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압 애가.哀歌(사 15.1-16.14)

20200731-0801(묵상)

  

 

 

모압 애가(哀歌)

Isa. 15.1-16.14

  

   본문 관찰

 

   모압에 대한 애가(15.1-9)

     하룻밤에 망하여 패망할 것이라

     그들은 산당에 올라가서 울며 통곡하도다

     곡성이 모압 사방에 둘렸고 디몬에 재앙을 더 내리되

     모압에 도피한 자와 그 땅의 남은 자에게 사자를 보내리라

   모압의 위기(16.1-5)

     너희는 어린 양들을 시온산으로 보낼지니라

     모압 여자들은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 새끼 같을 것이라

     망하였고 이 땅에서 멸절하였으며

     다윗의 장막에 왕위는 인자함으로 굳게 설 것이요

   모압의 교만(16.6-12)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포도나무가 말랐음이라

     그 산당에서 피곤하게 봉사할지라도 무효하리로다

     자기 성소에 나아가서 기도할지라도 무효하리로다

   모압의 멸망(16.13-14)

     삼 년 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

     그 남은 수가 심히 적어 소용이 없이 되리라

   

 

Good Bye, 모압!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라.”(2.9)

 

모압은 롯과 그의 큰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19.1-38).

훗날 이들 모압 족속은 하나님의 배려에도 불구하고(2.9)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발람을 통해 저주하려 하였고(22.1-24.25), 이후 사사시대에는 실재로 18년 간 이스라엘을 지배하기도 했다(3.12-14). 하지만 모압은 계속해서 실패를 거듭한다(삼상14.47, 삼하8.2, 왕하3.4-27, 대하20.1-30). 그러다가 마침내 이사야를 통해 패망을 선고받는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모압의 모습, 과연 어떤가.

애가(哀歌)를 부를 수 밖에 없는 이사야의 마음은 어둡기 그지없다(15.5a, 16.11). 모압은 이스라엘의 형제국이기 때문이다(2.9). 이렇듯 하룻밤에 삼 년 내에”(15.1, 16.14) 패망하여 모든 것을 다 잃을 것임에도(15.6, 16.8-10) 불구하고 하나님이 아닌 헛된 우상 앞에 줄을 서고 있다(15.2, 16.12). 아니나 다를까 교만’(16.6)은 모압을 서서히 침몰하게 만든다.

   

 

모압에 대한 애가(15.1-9)

 

모압의 임박한 패망을 예고하면서 선지자 이사야는 애가(哀歌)를 부른다. 모압은 하룻밤에’(1) 망하여 황폐할 것이기 때문이다. 심판은 어제와 오늘을 완전히 갈라놓는다. 그럼에도 저들은 디본 산당으로 올라가 조각한 우상에 불과한 나무 조각을 붙들고 통곡한다. 온 모압에 통곡과 애통의 눈물이 흘러 넘친다(2-5). 마치 호화유람선 타이타닉이 침몰하는 것처럼 말이다. 죄는 이처럼 어제의 웃음과 멀쩡함을 계속해서 보장하지 못한다. 문제는 오늘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바로 그 밤에 이제까지의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럼에도 하나님이 아닌 산당(山堂, 2)에 올라가 울며 통곡하는 모압의 몰골이 측은하기 그지없다. 울음은 있으나 회개는 없고, 뭔가 돌파구를 찾고는 있으나 여전히 하나님은 없다. 모두들 엉뚱한 곳에서 희망을 찾는다. 모든 것이 황폐하게 끝났고(6), 그럼에도 얻은 재물과 쌓았던 것’(7a)이라는 헛된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건너리니”(7b)의 모습으로 피난 행렬이 이어진다(7-8). 하지만 하나님이 더 하시는 재앙은 인간적인 퇴로를 차단한다(9a). 인간이 붙들었던 희망(‘얻은 재물과 쌓았던 것’, 7)의 종점에 그들을 찢을 사자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9b).

하나님 없이 살아도 문제가 없었다. 어제까지 말이다. 그러나 오늘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전형적이고 습관적인 착각이다. 하룻밤에 모든 것이 모압의 곁을 떠났듯이 우리 또한 영적으로 민감하지 못하고 하나님 없이 쥔 어제의 것에 스스로 자족하고 있다면 오늘의 파산은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를 지켜주고 인도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하룻밤에 어제와 오늘을 극명하게 분리시키시는 하나님이셔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도 애가(哀歌)의 오늘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시한부 모압(16.1-14)

 

절망의 애가(哀歌, 15)를 다시 희망의 애가(愛歌, 1)로 돌릴 수 있는 길은 헛된 우상을 버리고(12, 15.2), 더 적극적으로는 이 땅의 통치자’(유다)와 시온산으로(1), 그리고 다윗의 장막에 의탁하는 결단뿐이다(3-5). 이렇듯 선지자는 헛된 것을 의지하지 말고 유다를 피난처로 삼으라 외친다. 이것만이 하나님을 버리고 살아보겠다고 아우성치는 모압의 교만’(6)을 벗어나는 길이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모압은 파산이다(2,7-11,13-14).

그러나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선지자의 외로운 솔로(solo)가 모압 온 땅에 울려 퍼지지만 이렇듯 교만은 패망의 선봉에 서서 당당한 걸음을 계속한다. 3(14), 아니 그것이 하루 밤에(15.1) 끝날 시한부(時限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부스러기 묵상

 

모압의 남은 자’(15.9b, 16.14b)는 희망의 씨앗인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1.8-9, 6.13, 10.20-23, 11.11-16)와 완벽하게 대조를 이루는 것을 볼 때 그렇다. 이것이 이스라엘과 모압의 건널 수 없는 질적(質的)이자 영적(靈的) 차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전()에 하신 말씀과(16.13),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제 다시 말씀하시는(16.14) 그 사이에 모압이 서 있다. 하지만 저들은 하나님의 심판 예고를 들었으면서도 회개하지 않았고, 여전히 교만’(16.6)이라는 시한폭탄을 품고 있고, 그러면서 계속해서 헛된 출구를 기웃거리고 있다(15.2, 16.12).

하룻밤에’(15.1) 끝장이 날 심판이지만 하나님은 이미 전부터’(16.13) 1차로 경고하시고, ‘이제’(16.14) 2차로 당신의 언약을 집행하실 것을 최후통첩(最後通牒) 하신다. 이처럼 전부터 이제그 사이에 서 있는 것이 어찌 모압뿐일까. 모압이 어리석다고 돌을 들어 정죄하기 이전에 혹여 우리에게 펼쳐질 이제는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또한 이미 무수하게 전에하신 말씀이 먼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하룻밤에라는 하나님의 공의가 집행되기 위해 하나님은 먼저 그 전에말씀하신다. 모압만이 아니라 지금 세상은 동일한 경고를 받고 있는 중이다(24-25). ‘이제곧 이 예언의 말씀이 성취될 것이다. 그날을 모압처럼 맞을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는 오늘을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 가느냐와 깊은 함수관계에 있다. 모압이 하나님을 몰랐다고 핑계할 수 없는 것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예일 뿐만 아니라 이미 이스라엘 가장 가까이에서 저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왔다는 점이다.

세상도, 또한 우리도 전부터 이제”(16.13-14) 그 사이에 서 있다. 모압이 간 길을 또 다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용히 묵상해 본다(16.1-5). 얼마든지 모압처럼 끝났을 우리를 오늘까지 살려주시고 다시 모압의 애가(哀歌)를 들려주시는 하나님에게서 형용할 수 없는 사랑을 느낀다. 이만한 대접을 받을 아무런 자격이나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님을 누구보다 우리가 더 잘 안다.

모압을 통해 교훈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한다. ‘하룻밤에이처럼 천지가 진동하는 심판이 집행되리라고는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주님의 재림의 나팔소리 역시 그럴 것이다. 마치 노아의 방주 문이 닫힌 후에, 혼인잔치의 문이 닫힌 후에 다시 그 문이 열리는 것은 없던 것처럼 하룻밤이 영원한 운명을 갈라놓을 것이다.

울어도 소용없고, 힘 써도 못하는, 결국 다 끝장난 판에 얻은 재물과 쌓았던 것”(15.7a)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럼에도 하나님이 아닌 썩어 없어질 그것들을 가지고 건너”(15.7b)서 심판으로부터 자유해 보겠다고 아우성이니, 이게 하나님 없는 인생의 알량함 아닌가. 아브라함과 롯, 이들은 함께 시작했으나 서로 갈라섰다(12.4 13.14). 전혀 다른 종말을 맞고 있는 이스라엘과 모압이 자꾸만 묵상의 창()이 아른거린다. 인생은 시작만큼이나 마무리도 소중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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