 지키는 한 그 기간만큼이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을 수 있다면 이 험한 세상에서 예표로 쓰인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축복 아닐까. 이사야의 언행(言行)을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기를 시작하니 자유함이 있다. 사실 목사는 사면이 유리관인 곳에서 살아가는 자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왕 그렇다면 나도 살고, 나를 보는 자도 함께 사는 그런 예표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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