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자'(Remnant)의 복음(사 10.20-34)

20200725(묵상)

  

 

 

'남은 자'(Remnant)의 복음

Isa. 10.20-34

  

   본문 관찰

 

   남은 자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여호와를 신실하게 의지하리니

     남은 자가 능하신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이미 작정된

   앗수르

     앗수르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들은 내 진노로 멸하리라

     여호와께서 채찍을 들어 그를 치시되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꺾으시리니 낮아질 것이며

   

 

남은 자만 돌아오리라!

 

   A 앗수르(5-19) : 화 있을진저 소멸되리니

      X 이스라엘(20-23) :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A' 앗수르(24-34) : 꺾으시리니 베임을 당하리라

 

앗수르(5-19)남은 자(20-23)앗수르(24-34)로 이어지는 구조다.

유다는 이렇듯 앗수르라는 두 톱니바퀴에 포위되어 있다. 하나님이 앗수르를 들어서 유다를 심판하신다 하셨으니(12) 유다의 내일은 이미 무덤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남은 자의 복음이 외쳐진다. 그리고 앗수르는 유다를 심판하는 진노의 막대기’(5)라는 단역(端役)이 끝나자 이들은 무대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예고를 듣게 된다. 기막힌 역전이다.

물론 둘 다 남는다. 앗수르도 남은 나무(19), 그리고 유다는 남은 자()’로 각각 남게 될 것인데 과연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동일한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사야는 상이한 두 그림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유다처럼 남을 것인가, 아니면 앗수르처럼 남을 것인가를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무엇이 남은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전혀 다른 것으로 남게 되도록 만든 것인가. 지금 독자들은 갈림길에 서 있다.

   

 

남은 자(Remnant, 20-23)

 

그 날에’(20a)는 언제이며, 어떤 의미를 갖는가? 12절이 열쇠다: “이러므로 주께서 주의 일을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리라.” 그러니까 앗수르를 들어 유다의 죄악을 심판하는 일을 이룬 이후를 가리킨다. 결국 앗수르는 하루살이나 일회용 같은 소모품으로 전락하고(17) 유다는 다시 회복의 기운을 맞는다. 이를 통해 유다는 진정으로 의지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가를 배울 것이다. 바로 그걸 배운 자들이 남은 자의 반열에 서게 될 것을 이사야는 내다보고 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을 고난과 심판의 집행 과정에서 배웠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행운이다. 이를 알고 또 믿어야 한다. 그래야만 다시는 앗수르와 같은 진노의 막대기’(5)를 의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유다는 이를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서 배울 것이다. 어떻든 아픈 만큼 성숙해진 것 아닌가. 때로 역경과 시련은 가장 소중한 것을 깨우치는 스승이 되곤 한다.

하지만 유다의 모든 백성들이 다같이 이러한 진리를 붙잡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22a),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는 소수의 남은 자’(Remnant)만이 돌아올 것이다(22). 이들은 환난과 고난을 이긴 자들이다. 이 과정에서 다시 하나님을 진실하게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환난은 그것대로 받고, 그리고 공의를 따라 파멸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이미 하나님은 이를 결정하셨고 끝까지 강행하실 것이다(23). 비록 앗수르(허상, 그림자)가 이 일을 이루는 것처럼 포장되었을지라도 하나님(실상, 실체)께서 작정하시고 시행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이사야의 설교를 듣고 깨닫는 자만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며 남은 자의 은총을 수납하게 되는 길이다.

   

 

앗수르, 너 퇴출이다!(24-34)

 

유다의 죄를 앗수르를 통해 심판하시면서도(12,24-25) 여전히 그들을 내 백성’(24)이라 부르신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하신다. 하나님의 분노는 머지않아 그칠 것이지만 이번에는 그 화살이 앗수르를 겨냥할 것이다(25). 마침내 12절의 성취가 시작된 때다. 하나님은 채찍을 들어 미디안(7.24-25)과 애굽(14.26-31)처럼 앗수르를 응징하신다(26). 이렇게 해서 짐과 멍에가 떠나고’, 또한 벗어지게 될 것이다(27). 바로 이 와중에 남은 자의 행렬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여전히 유다는 떨고 도망하도다. 피난하며 도망하도다.”(29-31)의 여진이 계속된다. 마치 태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고난의 흔적과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예루살렘이 이처럼 취급되는 것은 그냥 넘기지 않으신다(32-34). 앗수르의 승승장구(乘勝長驅)도 끝나는 날이 온다. 세상은 언제나 승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늘 무엇이 진실인지 혼돈스럽고, 그런 만큼 예루살렘과 앗수르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다 죽은 것 같고, 끝난 것 같은 예루살렘이 다시 회복의 흐름을 타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앗수르)의 방자함을 결코 좌시하지 않으심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큰나무일지라도 가지를 치시듯 저들을 쓰러뜨리실 것이다. 이걸 모르니까 잘 되는 것 같으면 인생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건방을 떤다. 이렇듯 세상은 요지경이다. 때문에 영적으로 보면 잘 될 때가 더 위험하고 조심해야 한다. 이는 알 사람만 알도다!

   

 

부스러기 묵상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7,000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11.4-5)

 

남은 자’(Remnant)의 복음은 [이사야의 신학]에서 점차 전면으로 부상한다.

사실 성경은 창세기에서부터 남은 자를 품고 있었다. 노아와 그 식구들(6.8-22), 롯과 두 딸들(19.12-16), 모세(2.1-10), 여호수아와 갈렙(14.29-30), 엘리야 시대(왕상19.18), 그리고 최후 종말의 때(20.15)에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보존하시고 당신의 품으로 부르신다.

이사야 시대도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죄꽈배기’(죄바라기)처럼 죄로 뒤범벅이 되어 만신창이(滿身瘡痍) 꼴로 전락한 유다였다(1.1-4.1, 5.1-30). 여기에 대해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끊임없이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선포하신다. 이것은 지금 빈총이 아니다. 단순한 경고성 문구가 아니다. 이는 실제 상황이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이고, 이를 이사야가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 심판의 집행 속에서도 소수의 남은 자를 보존하시며 저들을 보호하신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인생이 누구를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하신다. ‘남은 자는 바로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죄()와 의()는 분명히 드러난다. 결국 심판은 완전한 파멸로 가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인생들 속에서 하나님을 진실히 의뢰하는 자는 찾으시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점을 주목한다. 이처럼 죄를 벌하시면서도 동시에 그 안에서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 편에 선 자들을 구원하시며 남기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만난다.

 

   “이제 아주 조금만 지나면 너를 향한 나의 분노는 다하고,

    오히려 저들의 파괴 행위를 향하여

    나의 분노를 터뜨릴 것이기 때문이다.”(25, 새번역)

 

동시에 앗수르의 패망을 보면서 오만과 자만과 교만의 끝이 무엇인가도 생각해 본다. 어떻든 지금 이사야서의 무대는 아수라장이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 기막힌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의 가는 길이 남은 자의 행로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두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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