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轉) - 히스기야 이야기3(사 38.1-22)

20200830(묵상)

  

 

 

() - 히스기야 이야기(3)

Isa. 38.1-22

  

   구조 관찰

 

   ① () - 히스기야의 위기(36.1-22)

   ② () - 히스기야의 기도(37.1-38)

   ③ () - 히스기야의 치유(38.1-22)

   ④ () - 히스기야의 몰락(39.1-8)

   

 

고통 + 기도 = 하나님의 응답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복음성가)

 

히스기야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죽음이라는 하나님의 선고(宣告) 앞에 선다. 이것은 히스기야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긴장이 있다. 지금 히스기야는 국가적으로는 앗수르의 공격 앞에, 개인적으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23.4a)를 지나고 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의 위기는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자 할까.

상황적으로 볼 때 앗수르가 패전하자 히스기야에게 그 공로가 칭송되어졌고, 그로 인한 교만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병에 든 것 같다(대하32.23-26). 이사야는 히스기야를 향해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1b)는 하나님의 선고를 전한다. 이쯤 되면 보통은 자신의 한계상황을 인정하고, 절망과 함께 곧바로 무너진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달랐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의 히스기야를 향한 임대계약서의 시효가 이제 만료되었다고 말씀한다. 히스기야가 왕이 되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25세였고(왕하18.1-2), 앗수르의 침략이 왕위 14년이었으니까 이제 그의 나이는 불과 40세에 접어든 중년이다(10a, 36:1). 큰 위기도 극복했으니 이제 혈기왕성(血氣旺盛)하게 한참 일 할 나이다. 바로 그 즈음에 히스기야는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에서의 임대 시효가 만료되었다는 통고를 받게 된다.

   

 

죽음에 이르는 병(1,9-15)

그리고 기도(2-4,16-18)

 

그는 자신이 죽을 몸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는 자신의 예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사야를 통해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1b)고 하셨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죽음이라는 냉정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절망으로 가져가지는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을 좀 더 수리해서(고쳐서) 사용해 달라고 간청한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알았으나, 살리시는 하나님도 알고 믿었다.

그는 환난을 인내로 이어가는 일에 성공한다(5.3). 이것이 시련은 있으나 실패는 없다.”는 은혜의 문을 여는 열쇠다. 그러므로 하나님보다 먼저 포기하는 불신앙이 나를 잠식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솔로몬의 충고를 되새겨본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7.14)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절망하지 않는다’, 즉 낙심하지 않고 인내한다는 말과 같다. 이 신앙은 히스기야로 하여금 기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마침내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통곡하며 기도한다(2-4,16-18). 절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도한 것이 아니라 기도했기 때문에 절망하지 않았다. 기도는 이처럼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하는 힘이 있다(6.10).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3)

 

그는 부르짖어 기도했다. 희망의 주이신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33.3)는 예레미야의 말씀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문제 앞에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성공자다. 그것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신앙이 있기 때문이다(121.1-2).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옵소서.”(16b)

 

히스기야의 회개는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연상케 한다(11.5-13). 그는 절규했다. 그냥 입술에서 술술 흘러나오는 단어의 나열이 아니었다: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8-9a)

이것은 하나님이 이처럼 강청함에 꼼짝 못하신다는, 그래서 막무가내(莫無可奈)로 투정을 부리라는 뜻의 메시지가 아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기에 그렇게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분이신가에, 즉 하나님은 그렇게 강청함으로 나아갈지라도 용납하여 주시는 분이라는, 하나님과 기도자의 관계의 어떠함을 생각해 보도록 해준다.

나는 하나님께 이처럼 담대하게 나아가고 있는가?: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한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5.14-15)

 

내게 내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17a)

 

고통에도 뜻이 있다. 그것을 아는 것이 복이다. 하나님은 결코 나를 망하게 만들기 위해서 어떤 각본을 쓰시지 않는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29.11-13)

   

 

하나님의 응답(4-8,21-22)

히스기야의 감사(19-20)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5b)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내를 노래하리로다.”(20)

 

25세에 왕위에 올라 14년을 하루같이 달려왔다. 하나님의 극적인 개입하심에 의해 앗수르의 위협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을 즈음에 청천벽력(靑天霹靂)과도 같은 사망 선고를 받았다. 이것은 즉각적으로 히스기야로 하여금 기도하도록 만들었다. 마침내 생명을 건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셨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맛본 것이다.

기도는 허공을 치는 메아리가 아니다. 기도는 내가 자가발전(自家發電)해서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아니라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신적(神的) 사건이다. 기도의 맛과 능력은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응답되는 선물이라는데 있다. 기도는 내가 땅에서 하지만 그 응답은 하늘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은혜의 한 방편이다.

기도의 응답은 곧바로 찬양과 기도로 이어진다(9-20).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로 응답한다(19-20). 이게 참 귀해 보인다. 그는 은혜를 아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선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긍휼히 여기셨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알고, 믿고, 확신하고, 체험한 사람은 이처럼 바른 영성을 따라 산다.

   

 

부스러기 묵상

 

바른 기도는 감사를 먹고 더 풍성하게 자란다.

그리고 감사는 기적을 창조한다. 그는 15년을 덤(bonus)으로 받는다. 이렇게 해서 죽음을 기도로 바꾸는 긴 항해를 마치고 응답이라는 안전한 항구를 향해 닻을 올린다. 히스기야의 생사의 문제, 곧 임대계약서 해지의 문제는 일단 집행유예(執行猶豫)로 일단락된다. 그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모든 성도는 또한 나그네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집행유예자. 그렇다면 남은 생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를 묻고 답하며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뇌막염(腦膜炎)을 앓았다. 1960년대 당시의 의술로는 살 확률은 1/100이었다. 하지만 100명 중에 한 명인데 그 1%도 정상이 아니라 신체 어느 한 곳이 장애(障碍)가 된다는 그런 때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어머니의 생명을 건 기도를 들으시고 부족한 나를 살려 주셨다. 그렇다면 나 또한 히스기야처럼 덤으로 사는 인생 아닌가.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13.8a)

 

잠시 형집행(刑執行)이 유예(猶豫)된 상태이기 때문에 까불다가는 원금에다가 이자까지 처서 갚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13.6-9).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길이 참으시고 기회를 주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할 이유, 명백하다. 히스기야는 15년이라는 새로운 은혜의 계약서(契約書)를 하나님으로 받는다.

지금 우리의 사는 생()도 이렇듯 재계약 중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복음 안에서 새로운 계약으로 갱신된 것이다. 성령님이 보증이 되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 언약에 충실토록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를 늘 새롭게 한다. 이 땅에서의 가계약(假契約)이 언제 저 땅에서의 본계약(本契約)으로 갱신될지는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날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음만은 분명하다.

히스기야에게는 이걸 15년이나 유예(猶豫)해 주셨다. 우리 역시 그렇다. 이걸 기억하기에 나그네 인생길을 좀 더 큰 섭리의 세계 안에서 드려다 볼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주인이고 중심인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위해 내가 서야 할 곳, 내가 땀 흘려야 할 일, 내가 평생 붙들어야 할 하나님이 중심인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 안에 우리가 들어와 있음이 감사할 뿐이다. 히스기야에게서 그 세계가 보이는 것만큼 히스기야처럼 살기를 바라는 주님의 기대를 아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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