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그 영욕(榮辱)의 역사(사 29.1-24)

20200818-19(묵상)

  

 

 

예루살렘, 그 영욕(榮辱)의 역사

Isa. 29.1-24

  

본문 관찰

 

   심판과 구원(1-8)

      슬프다 아리엘이여 그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가 너를 치리니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이리라

         → 그럴지라도

      네 대적의 무리는 티끌 겨 같으리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인즉

   무시된 경고와 그 결과(9-16)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러므로 지혜가 없어지고 총명이 가려지리라

      화 있을진저 그들의 일을 어두운 데서 행하며

   희망 코드(17-24)

      그날에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눈이 볼 것이며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즐거워하리니

      소멸되었으며 그쳤으며 다 끊어졌음이라

      야곱이 이제는 볼 때에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총명하게 되며 교훈을 받으리라

   

 

두 번째 경고

 

어제는 다윗의 영광, 오늘은 절기의 반복, 그러나 내일은 심판이다.

이게 아리엘, 즉 예루살렘이 받아 놓은 영적 진단이다(1-4). “그럴지라도”(5a)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치는 열방(대적)의 무리들만을 징벌하신다(5-8). 그럼에도 하나님의 경고는 유무식자(有無識者) 모두에게 철저하게 무시되었고(9-12), 지혜와 총명이 없어지고 가려”(14)졌으며, 하나님은 없고 사람의 계명만 있다(13, 15.7-9 참조):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고, 입술로는 나를 영화롭게 하지만, 그 마음으로는 나를 멀리하고 있다. 그들이 나를 경외한다는 말은, 다만, 들은 말을 흉내내는 것일 뿐이다.”(표준새번역) 이처럼 잘못된 신지식(神知識)에 빠져 착각하며 살아간다(15-16).

그런데 그 날에’(18a) 하나님은 이를 역전시키신다(17-24). 하나님과 그분이 하신 일을 들을 것이며 볼 것이며 즐거워하리니 이제는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18-19,22-23), “그래서 마음이 혼미하던 자들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들도 교훈을 받으리라.”(24) 놀라운 것은 인간은 심판을 심었는데 하나님은 희망을 거두실 것이라 약속하고 계시다는 점이다. , 하나님의 사랑이여! 도대체 당신은 내게 누구이십니까?

   

 

심판심기(1-16)

 

몰락한 예루살렘의 슬픈 노래가 시작된다(1-3). 한 때는 다윗의 영광이 찬란하게 빛났고, 해마다 절기들을 맞아 하나님을 예배하던 성전의 도시 예루살렘이었다(1). 그런데 적군에 포위되어 극심한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3-4). 그러나, “그럴지라도”(5a) 예루살렘을 치는 적군의 무리들만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된다(5-8). 참으로 묘하고도 꿈과 같은 공식이 아닐 수 없다. 너무나 갑작스런 반전(역전)이 거듭되고 있어서다(1-4 5-8).

여기에는 예루살렘 멸망의 주도권(Key)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는, 즉 적군은 한낱 하나님의 심판 도구에 불과하다는(10.5,24),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보이는 대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만군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주권자이신 여호와여야 함을 말씀하고 싶으신 하나님의 깊은 의도가 깔려있는 셈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경고는 철저히 무시되었다. 그것은 저들이, 특별히 지도자들이 영적인 깊은 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다(9-10, 6.8b-9 참조). 참으로 알 수 없는 이스라엘의 완고함이자 무지함이다. 더욱 혼돈스러운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 의지에서 비롯된 점이다(10). 거절하는 유다와 자기 백성을 잠들게 한 하나님, 실로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모두가 다 영적 무지에 빠져 있는 것(11b-12)은 하나님이 모든 계시를 밀봉해 버리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11a) 말씀을 이해할 기회도 없을뿐더러 그럴 능력도 없다. 그러니 하나님의 심판 예고편을 믿지 않고 이런저런 핑계만 늘어놓는 것이다. 묵시가 없느니 백성이 방자히 행하는 것은 사실이다(29.18a).

한편 주님은 바로 이 대목을 인용하시면서 이스라엘을 바리새인들에 비유하셨다(13, 15.7-9). 마치 바리새인들이 누구를 위하여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듯이 아리엘(예루살렘)의 영적 상황이 그렇다는 얘기다. 입담(lip service)은 최고지만 마음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고, 다만 극히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종교 언어만이 앵무새처럼 지껄여지고 있는 것이 예루살렘의 실상이다(13).

결국 다시기이한 일이 반복되게 된다. 그것은 지혜와 총명이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다(11-13 14). 극심한 고통과 파멸의 위기는 몰락하게 될 예루살렘도 예루살렘이지만 무엇보다 영적인 공황(恐慌) 앞에 노출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있다. 모든 게 다 영적 무지요, 그에 따른 죄 때문에 반복되는 악순환이다: “슬프다 아리엘이여 화 있을진저!”(1,15)

하나님을 아는 통로가 막히자 빛 가운데 행하지 않고 어두운 데서 행하며(15, 요일1.6) 자기들끼리는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면서 스스로 속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는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그가 총명이 없다.”(16, 9.19-21)는 잘못된 신지식(神知識)을 나불거린다. 땅도 하늘도 다 막혀 있다. 출구(出口)가 보이지 않는다. 이를 어찌할까.

세상은(유다를 포함하여) 언제나 창조주를 무시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항해하고 싶어 한다(16). 하지만 하나님은 토기장이로서 이 모든 일들을 주관하시며 진행하시며 성취하실 것이다. 이것이 좀 이질적이게 보이는 16절의 의미다.

   

 

희망거두기(17-24) - 그날에

 

예루살렘의 죄악이 -마치 내리막 길에서 탈선한 기차와 같다- 심각하게 비춰지다가, 갑자기 하나님이 더 크게 클로즈업(close up) 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는 것은 예루살렘의 어떤 공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님을 이것만큼 분명하고 확실하게 보여주는 그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마치 아들이 탕자처럼 살았으나 아버지가 그 아들의 모든 것을 품고 가는, 그리하여 다시 아들의 자리로 회복시키는 것과 같은 멜로디다(15.11-24).

귀머거리와 소경이 어찌 스스로의 능력으로 듣고 볼 수 있단 말인가(18). 하나님이 은혜로 값없이 주신 선물을 받았기에 귀가 뚫리고 눈이 열려서 하나님을 인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맛보게 되는 것 아닌가(19, 119.18). 이는 그 날에죄가 다 소멸되었으며 그쳤으며 끊어졌”(20)기 때문이다. 사람의 죄는 하나님의 의로 역전되었다. 오직 하나님께서 말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목표는 분명하다(22-24). 야곱 족속이 이제는부끄러움을 당하지도, 수모 때문에 창백해지지도 않을 것이다(22). 마치 봉한 책’(11)과 같았던 묵시를 보게 될 것이다(23a). 그 결과 동문서답(東問西答, 11b-12)하던 저들이 하나님을 거룩하다 거룩하다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예배, 23b)하게 될 것이다. 또한 없어졌던 지혜와 총명이 다시 회복되고, 다시 교훈을 받게 될 것이다(24). 이것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꿈이다. 하나님의 열심은 거기까지 저들을 인도하실 것이다. 실로 완벽한 영적 드라마다.

   

 

부스러기 묵상

 

   “내가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슬프다 아리엘이여 화 있을진저 .”(1-16)

       ↔

   “여호와께서 야곱 족속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날에 이제는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17-24)

 

집요하고 끈질긴 하나님의 열심을 생각해 본다.

먼저, 이스라엘을 보면서 던지는 묵상의 부스러기다: 죄가 왕 노릇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1-16). 인간의 죄가 늘어나고 깊어질수록 ’()는 미워하시지만, 그러나 동시에 죄인’(罪人) 이스라엘(‘’)은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극심한 곤경과 온 성이 포위되는 위기, 그리고 결국은 나라 잃은 포로기를 맞을 것이지만 적군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은 집요하기 그지없다. 비록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몽둥이’(‘막대기’, 9.4, 10.5,24, 14.5)로 이방을 쓰셨지만 그 일이 끝나면 저들 역시 징계의 표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5-8).

또한 죄인들에게는 묵시를 봉하시는(11), 그리하여 횡설수설(橫說竪說, 12-13)하는 요란한 빈수레들이 더 이상 얼쩡거리지 못하도록 하신다(14). 급기야 은혜가 떠나고 인간적인 것이 주도권을 잡으면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기 마음대로 허언(虛言, 15-16)을 쏟아내는 고장난 인생이 되고 만다. 이것들이 다 죄의 군상(群像)들이다. 인간은 본시 죄를 지어서 죄인이기도 하지만 죄인이기에 죄를 범한다. 별 수 없는 인간 아닌가.

둘째, 반면에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17-24). 변하여 새사람이 된다. 하나님은 거기까지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것이다. 이것이 그 날에’(18a)를 향하신 하나님의 꿈이다. 그날까지 하나님은 오래 참으신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의 친백성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하나님을 향한 거룩하다 거룩하다!”(23)로 이어지는 [하나님을 경외] 하는 이스라엘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실 것이다.

첫째도, 둘째도, 이 모두를 다 하나님이 친정(親政)하신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이 회복되고, 만물이 다 자기 자리를 찾을 것이다. 그날이 오기까지 세상은 아직 불완전하고, 세상은 여전히 죄 아래 있으며, 죄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깊이 신음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떠나 자행자지(自行自止)하는 인생은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죄인은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는 것, 이것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다. 물에 빠진 사람이 자기 머리를 자기 손으로 들어 올린다고 해서 그가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인간이 잘 해보자고 한 일이든, 아니면 죄가 죄를 낳는 것의 악순환이든, 어떤 경우든 하나님 없는 인간의 좌표는 사망의 저주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것이 갑작스럽게 반전되는 것처럼 보이는 16절과 17절 사이의 깊이와 넓이다. 이는 결코 인간의 노력과 힘으로는 건널 수 없다.

죄 아래 있음에, 그래서 심판으로 끝낼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다시 당신의 사랑으로 연결하시는 하나님, 해서 그분 앞에만 서면 자꾸만 초라하고 왜소해 지는 나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때는 죄가 씻어졌다는 기쁨 때문에 멋모르고 날뛴 적이 있었다. 내 의()가 커 보였고, 그래서 그것이 작아 보이는 사람들을 표나지 않게 정죄하며 시시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은혜를 발견하고 그 안에 잠기면 잠길수록 나의 초라함과 못남과 어리석음과 알량함을 깨닫는다. 나도 나를 내 마음대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그런 팔푼이라는 것을 은혜는 늘 나에게 확인시켜 준다. 그래, 내 힘과 능력과 노력으로는 한 걸음도 17절부터 시작되는 은혜 안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여호와께서하신 일이기에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것 아닌가. 오늘도 이 하나님만의 영광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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