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하나님(사 41.1-29)

20210714-15(묵상)

 

 

 

회복의 하나님

Isa. 41.1-29

 

    본문 관찰

 

    통치하시는 하나님(1-7)

    구원하시는 하나님(8-20)

    도전하시는 하나님(21-29)

  

 

두려움이라는 병()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주께서 이 일을 몸소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것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20, 표준새번역)

 

변론장에 나온 열방(1), 그리고 이스라엘(8-14)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두려움이다. 먼저 섬들민족들”(1), 즉 열방(40.15)이 하나님 앞에 떨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은 노하던 자들 다투는 자들 싸우던 자들 치는 자들”(8-13) 때문에, “버러지 같은”(14-16) 볼품 없음과 연약함 때문에,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골짜기 가운데 광야에”(17-20)처럼 불리한 여건 때문에 각각 두려워하고 있다.

위로의 하나님(40)은 이제 두려워 말라!”(41)고 격려하시는 하나님으로 무대에 오르신다. 두려워 말아야 할 분명한 이유들이 제시되면서 우상’(5-7,21-24,29)이 해결할 수 없는 바로 그것을 내가 내가 내가”(25,27), 즉 하나님께서 해결하실 것이라 선포하신다. 이 복음은 온 열방(‘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도전이다(20).

   

 

섬들의 딜레마(1-7)

 

하나님은 섬들(민족들, 열방, 1)을 변론의 자리로 나아오도록 해 놓고서 누가 누가 누가 누가”(2,4) 동방에서 한 정복자를 일으켜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승리의 정복자와 통치자로 세웠는가를 따진다. 하나님 스스로의 대답이다: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4b) 결국 강력한 초강대국 고레스(44.24-47.15)의 등장은 당시 주변 나라들에게는 엄청난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역사의 처음과 나중을 섭리하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다. 이를 알지 못하고서 허망한 출구를 기웃거리는 열방의 모습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과연 누구를 의지하여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도록 촉구한다(5-7 8-20).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섬들의 반응은 두려워하며 무서워 떨며”(5)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담대하라!’(6)라고 지껄이지만 그들의 몰골(표정, 언행)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결국 그들은 무엇을 의지하는가? ‘우상이다. 웃기지 않은가. 이사야는 이것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고발하고 있다: “그가 못을 단단히 박아 우상으로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는도다.”(7b) 서 있는 것조차 못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우상, 도대체 그게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진정으로 의지해야 할 대상을 잃어버리고 허망한 신기루와 같은 것을 쫓아 병든 시대(인생)의 해답은 무엇인가.

출구는 있다. 길은 오직 하나, 오직 하나님이다. 다른 대안은 없다. 오직 그리스도 그분 밖에는 소망이 없다.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만 한 다른 이름은 없다(4.12). 하나님은 이러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이사야에게 가르쳐 주셨다. 이스라엘 자신은 물론 지금 섬들(열방)까지도 하나님만으로 사는 길이 무엇임을 증거해야 할 때가 왔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결심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의 해법(8-20)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10a)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10b)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10c,13a)

    “내가 너를 도와 주리라!”(10b,13b,14a)

        →

             “두려워하지 말라!”(10a,13,14)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두려움은 있다. 먼저 이스라엘을 향해 노하던 자들 다투는 자들 싸우던 자들 치는 자들”(8-13) 때문이다. 또한 생존을 위한 치열한 산전수전(山戰水戰)을 겪으면서 버러지 같은”(14-16) 볼품 없음과 연약함이라는 낮은 자존감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가련하고 ㄱ난한 자가 골짜기 가운데에 마른 땅 광야에”(17-20)처럼 여러모로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삶의 여건들 때문이다.

섬들은 두려워서 우상을 의지했지만 이스라엘은 이 두려움 가운데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 이게 문제다. 하나님은 이 그릇된 구조를 그러나’(8a)로 역전시키고 싶어하신다. 불신앙이라는 두려움의 불청객이 둥지를 내릴 수 없도록 두려움이 자리하려는 그곳에 하나님을, 너를 붙들며 부르고 택하고 버리지 아니하”(9)시는 하나님을, 그리하여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을 세우도록 격려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때부터 이사야 시대까지 이스라엘이 나의 종 내가 택한 나의 벗”(8)으로 교제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매우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난 두려움을 싫어한다.” 두려움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고, 따르고, 의지하는 불신앙을 몹시도 싫어하신다. 왜 두려워할까? 두려움보다 더 쌘 분, 그 두려움을 완전히 제압하시는 분,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해방하시는 분을 바라보지 못하는 불신앙 때문이 아닐까.

하나님을 의지(신뢰, 의존)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움이라는 거인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10)

누가 누가”(2,4,26) 감히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거역할 수 있으랴. 하나님은 친히 이스라엘을 두려워하던 것들을 다 해결해 주셨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역전이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휘청거리게 했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아무 것도 아닌 것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11,12b). 또한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12a) 원수들을 쳐서 박살내는 것까지다(15).

   

 

나의 결정(21-29)

 

하나님 내가 내가”(25,27) 하는 일에 어디 너희 우상들아 소송을 제기해 보라 할 말이 있으면 해 보아라!”(21, 표준새번역)시며 다시 변론의 대상으로 섬들과 민족들을 불러내신다. 그들이 만일 신()이라면 과거사와 장래사를 말할 수 있지 않겠냐시며 호통을 치신다(22-23). 물론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리라 예측한 그대로다(26,28-29). 이것이 하나님과 우상의 근본적인 차이다.

이제 참과 거짓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진실은 밝혀졌다. 그렇다면 결단해야 한다. 이사야는 아무 명백하고 단호하게 선언한다: “보라 너희는 아무 것도 아니며, 너희 일은 허망하며, 너희를 택한 자는 가증하니라.”(24) 이것이 변론장에서 섬들(민족들, 1)에게 내린 우상에 대한 선고다.

그럼 하나님은 누구시며, 또한 어떤 일을 하시는가?(25,27) 하나님은 내 이름을 부르는 자”(25a), “기쁜 소식을 전할 자”(27b)를 준비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그가 이르러 고관들을 석회 같이, 토기장이가 진흙을 밟음 같이 하리니”(25b). 결국 우상을 신()으로 삼은 자들을 진멸하실 것이다(1,5-7 24,28-29). 말도 못하며, 쓸모 없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부어 만든 우상들은 바람이요 공허한 것뿐이”(29b)기 때문이다.

그럼 는 누구인가? 그는 한 사람’(25)인데 그가 바로 고레스다(41.1-5,21-20, 44.28, 45.1-13; 44.24-47.15, 58.12-16; #[고레스 프로젝트]1-5 참조).

   

 

부스러기 묵상

 

두려움이라는 불청객의 노예가 되지 않고 그걸 이기며 사는 비결은 없을까.

과연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밀려오는 두려움이라는 성난 파도를 막아낼 수 있을까. 바로 하나님한 분뿐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다. 세상, , 권력, 젊음, 유능함, 지식, 배경, 환경, 운수, 요행, 우연, 등등 이러한 것들은 내가 만나는 근본적인 두려움을 해결해 줄 수 없다. 이런 허망한 것들을 기웃거리던 어리석은 자리에서 이제는 일어날 때도 되었다.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한 손에는 나 자신을, 그리하여 시작부터 이미 실패가 예고된 허망한 싸움을 이겨보려고 발버둥치는 내 꼬락서니가 저 [천국방송국](天國放送局, KBC-TV)에 그대로 녹화되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더 이상 두려움 앞에 서지 말기로 하자. 두려움이라는 유동적이며 변하는 허상 때문에 하나님이라는 불변하는 실상을 보지 못하게 되는 어리석은 자리에 더 이상 나 자신을 정박해 두지 말자.

섬들(민족들, 1,5-7,21-24,28-29)과 이스라엘(2-4,8-20,25-27)이라는 두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님은 저들에게 결단을 촉구하셨듯이 결국 우리에게 이를 결정하도록 명하시고 계신다. 물론 이스라엘을 교훈하시기 위해서, 그리하여 두려워 말라!”는 언약에 붙들려 살아가도록 격려하고 소망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헛된 우상을 따르는 섬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신 것이다. 저들은 에돔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34).

변화무쌍(變化無雙)한 국제 정세 속에서도 묵묵히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 안에서 모든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사는 것, 이게 시온의 대로를 예비하시고 그 길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복된 삶을 회복하는 길이다(35). “누가 누가”(2,4,26)의 답을 나 여호와라”(4), “내가 내가”(25,27)라 스스로 답하시는 하나님, “구하되 응답하겠고 버리지 아니할 것”(17)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안심이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리하여 나의 두려움까지도 맡아주시겠다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나 또한 아브라함과 야곱(이스라엘)처럼 선택된 종이요 벗인 자리까지 회복케 하실 하나님이시라는 얼마나 감격스럽고, 또 동시에 황송한지 모르겠다. 나를 보면 아직 아니지만 하나님을 보면 나 또한 주께서 약속하신 성숙과 회복의 자리에까지 나아가 있는 것 같아 행복해진다. 이 하나님 앞에 선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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