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하나님(사 43.1-28)

20210717-18(묵상)

 

 

 

은혜의 하나님

Isa. 43.1-28

 

    본문 관찰

 

    너는 내 것이라(1-13)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1)

    내가 너를 모을 것이며(5)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깨닫게 하려 함이라(10)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12)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14-28)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14)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19)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21)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22)

    나는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25)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율법을 떠난 이스라엘의 죄는 포로기라는 맹렬한 진노로 이어진다(14, 42.24-25).

나의 종’(41.8a, 42.18-25) 이스라엘이 말이다. 그럼 그것으로 끝인가. 아니다. 하나님은 다시금 시리고 쓰라린 가슴을 진정시키시면서 43장을 여신다. 어찌 아비가 실패한 아들의 흐느적거림을 보지 못한 척 할 수 있으랴. 다시금 여전히 이스라엘에게 너는 내 것이라!”(1)는 하나님의 품이 예비 되고 있다. 이제 제2의 출애굽과 같은 새 일의 증인으로 열방 앞에 설 날이 가까이 왔다(14-20 8-13).

하지만 이 은혜의 수혜자는 제한적이며(7), 동시에 전적인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다(22-25). 이스라엘이 의로워서도 아니고, 뭐 하나 잘난 구석이 있어서도 아니다: “도리어 너는, 너의 죄로 나를 수고롭게 하였으며, 너의 악함으로 나를 괴롭혔다. 내가 너를 용서한 것은 너 때문이 아니다.”(24b, 표준새번역) 이 은혜는 지금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나에게도 찾아오고 있다.

   

 

너는 내 것이라(1-13).

 

상처뿐인 못난 아들이지만 여전히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1b) 하신다. 들을수록 가슴 찡한 감동과 감격의 멜로디라 아니할 수 없다. ()는 밉지만 이스라엘을 초지일관(初志一貫) 애굽과 구스와 스바와 동급으로는 취급하지 않으신다(3-4). 그렇다고 불꽃”(2)이라는 고통 그 자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어떻든 죄에 대한 값은 지불되어야 한다. 이게 삶의 현장이다. 이것 역시 나를 돌아보게 되는 대목이라는 점에서 긴장이 있다.

하지만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4a)이라는 하나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고통과 시련 속에 꿈틀거리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엿보게 만든다. 주님은 이스라엘(‘’)의 수준과 상관없이 저들을 사랑하신다 말씀한다. 그래서 포로기는 다시 동서남북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5-6)로 일단락될 뿐만 아니라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이것은 다 하나님의 사랑하심 때문이다. 사랑을 받을만 한 아무런 조건이나 자격이 없는 죄로 말미암은 포로임에도 진노는 사랑으로 역전된다(42.25a 43.4a).

한편 사랑을 받는 대상은 제한적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10.10,1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창조된 자, 하나님이 빚어 만든 사람들이 구원의 영광을 약속 받는다(7). 물론 저들이 처음부터 이런 언행으로 하나님의 기준에 이르렀던 것은 아니다(8):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

오히려 구원을 받을 그 어떤 행위나 자격도 전무(全無)한 범죄자(犯罪者, 42.24)들이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던 자들이다(42.25). 이는 열방들과 뭇 민족들 역시 마찬가지다(9). 이것은 성경의 줄기찬 입장이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10,23).

결국 구원을 받은 자는 유일하신 구원자이신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함을 받은 증인일 뿐이다(10-11). 아무도 자기 공로나 선행이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확보하지 못한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8-13, 42.18-25, 2.1-3) 자리에서 오직 하나님에 의해 구원을 받은 것, 이 일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증인으로 열방 앞에 서 있다(9,10,12).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14-28).

 

그럼 은혜의 선물은 어떻게 주어지는가? ‘거룩한 자이신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군대)을 보내어”(14) 도성을 치고 이스라엘을 구하여 내시겠다 하신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저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시작하시겠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출애굽 그림을 보여주시면서(16-17) 바벨론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을 제2의 출애굽으로 묘사하시는 것이다. 이게 바로 새 일이다(19a).

바울은 출애굽에 이어 홍해를 건너는 사건을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전10.1b-2)은 것으로 해석한다. 하나님은 홍해를 건너는 이스라엘을 이처럼 구원해 주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바벨론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 하신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이것이 구약이 선포하는 새 일이라면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을 새로운’, 새 것이 되는 일이라 말씀한다(고후5.17). 그러므로 더 이상 어둡고 불행했던 지난 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18). 하나님이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시고 다 용서하셨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자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 이미 다 용서되고 씻어진 과거에 얽매여 산다면 구원의 자유함은 아직 요원한 셈이다. 하나님은 광야와 사막과 들짐승들까지 내 백성, 내가 택한 자”(20b)를 위해 준비될 것이라 약속하시는데 더 이상 과거에 발목이 잡혀 있을 이유가 없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궁극적인 목표는 차원이 다르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해야 할 놀라운 자리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스라엘 쪽이다(22-28). 불행하게도 저들은 여전히 죄악으로부터 돌이키기를 망설이고 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예배에 실패하고 있다(23-24). 이렇듯 철없는 이스라엘을 보면서 답답하고 화가 나다가도, 다시 머리를 숙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나의 모습 역시 저들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끝내 그러나’(22a)임에도 하나님은 변함 없이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25)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4a)에서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이스라엘(‘’)의 죄보다 더 강하고 위대하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한다.

에덴에서부터 지금 이 메시지를 받고 있는 시간까지 이스라엘이 한 일이란 죄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때마다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시고, 또 그것을 기억하지도 않으시겠다 하신다. 바로 이분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죄 가득한 손으로 십자가를 붙든다.

   

 

부스러기 묵상

 

바벨론이라는 제2애굽에는 중요한 몇 가지 신학적 주제가 숨 쉬고 있다.

먼저,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10a)는 구원론이다. 또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21)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의 제일된 목적이다. 하나님은 단순히 포로라는 고통만을 잠시 멈추게 하는 아스피린을 처방하지 않으신다. 비록 배은망덕(背恩忘德, 22-28, 42.18-25)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스라엘의 범죄에 따른 실패까지를 넉넉하게 품을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것임을 거듭 묵상하게 된다(4). 때문에 포로의 자리에서 자신의 죄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자들을 향해 두려워하지 말라!”(1,5) 위로하시는 것 아닌가 싶다.

하나님의 구원(14-21, A)은 이스라엘의 행위(22-28, B)와 상관이 없다. B(22-28)처럼 살아도 하나님은 완전한 용서를 통해 이스라엘을 새로운 삶(A, 14-21)으로 이끄신다. 구원받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이 이 정도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다. 하나님이 구원의 선물을 내밀었을 때 그분의 손을 잡았던 인간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게 인간이다. 나 또한 별 수 없는 인간(22-28),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하였다.

하나님의 사랑(4a)에 비추어진 인간의 모습이 추하고 부끄럽기만 하다(22-28, 42.18-25). 하나님 앞에 서기만 하면 이처럼 초라해져 버리고 마는 우리,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여전히 죄와 사망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을 우리, 이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은 인간의 못나고 기억하기 싫은 과거를 도말하시고 기억하지 않으시겠다 하신다(25). 그리고 나에게도 빨리 잊으라 하신다(18).

이렇듯 이제부터는 우리에게도 새 일만 있었음 좋겠다. 이전 것이 다 지나간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이제는 거기에 어울리는 삶을 꽃피우고 싶다. 바벨론의 처참한 모습들을 주님의 보혈로 다 씻어 주셨으니 이제부터는 구원받은 자 답게 살아 보자. 더 이상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상습범은 되지 말자.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증인은 그분이 이루어주신 새 일을 따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나를 구속하셨고, 나를 지명하여 불렀으며, “너는 내 것이라!” 하신다.

 

    “하나님 아버지, 사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끝까지 충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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